[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현대차 아슬란, 예고된 좌절

아슬란 이니그마란 게 있다. 아슬란이 왜 안 팔리는지 도무지 수수께끼라고 해서 나온 말이다. 적어도 현대기아차그룹 안에선 그렇단 얘기다. 2014년 10월 아슬란이 출시될 때만 해도 현대기아차그룹 안에서 아슬란의 성공을 의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현대기아차는 아슬란의 연간 판매 목표치를 2만2000대로 잡았다. 월 1800대 수준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신차 효과로 2014년 11월 1320대를 판매한게 최고치였다. 2015년 3월엔 866대로 1000대 선마저 깨졌다. 일선 대리점에선 2014년형 아슬란을 최대 550만원까지 할인 판매하기 시작했다. 출시 반년밖에 안 된 신차를 이렇게 밀어내기 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아슬란이 실패작이란 건 누가 봐도 명명백백했다.

사실 현대기아차그룹 안에서도 아슬란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 못하는게 아니다. 아슬란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공식적으론 아슬란은 실패하지 않았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현대기아차는 아슬란의 판매 부진 원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슬란 이니그마다.

그랜저·제너시스에 끼이고 수입차에 밀리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서 실패 원인을 찾아서 그렇다. 실패하진 않았지만 왜 실패했는지 따지는 건 형용모순이다. 물론 기업 조직에선 이런 형용모순이 드문 일도 아니다. 형용모순은 관료화된 기업에서 주로 발병한다. 관료화된 기업에서도 사업의 성패는 중요하다. 관료화된 기업도 돈은 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다만 신상필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성공의 보상과 실패의 책임이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조직을 움직이는 위계질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누적돼온 연공서열이나 절대 권력을 지닌 오너 경영진과의 사적 인연 따위가 관료화된 기업 위계질서의 본질을 이룬다.

성공이 이어지는 성장기엔 그냥 넘어간다. 성공의 보상을 일부가 과식하긴 하지만 나머지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성장기가 끝나고 실패가 시작됐을 때 이제까지 숨어있던 문제들이 드러난다. 사업 실패야 병가지상사다. 아무리 탁월한 기업도 실패를 모조리 피해갈 수는 없다. 관료화된 기업은 실패를 받아들일 줄 모른다. 그래서 조직 전체가 실패해버린다.

일단 실패를 조직적으로 부정한다. 조직 안에서 누군가 실패를 책임지는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실제론 실패하고 있지만 겉으론 실패하지 않고 있는 실패의 지연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실패를 지연시키면 피해는 더 불어난다. 무모한 추가 비용이 투입되기 일쑤다. 실무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걸 안다. 조직이 공식적으로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한 아무도 밑 빠진 독이란 사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다. 조직 내부의 소통이 단절된다. 결국 작은 실패 하나가 조직 전체를 멍들게 만든다.

아슬란이 딱 그 짝이다. 아슬란은 실패작이다. 아슬란의 실패 원인은 너무 뻔하다. 우선 수요 예측이 잘못됐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엔진은 동일하다. 플랫폼은 그랜저와 공유한다. 외형과 차값만 좀 다르다. 포장과 가격표만 바꿔단다고 다른 차로 포지셔닝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그랜저와 제네시스가 아슬란 시장을 잠식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이 일어났다.

아슬란은 외부에서도 수입차에 치였다. 현대기아차는 수입차를 무찌를 선봉장으로 아슬란을 내세웠다. 아슬란이 공략한 시장은 수입차 시장에서도 가장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각축장이었다.

이 시장엔 아우디A4, 폭스바겐CC, 렉서스IS, 볼보S60, 푸조508, 포드 토러스가 포진해 있었다. 소형 수입차엔 만족하지 못하지만 프리미엄 수입차까진 부담스러운 엔트리 수입차 수요가 몰려있단 얘기다. 이 시장의 고객들이 최우선하는 구매 기준은 당연히 브랜드 가치일 수밖에 없다. 같은 값이면 현대기아차 같은 흔한 국산차보다 아우디나 폭스바겐이나 렉서스를 타겠다고 처음부터 작정한 고객들이었다.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아슬란은 누가 봐도 역부족이었다.

포드의 반세기 전 실패와 판박이
이런 자명한 실패 원인을 현대기아차그룹도 모르진 않는다. 다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숨어 있는 진짜 실패의 원인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아슬란은 불과 4개월만에 급조된 차다. 신차 출시는 수년 이상의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사실 아슬란 프로젝트가 어디에서 발상됐는지도 모른다. 임원 회의에서 누군가 “상무차가 없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면서 개발이 뜬금없이 본격화됐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경영진이 개발을 승인하기 전부터 YF플랫폼을 기반으로 비공식 개발팀이 꾸려졌었단 얘기도 있다. 그만큼 아슬란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개발되고 출시됐는지 현대기아차그룹 내부적으로도 애매모호하단 말이다. 의사 결정이 투명하지 않으니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상무차가 없다”는 말은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이었다. 현대기아차 임직원들은 대부분 현대차나 기아차를 탄다. 그렇게 전직원이 한 브랜드의 차를 타다보니 직급별로 차별이 안 됐다. 여기서 “상무차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임원은 대기업의 별이다. 그런데 차는 부장이나 상무나 전무나 모두 그랜저거나 제네시스인 게 억울했다. 그 억울함에서 “상무차가 없다”는 발상이 나왔다.

정작 현대기아차그룹 바깥은 상무차 따윈 따로 없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동차로 사회경제적 계급을 과시하는 시대는 끝났다. 돈이 없어도 멋스러워 보이려고 소형 수입차를 타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든지 프리미엄 대형차를 탈 수 있어도 거리낌 없이 친환경차를 즐겨 타는 부유층도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들한테 차는 더 이상 재산이나 과시가 아니다. 패션이고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런 시장을 상대로 상무차를 만들어서 내놓으면 팔릴 거라고 여겼다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었다.

아슬란은 현대기아차라는 기업 조직이 지닌 내부 모순의 총합이다. 현대기아차가 아슬란의 실패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문제가 너무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이걸 바꾸려면 책임 추궁이 아니라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아슬란의 실패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조직의 한계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러니 아슬란 이니그마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거울 앞에 서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슬란 이니그마는 여러모로 포드의 에드셀 실패 사례와 판박이다. 빌 게이츠가 격찬한 경영베스트셀러 <경영의 모험> 첫장엔 포드의 에드셀 실패 사례가 실려 있다. 성공만 거듭하다 관료화된 포드가 어떻게 에드셀이라는 실패작을 만들어냈고 그 실패를 은폐하면서 퇴행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실패의 지연 현상이 어떻게 자동차 산업을 발명한 포드를 멍들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반세기전 일화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을 발명한 현대기아차의 지금 모습과 닮아 있다.

지금 현대기아차그룹은 온갖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원화 강세로 상반기 실적은 악화일로다. 원·달러 환율도 문제지만 엔·원 환율이 진짜 악재다. 엔저로 숙적 도요타가 부활하면서 미국 시장에서도 밀리고 있다. 2009년 렉서스 사태로 도요타가 수세에 몰리고 현대기아차가 급부상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내수 시장 점유율은 하락 일로다.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70%가 깨진 지도 오래다. 시가총액에선 조만간 4위로 내려앉을 가능성도 있다. 10조원 빅딜로 승부수를 던진 한전부지 인수는 아직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 목록에서도 탈락했다.

원래 큰 바다에선 파도도 치고 태풍도 불기 마련이다. 자동차 산업은 국제 정치와 환율 같은 거시 경제 변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전후방 영향력이 워낙 커서 각국 정부가 힘겨루기를 벌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와 현대기아차그룹을 둘러싼 날씨는 분명 나쁘다. 그리고 날씨는 언젠가는 개기 마련이다.

현대기아차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진짜 문제는 아슬란 이니그마다. 성장기에 관료화된 조직 문화가 정체기에 실패를 일으키고 실패를 지연시키고 실패를 은폐하면서 기업을 퇴행시키는 아슬아슬한 악순환 말이다. 현대기아차는 지금까진 성공만 해왔다. 이젠 쓰더라도 실패를 삼키고 소화시켜야 한다. 쓰다고 계속 실패를 지연시키면 한국경제를 둘러싼 날씨가 다시 화창해져도 현대기아차에 드리운 먹구름은 걷히지 않는다. 이니그마의 답은 이미 나왔다. 직시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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