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메르스가 삼킨 내수시장] 중소기업 절반 이상 “심각한 피해”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나가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회현동 남대문 시장. 화창한 날씨에 상인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 문을 열고 고객을 맞았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할 뿐이다. 평소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들과 장을 보러 나온 내국인들로 활기가 넘쳐야 하지만 시장은 고요하다.

#오후 시간이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 신림동 신원시장도 마찬가지다. 신원시장에서 20년 가까이 과일야채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연수씨는 이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까지 장사가 안 된 것은 처음이에요. 물건을 평소의 절반 정도만 준비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다 팔지 못해 재고가 쌓이는 형편입니다. 대형마트 공세 속에서도 오랜 단골의 힘으로 버텨왔는데 요즘에는 사람이 없어 시장 끝에서 끝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입니다.”

中企·전통시장에 직격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가 내수 시장을 삼킬 기세다. 특히 연이어 터진 악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메르스로 인해 직격탄을 맞고 휘청 거리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공동으로 조사한 ‘메리스 모니터링’결과를 보면 서울 소재 전통시장 매출은 메르스 사태 발생전과 비교해 35.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경기가 악화했다는 중소기업은 조사대상의 71.5%, 경영상 피해 있다고 답한 곳도 53.7%로 절반 이상이었다.

소상공인들은 이번 사태로 인한 타격이 세월호 때보다 더 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의 업종별 카드승인액을 보면, 골프연습장, 노래방을 중심으로 급격히 감소했으나 5월 들어 점차 진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매출 감소폭이 매우 클 것이라고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은 예상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DMC타워에서 개최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간담회에서도 서울지역 상인들의 애로가 쏟아졌다.

류정래 중곡제일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손 소독제를 상인들에게 나눠주고, 소독액을 자체 구매해 방역하고 있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매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상인들의 노력을 시민들에게 알려 시장에 안심하게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비단 전통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잇따른 행사 취소로 요식업계는 물론 행사 관련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 행사 판촉물을 만들던 인쇄기업, 화환을 납품하던 화훼기업, 판촉물을 만들던 제조기업, 기업단체 숙박을 했던 관광호텔까지 연이은 예약 취소와 발주 물량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르스 이후 업종별 예상 매출 감소율을 보면, 여가 관련 업종이 31.1%, 숙박음식업 28.7%, 운수업 28.5%, 도소매 25.5%, 교육 24.9% 등이다.

“메르스 경제타격 클 것” 분석 잇달아
문제는 이 같은 타격이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확산에 따른 국내 경제적 파장이 클 것이라는 전망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발표한 ‘메르스 확산에 따른 경제파장’ 분석 보고서에서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가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과거 발생한 사스, 신종플루 등 다른 외래 전염병 사례에 비해 한층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번 메르스가 조기에 진정되더라도 향후 1분기 정도는 경제주체들의 심리 및 소비위축이 불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불확실성 증폭으로 소비심리가 저하돼 서비스업과 자영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둔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보고서는 “대중밀집 시설 등에 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외출, 외식, 여행, 레저활동이 위축되면서 요식업, 숙박, 운송, 엔터테인먼트 등 업종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 자래시장 상인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GDP 20조원 손실될 수도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도 상당부분 훼손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경제연구소는 지난 1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메르스 사태가 6월 말까지 종결되면 국내총생산(GDP) 손실액은 4조425억원, 7월 말에 끝나면 9조3377억원에 달하고, 석달째인 8월 말까지 갈 경우 20조922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격리자·감염자 발생으로 인한 노동 손실액이 늘어나고 물류서비스, 음식숙박업, 오락 수요 등이 대폭 감소하며 투자와 소비, 수출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추정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메르스 사태가 한달 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15%포인트 떨어지고 3개월간 지속되면 0.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다수 기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3%를 간신히 넘는 점을 고려하면 메르스 탓에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경기는 작년 세월호보다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세월호는 애도 속에서 행사를 자중했지만 지금은 국민 생활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좀처럼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메르스를 조기에 종식시키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유도하지 않으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던 우리 경제가 또다시 장기 침체로 들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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