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팬택, 기사회생 할까

 

“지금 팬택은 멈춰 서지만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팬택을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5월27일이었다. 전자신문에 팬택의 고별 광고가 실렸다. 신문엔 고별 광고에 동참한 1200여명 직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모두가 무급휴직 상태였다.

하루 전날인 5월26일 팬택 경영진은 법원에 법정관리 철회를 신청했다. 파산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2014년 8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지 10개월여 만이었다. 1991년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이었던 박병엽 부회장이 삐삐 제조사 팬택을 창업한지 24년만이었다.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1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목을 죄여오고 있었다. 마지막 돌파구로 여겼던 공개매각도 번번이 무산됐다. 직원들은 희망 고문을 당하며 지쳐갔고 떠나갔다. 결국 팬택 스스로가 백기를 들었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옵티스란 무명 회사가 팬택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옵티스는 전자 부품 제조사다. 지난해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로지를 인수하면서 광드라이브디스크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 스마트폰카메라모듈과 초소형 프로젝터도 제조한다.

옵티스의 팬택 인수 의지는 꽤 확고해보였다. 우선 법원에 이행보증금 20억원을 납부했다. 인수를 포기해도 못 돌려받는 돈이다. 6월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파산부는 옵티스의 팬택 인수를 인허가했다. 7월7일까지 실사를 끝내고 7월17일까지 본계약을 체결하는 일정이다. 이주형 옵티스 대표는 실사 과정도 인수 여부를 따지는게 아니라 인수 이후 회생 전략을 짜는 시간으로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팬택은 일단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정확하게 1년 전이었다. 그때도 팬택은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있었다. 2014년 7월 10일 이준우 팬택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준우 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SK텔레콤과 KT와 LG유플러스한테 출자 전환을 간청했다. 이준우 대표는 말했다.

“현재 팬택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상황입니다. 경영위기에 처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사무치게 느끼고 사죄합니다. 지난 8일 출자 전환을 요구한 우리의 제안에 관해 이통3사가 부정적으로 보는 듯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절박함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팬택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이통3사와 채권단의 출자 전환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1조원의 부채는 고스란히 남았다. 지난 1년여 동안 믿음직한 인수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부채 탓이 컸다. 팬택은 말 그대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물론 빚의 역설도 있었다. 천문학적인 부채 규모 탓에 채권단도 쉽사리 팬택을 청산하자고 나서지 못했다. 실제로도 법정관리 철회를 먼저 신청한 쪽도 팬택 경영진이었다. 스스로 생명 유지 장치를 끄고 존엄사를 택했던 셈이다.

1조원의 부채가 진짜 장벽 
옵티스가 팬택을 인수한다면 곧바로 맞닥뜨릴 문제가 바로 1조원의 부채라는 장벽이다. 1년 전 현 팬택 경영진이 읍소까지 해가면서 해결하려고 했던 숙제다. 1조원이라는 부채 규모가 문제가 아니다. 부채가 일으킨 유통망 경화증이 진짜 문제다.

한국의 휴대폰 시장은 슈퍼갑 통신사가 주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팬택 같은 휴대폰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 유통망을 장악한 이통3사라는 중간상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소비자들한테 휴대폰을 판매하는게 아니다. 사실상 이통3사한테 납품하는 꼴이다. 이런 사정은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팬택 같은 중소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통3사는 제조사의 휴대폰을 판매해주는 대신 거액의 판매장려금을 받아왔다. 이른바 보조금이다. 이통3사는 휴대폰과 요금제를 묶어서 판다. 소비자들에게 자신들한테 이득이 돌아가는 비싼 요금제를 권유하는 대신 소비자들이 탐낼만한 최신 휴대폰을 최대한 싼 값에 끼워 판다. 상식적으론 요금제 수익을 가져가는 이통3사가 휴대폰 할인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실제론 제조사한테 몽땅 떠넘긴다. 재주는 제조사가 넘고 돈은 이통사가 버는 구조다.

팬택의 부채는 이런 왜곡된 휴대폰 유통 구조가 유발시킨 악덕 채무다. 팬택이 이통3사한테 갚아야할 채무는 1800억원 가량이다. SK텔레콤이 900억원이고 KT가 500억원이고 LG유플러스가 400억원이다.

내용은 이통3사가 자사의 비싼 요금제를 팔기 위해 팬택한테 감당하라고 강요한 보조금이다. 심지어 이통3사는 팬택이 재고를 털기 위해 휴대폰 가격을 인하하면 손실도 고스란히 보전받았다. 이미 사들인 물건값이 내려갔다고 그만큼을 물어내라는 건 갑질 중의 갑질이다. 이통3사는 팬택한테 거의 모든 손실을 떠넘기며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1년 전 채권단과 팬택이 이통3사한테 출자 전환을 요구했던 건 그래서였다. 이미 시중엔 70만대 가까이 팬택의 재고가 깔려있는 상태였다. 설사 팬택이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한다고 해도 추가로 감당해야 하는 보조금 탓에 부채 규모만 더 늘어날 판이었다. 그렇게 이통사가 떠넘긴 악덕 부채가 사실상 팬택의 판로를 막는 유통 경화증이 일어나버렸다.

악덕 채무는 채권단의 출자 전환마저 가로막았다. 채권단은 3000억원의 채권을 출자 전환해서 팬택의 휴대폰 제조와 판매 업무의 숨통을 트여줄 요량이었다. 팬택이 신제품을 출시하면 팬택의 현금이 보조금이란 명목으로 고스란히 이통3사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딜레마와 마주하고 말았다. 악순환이었다. 결국 팬택은 2014년 8월 1조원의 부채를 떠 앉은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년여에 걸쳐서 법정 관리를 받는 동안에도 법원도 팬택도 제3의 인수의향자도 바로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팬택을 살려야한다는 대의명분이야 충분하고 넘친다. 팬택은 이미 대한민국 벤처 신화의 찢겨진 상징이 됐다. 팬택도 “지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뜨거운 광고들을 적잖게 했다. 팬택은 원래부터가 직원들끼리 유대 관계가 뜨끈하기로 유명했다. 2001년 걸리버로 유명했던 현대큐리텔과 2005년 스카이로 유명했던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인수·합병(M&A)으로 외형을 확장해온 회사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팬택의 기술력 역시 자타가 공인한다. 팬택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휴대폰 기술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듀얼코어, 쿼드코어, 지문인식, 앤드리스 메탈 프레임까지 모두가 삼성이나 LG뿐만 아니라 애플까지 앞선 혁신적인 기술들이었다. 이런 기술력이나 조직력이나 대의명분만으론 슈퍼갑이 지배하는 왜곡된 휴대폰 유통 시장을 돌파하기엔 역부족이었단게 팬택의 한계였다. 시장은 감동을 사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시장에 사활을 걸다
국내 시장의 유통 경화증을 풀어내는 일이야말로 팬택 회생의 첫 단추다. 사실 이건 교과서적인 경영의 영역을 넘어선다. 정치와 행정과 규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팬택은 기술과 여론만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왔다.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이길 수가 없었다. 끝내 왜곡된 유통 구조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옵티스는 팬택 인수를 선언한 직후 변양균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변양균 신임 회장과 이주형 사장은 최근 부산 재경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이로 알려졌다. 팬택을 둘러싼 이목이 순식간에 변 회장한테 집중된 상태다.

사실 변 회장과 옵티스는 우선 법원과 채권단에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을 회생 전략으로 제시한 상태다. 팬택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하겠단 청사진이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정보통신혁명을 일으키려고 준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토가 대부분 섬으로 이뤄져있는데다 인구도 많다. 무선통신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 옵티스는 팬택의 시장 진출에 협조하겠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여기면 실패한다. 옵티스 이전에 인수를 희망했던 쪽에서도 여러 차례 해외 시장 진출을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손쉬운 답일뿐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변 회장이야 말로 팬택의 유통 경화증을 해결해줄 적임자일수도 있다. 고위 관료 시절 구축해놓은 정관계 영향력이 팬택의 기술력과 대의명분과 결합되면 공고한 이통3사와 대기업 제조사의 카르텔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

변 회장은 “팬택을 샤오미처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팬택이 샤오미처럼 중저가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비싼 요금제에 묶을 수 있는 프리미엄 폰만 요구하는 이통3사의 강압 탓이었다. 유통 경화증을 해결하지 못하면 팬택의 회생은 없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악순환을 끝내지 못하면 진짜 끝이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