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신동빈 시대 개막

25년만이다. 신동빈의 롯데월드가 시작됐다. 지난 7월15일이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3인 공동 대표이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임했다. 불과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신동빈 회장의 친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았던 직책이다.

지난 1월8일 신동주 부회장이 전격 해임되면서 그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롯데홀딩스의 대표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공동으로 맡게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다. 롯데홀딩스의 대표를 맡는다는 건 일본 롯데의 경영권을 쥐게 된단 의미다.

롯데홀딩스는 한국의 호텔롯데의 지분 19.07%를 통해 한국 롯데도 지배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11년 2월 한국 롯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번에 롯데홀딩스의 대표가 되면서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동시에 경영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롯데 모두에 권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유일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오랜 기간 동안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각각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책임지게 하고 철저하게 분리 경영을 해왔다. 이번 인사로 신동빈 회장 역시 신격호 총괄회장 못지 않은 권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한일 롯데 모두에서 사실상 신동빈 시대가 열린 셈이다.

1990년 한·일 후계경쟁 신호탄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과 함께 롯데홀딩스는 한일 롯데를 하나로 묶은 연결재무제표를 발표했다. 67년 롯데그룹 역사상 최초다. 지금까지 한일 롯데는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회사처럼 각자 경영을 유지해왔다. 사업상 정보 교류도 거의 없었다. 한일 롯데의 연결재무제표가 신동빈 시대를 알리는 의미심장한 신호탄인 이유다. 신동주 부회장이 해임된 이후 양사의 회계적 통합 작업이 진행돼 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25년 가까이 신동주 부회장이 이끌어온 일본 롯데 조직을 신동빈 회장이 장악하는 작업이 이뤄졌던 셈이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선임은 그런 내부적 통합 작업의 마무리였다.

실제로 지난 3월 베트남에서 열린 한일 롯데그룹 글로벌 식품 전략회의에선 처음으로 “원 롯데, 원 리더”라는 슬로건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한일 롯데는 하나이고 앞으로 한 명의 리더 아래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방향 제시였다. 당시 글로벌 식품 전략 회의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니라 신동빈 회장이 주재한 자리였다. “원 롯데, 원 리더”에서 원 리더는 바로 신동빈 회장이었다. 게다가 슬로건을 발표한 당사자는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이었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일본 롯데를 오랜 기간 책임져온 전문경영인이다. 일본 롯데 조직의 총책임자가 사실상 신동빈 회장한테 충성 맹세를 바친 셈이다.

사실 한일 롯데는 오랜 시간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각자 경영을 계속한 탓에 조직 문화도 상당히 다르다. 롯데라는 이름을 나눠쓰고 있지만 하루 아침에 물리적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이다. 해외 시장에서 한일 롯데 양사가 경쟁을 벌이는 경우마저 있었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한일 롯데가 각자 경영을 고집했던 건 신격호 총괄회장의 그린 후계 경쟁 구도 탓도 있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연년생인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사실상 쌍둥이처럼 성장시켰다.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모두 일본 태생이다. 모두 아오야마가쿠인대를 졸업했다. 신동주 부회장은 10년 동안 미쓰비시를 다녔다. 신동빈 회장은 8년 동안 노무라 증권에서 일했다. 둘 다 일본 롯데상사를 통해 처음 롯데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1990년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 부회장을 한국의 호남석유화학에 입사시킨다. 한국 롯데로 발령을 낸 셈이었다. 이때부터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력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버린다. 동시에 신동주 부회장의 일본 롯데와 신동빈 회장의 한국 롯데라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점차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쟁 구도가 선명해질수록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의 사이도 멀어졌다.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후계 경쟁은 사실 한일 양국의 거시 경제 환경과 맞물리면서 극적으로 전개된 측면이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를 세우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일본 롯데를 설립하고 20년 뒤였다. 한국에서 롯데는 제과 사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화학 산업에 적극 진출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정부 주도의 고도 성장기였다.

정부는 대기업들한테 기간 산업을 맡겼다. 한국 롯데는 다른 대기업들보다 중화학 산업에 진출하기 용이했다. 일본 롯데에서 엔화 자금을 끌어올 수 있어서 대규모 설비에 투자할 여력이 있었다. 반면에 일본 롯데는 상대적으로 중후장대형 사업보단 경박단소형 사업에 집중했다. 일본의 중화학 공업화는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 전후에도 롯데한텐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런 한일간 격차가 한일 롯데의 업태 차이로 나타났다.

이런 경영 환경 차이는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후계 경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일본이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자 일본 내수 시장 의존도가 컸던 일본 롯데의 성장은 주춤해졌다. 반면에 한국 롯데는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힘입어서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이미 이 무렵부터 한국 롯데의 규모가 일본 롯데의 규모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다만 한일 롯데의 연결재무제표가 없었던 탓에 공식적인 자료가 없었을 뿐이다. 양사의 실적 차이가 곧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실력 차이처럼 비춰졌다. 적어도 후계 경쟁을 바라보는 롯데 바깥에선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형제는 본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동생 승리로 막내린 25년 전쟁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신동빈 부회장이 신출귀몰한 인수합병 전략을 한국 롯데에 도입한게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노무라 증권에서 일한 다음 컬럼비아 MBA에서 공부했다. 거의 유사한 형제의 경력 중 유일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MBA다. 신동빈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재계의 금융전문가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신동빈 회장은 롯데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시작했다. 10년 간 인수한 기업이 35개에 달한다. 인수금액은 10조원에 이른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기업들을 인수했다. 위기에서 기회 찾기를 즐기는 금융전문가들의 전형적인 시장 공략법이다. 하이마트, GS리테일, 대한화재, 두산주류 같은 빅딜도 여러 건이었다. 덕분에 한국 롯데는 계열사 74개의 재개 서열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롯데의 연매출은 83조원이다. 연매출 6조원인 일본 롯데의 14배에 이른다.

1990년 신동빈 회장의 한국 발령으로 시작된 형제간 후계 경쟁은 자연히 한일 롯데의 경쟁으로 전개됐다. 결국 한국 롯데의 압도적인 성장과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 승계로 이어졌다. 2013년 신동주 부회장은 지분 매입으로 불리해진 상황을 역전시켜보려고 시도했다. 실적 경쟁에서 밀리자 지분 경쟁에 나서는 것처럼 비춰진게 화근이었던 걸로 알려졌다. 2014년 12월 26일 신동주 부회장은 ㈜롯데 이사에서 해임됐다. 그 뒤로 반년여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롯데그룹 경영에서 배제됐다.

이제 롯데그룹은 오랜 한일 롯데의 후계 경쟁을 끝내고 통합 시너지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사실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일 롯데 경영을 분리한 건 후계 경쟁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한일간 경제 환경 격차가 크던 시점에선 한일 롯데의 경영을 분리하는게 더 유리했다. 덕분에 한국 롯데는 한국 경제 상황에 적절하게 적응하면서 중화학과 소비제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한일간 경제 환경의 차이는 거의 없어졌다.

이젠 분리 경영보단 상호 보완적인 경영을 할 때다. 그동안 롯데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쌍두마차로 성장해왔다. 두 나라의 경기 차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성장했다. 이제 롯데는 하나의 롯데라는 단일한 기업으로 시너지를 내야만 한다. 롯데가 “원 롯데 원 리더”를 천명한 진짜 이유다.

사실 후계 경쟁은 신동주의 일본 롯데와 신동빈의 한국 롯데로 계열 분리되면서 끝날 수도 있었다. 신동빈의 원 롯데로 결정난 건 단지 압도적인 실적 차이 탓만은 아니다. 지금 롯데는 한일 양국 시장 모두에서 과감한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주 부회장의 부드러운 리더십보단 신동빈 회장의 결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일 롯데는 태국 방콕 도심에 면세점을 함께 열기로 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일 롯데가 8대2 비율로 출자하는 태국 면세점 사업이 “신동빈 롯데의 일체경영 1호”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신동빈 롯데월드의 난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서울의 제2롯데월드 타워 건설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물론 둘 사이엔 아직 정리해야 할 지분 소유 관계는 남아있다. 그래도 신동빈 시대는 사실상 시작됐다. 제2롯데월드의 시대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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