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파나소닉의 부활

지난 201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의외의 CEO가 개막을 알리는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랐다. 바로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이었다. 글로벌 전자업계에서도 권위 있는 전시회로 알려진 CES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다는 건 그 의미가 남달랐다. 애초에는 MS, 페이스북, HP 등의 CEO가 유력 후보였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파나소닉의 신임 사장이 발탁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글로벌 전자업계가 어리둥절했던 이유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파나소닉의 형편없는 실적과 사업성의 추락 때문이었다. 일본의 샤프와 소니 등과 가전시장 빅3로 불리는 파나소닉은 2008년 약 3조5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경영으로 전환되더니, 이어 2011년과 2012년에는 손실 규모가 약 7조원에 달할 만큼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위기에 직면한 글로벌 기업의 수장을 CES의 기조연설자로 내세운 것은 고개가 갸우뚱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과 3년도 안된 시간 동안 현재 파나소닉을 보는 시선과 평가는 완전히 뒤바뀌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쓰가 사장은 도쿄에서 열린 실적 발표장에서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49% 늘어난 약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약 80조원에 달했다. 쓰가 사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부터는 미래 성장을 우선으로 경영전략을 펼치겠습니다.” 과연 파나소닉은 어떤 변화의 혁신을 거치면서 단숨에 흑자기업으로 변신한 것일까?

LG전자 “파나소닉처럼 극복하자”
지난 6월 LG경제연구원은 ‘부활하는 파나소닉, 성역 허물고 본업 바꿨다’는 보고서를 통해 위기에 직면했던 파나소닉이 어떻게 사업을 구조개편하고 혁신을 단행했는지 분석했다. 일부 증권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현재 모바일과 가전부문의 실적부진으로 저성장 늪에 빠진 LG전자를 회생시킬 개혁모델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LG전자가 주목하는 파나소닉의 혁신은 바로 B2C에서 B2B로의 과감한 사업재편이었다. 파나소닉은 과거 일본을 대표하는 스마트폰, TV 제조업체였지만 쓰가 사장 취임 이후 PDP TV와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한 뒤에 자동차용 전장사업과 에너지사업 등 B2B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특히 파나소닉을 먹여 살렸던 TV사업의 철수는 세계시장에서도 큰 이슈거리였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던 PDP패널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중국, 멕시코, 북미 등에 넓게 포진한 생산공장을 처분하는 등의 메스를 댄 것이다.

파나소닉의 간판 B2C 사업이었던 스마트폰을 비롯해 반도체, PCB, 디지털 카메라 등도 하나씩 개편했다. B2C가 빠진 사업에는 대신 B2B 주력 사업들이 자리를 바꿨다. 바로 자동차 및 산업용 솔루션을 비롯해 에너지 솔루션, 기업용 오디오·비디오 사업 등이었다. 통합, 매각,철수 등 사업구조개편을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총동원했다. 

사업의 구조개편과 함께 인력구조조정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0년 당시 파나소닉 임직원은 38만명(연결기준)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11만명이 감소해 27만명이 남았다. 본사인력도 슬림화 정책을 적용하면서 빠른 업무 속도를 더했다. 2012년 7000명이었던 오사카 본사 직원은 사업부로 재배치하면서 대략 130명으로 대폭 줄였다. 파나소닉의 창업정신인 ‘고객가치’의 슬로건만 제외하고 쓰가 사장은 싹다 뜯어고치게 된 셈이다.

美 테슬라와 손잡고 전기車 페달 밟아
지난 6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파나소닉이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1위(40.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강자로 불리던 LG화학(8.8%))과 삼성SDI(5.7%)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파나소닉이 이렇게 가속페달을 밝을 수 있는 배경에는 세계 전기차 제조선두기업인 테슬라에 납품하는 배터리 공급량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나소닉의 테슬라용 소형전지 출하량은 지난해 2억8200만셀을 기록했는데, 올 상반기에만 2억8500만셀을 납품해 지난해 물량을 넘어선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지난해 7월부터 파나소닉은 테슬라와 손을 잡고 대규모 리튬 이온 배터리생산시설 건설 및 운영에 관한 협력을 다지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배터리 효율을 높이면서 비용을 낮추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테슬라가 파나소닉에 먼저 손을 뻗은 게 아니었다. 쓰가 사장은 올해 초 미국 <FORTUNE>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 다양한 측면에서 사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전기차에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까?’라고 자문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답을 테슬라에서 찾았지요. 바로 이 점이 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이유입니다.” 이쯤 되면 파나소닉은 3년만에 가전업체에서 완벽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로 탈바꿈한 B2B 전문기업처럼 보인다.

이러한 화끈한 변신에는 CEO의 역동성이 주효했다고 진단된다. CEO 나이치곤  젊은 55세의 나이로 취임한 쓰가 사장은 창업주를 제외하곤 파나소닉 창립 이래 최연소 CEO다. 95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파나소닉은 일본기업답게 굉장히 보수적인 문화로 정평이 나있다. 연공서열을 파괴한 쓰가 사장의 중용은 일본 재계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가전명가로 불리던 파나소닉의 무거운 발걸음 재촉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러한 젊은 CEO의 추진력과 과감한 개혁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글 : 하제헌 <FORTUNE>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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