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돌아온 최태원, SK그룹 어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지난 14일은 누구보다 특별한 광복절이었다. 7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마침내 의정부 교도소에서 출소했기 때문이었다.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이 된 뒤로 역대 재벌 총수로는 드물게 2년7개월 동안 복역을 해왔다. 그가 926일의 수감기간을 보내는 동안 SK그룹 임직원들은 망망대해를 선장 없이 보내는 심정으로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SK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예정된 항해를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거기에는 SK그룹이 자랑하는 SK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가 큰 역할을 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각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산하 위원장으로 참여한다. 최 회장은 2012년 겨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김창근 당시 부회장에게 넘기면서 자신을 정조준 한 검찰 조사에 본격적으로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 회장이 수감된 시기 동안 김창근 중심의 수펙스추구협의회가 SK그룹의 경영 운전대를 대신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향력을 보여줬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받은 성적표도 우수한 편이었다.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최 회장이 없던 지난 2년 동안 매출이 16조6021억원에서 17조1638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매출이 14조1651억원에서 17조1256억원으로 뛰어올랐다. 두 회사 모두 영업이익이 대폭 상승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저유가 흐름으로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지만 올해 다시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자율경영협의체라도, 급박한 그룹의 항로 변경이나 새로운 장기 목표를 제시하면서 수조원의 투자를 단행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최 회장의 공백기 동안 SK그룹은 사업 전반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할만한 최대 무기가 없는 상황이었다. 총수 공백의 여파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실정이었다. 여전히 그룹 총수의 명운이 그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국내 대기업 경영 생태계를 고려한다면, 최태원 회장의 부재는 분명히 SK그룹의 최대 경영위기였다.  
 
총수의 경영 공백으로 불러일으켜진 경영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최태원 회장은 출소하자마자 경영전반에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오너 리더십을 발휘했다. 15일과 16일 이틀 연속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 나와 경영진과 그룹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17일에는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장동현 SK텔레콤 사장 등 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단을 만났다. 19일에는 SK그룹 연구시설인 대전 R&D센터와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연일 강행군 행보였다. 사업 전반에 발 빠른 혁신과 수익증진을 위해 본격적인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돈 버는 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SK그룹은 분명 최태원 회장 출소 이후 이전과 다른 변화와 혁신의 색깔을 띠고 있다. 향후 1년 안에 SK그룹은 굵직한 인수합병과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신사업을 발표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러한 목표의 공통점은 안정적인 매출 달성에 맞춰져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모든 기업의 공통적인 고민이자 지상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SK그룹은 조금 다르게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타려고 한다.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돈 잘 버는 기업도 중요하지만 존경 받는 기업으로까지 내다보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출소를 하면서 통 큰 기부를 약속했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저소득 노인층 주거 복지 해결을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200억원, 2016년 400억원, 2017년 400억원을 사회에 기꺼이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의 사회적 기업을 향한 진일보는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이자 아이디어였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옥중에서 자신의 지난 10년간 사회적 기업 활동을 정리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SK그룹이 전사적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 등이 제시돼 있었다. 최 회장은 출소 뒤 첫 SK수펙스추구협의회 등 주요 계열사 사장들과 만나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를 주요 안건으로 거론했다.

최 회장은 이미 자신의 사재를 털어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지난해에는 개인돈 100억원을 출연해 카이스트 청년창업투자지주를 만들었고 올해 초 청년 사회적기업가 5명을 첫 투자 대상자로 선정했었다. 그는 수감 중이었던 2013년에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보수 187억원 전액을 사회적 기업 지원과 출소자 자활사업 등에 기부하기로 한 바 있었다.

이러한 행보를 두고 최 회장 자신의 특별사면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냉혹한 시선과 평가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SK그룹의 변신은 긍정적인 구석이 많다. 재계 3위인 SK그룹이 이제 국가대표 기업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존경 받는 기업’이 되려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정서 상 대기업 총수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다분히 부정적인 성향이 짙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순환출자로 5%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도 거대 공룡기업을 쥐락펴락한 탓도 컸다. 가업을 승계할 때마다 불거지는 교묘한 편법승계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대기업이 존경 받기에는 턱없이 척박한 환경임에 틀림이 없다.

최태원 회장에겐 분명히 어려운 길이다. 그는 출소 직후 취재진들에게 “국민께 사랑받는 SK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서 지난 17일 그룹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하루라도 빨리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고 여러분과 함께 그룹을 성장시켜 나가면서 고객과 주주를 비롯한 사회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라도 존경 받고 사랑 받는 기업으로 항로를 전환하는 것은 최태원 회장이 개인적으로 장기간의 투옥을 경험했기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 경영석학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존경심을 토대로 세워 진다”고 강조했다. 위대한 기업들은 고객, 자신 그리고 그 관계를 존중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배경을 떠나 직원들을 존경한다. 특히 기업이 존경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기부를 통해서라도 존경이라는 핵심가치에 한 발짝 다가설 수도 있는 것이다. 8월14일 이후 최태원 회장은 국민과 고객과 직원들에게 존경 받는 SK그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조용히 선언한 셈이다.

지배구조개편과 하이닉스라는 최대 무기
그렇다고 존경을 받기 위해 무턱대고 기부와 사회 환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선진기업으로 그룹의 위상을 높여야만 비로소 존경이라는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복귀 이전부터 SK그룹의 체질을 확 바꿔버렸다. 새로운 경영체제를 꾸리면서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우선 SK그룹은 옥상옥 지배구조로 불리는 경영체제를 뒤바꿨다. 최 회장 출소 이전 SK그룹의 지배구조는 회장→SK C&C→SK→사업자회사의 다소 복잡한 형태였지만, 지난 1일 SK와 SK C&C를 공식 합병한 이후에는 최 회장→통합 SK→사업자회사로 깔끔하게 개편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를 완비했다.

이러한 지배개편은 앞으로 SK그룹의 크고 작은 신사업과 굵직한 투자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 최 회장은 지난 17일 경영회의를 열고 투자가 시급한 반도체, 에너지·화학, 정보통신 사업 등을 중심으로 46조원을 쏟아 부을 방안을 검토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계열사 사장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그는 투자의 시기와 규모를 빠르게 앞당기고 확대했다는 점이다.

SK그룹 전체로 볼 때 최 회장의 정열적인 재기는 어느 때보다 힘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 회장이 없는 사이 SK네트웍스는 서울 신규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고배를 마셨고, KT렌탈 인수에서도 막판 배팅에 밀려 탈락했다. SK텔레콤은 ADT캡스 인수전에서, SK E&S는 STX에너지 인수에서 중도 포기했다. 대규모 투자에는 총수의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태원 회장이 가장 주력할 사업은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바로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 단행 말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전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업계 2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본력을 갖춘 중국 기업들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을 호심탐탐 노리고 있어 SK하이닉스의 선제공격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서나 잘나가는 기업이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4위 정도에 머물러 있는 후발기업이다. PC와 스마트폰의 수요 둔화로 D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낸드플래시가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선제투자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이를 수익으로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6조원을 투입해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2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 회장의 SK하이닉스 사랑은 유별났다. 옥중에서도 수시로 하이닉스 CEO를 불러 주요 사안을 점검했고, 기술투자 지시를 아끼지 않았다. 출소 이후 첫 방문한 이천공장에서는 드물게 1박2일 일정으로 하루를 머물며 투자 계획과 생산 일정 등을 점검했다. SK그룹은 지난 2012년 거의 망가져간 이 회사를 3조3000억원에 사들였다.

현재 이 회사는 SK그룹에서 가장 강력한 사업으로 성장했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수 당시만 해도 시장은 물론 내부에서도 성장성이 없다고 고개를 저으며 인수합병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끄러운 여론을 단숨에 잠재운 건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었다. 이제 SK그룹은 최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전과 달라진 최태원 회장을 통해 SK그룹은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고 다시 존경 받는 기업으로의 도약을 차근히 준비할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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