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취임 5주년 맞는 LG 구본준

국내 생활가전 시장인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의 분야의 강자는 누굴까. 언뜻 답을 내리기 어렵겠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용호상박이라고 답할 수 있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인 가을에 접어들면서 생활가전에 대한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고려하는 지인들이 있는데,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봐도 LG전자는 삼성전자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오히려 앞서는)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반면에 스마트폰과 TV시장에서의 1등은?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이며, 9년 연속 세계 TV시장 선두를 독식하는 존재다. 반면 LG전자가 얼마나 뒤처지고 있는지는 이 회사의 가계부 격인 재무제표를 뜯어보면 된다. LG전자는 지난 2분기 스마트폰 사업(MC사업본부)으로 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0.005%에 불과한 수치다. 잘 알다시피 영업이익은 매출총액에서 원가와 판매비 및 관리비를 모두 뺀 순수 이익을 뜻한다. LG전자의 TV사업은 더 심각하다. 2분기에 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생활가전이 먹여 살리는 사업구조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생활가전사업(H&A사업부)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스마트폰과 TV사업의 리스크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 현재 LG전자의 전체적인 사업구조의 그림이다. LG전자는 지난 2분기 244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전년동기 대비 4%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생활가전사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90% 넘게 차지하면서 LG전자의 생활가전 의존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무엇이 LG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깎아먹고 있는지 소비자도 알고, 경영진도 알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 사업이다. 이제 LG전자는 주방과 다용도실에서나마 어깨를 펼 수 있는 생활가전 전문기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신세가 됐다.

3분기라고 형편이 나아질 것으로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가전업체의 경우 9월부터 12월까지 비수기라고 말한다. 날씨처럼 가을과 겨울에는 가전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이슈도 적다. 반면에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나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가 1월에서 3월사이에 개최되는데 그 배경에는 전자제품시장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전시장도 소비 사이클이 분명하다는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슈도 없고, 호재도 없는 3, 4분기에 LG전자는 어떤 성과를 기록할까. 그나마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LG전자가 이 시기에 전년동기 대비 20~40%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추세다. 이 역시 세탁기와 에어컨과 냉장고의 힘으로 비롯된 선방이다.

여전히 스마트폰은 성장의 견인차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지난 수년간), 분석가들은 이를 딱 꼬집어 LG전자의 위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누구나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오너십도 소용없는 위기경영 5년
스마트폰 사업은 LG전자가 생활가전기업으로 남느냐,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비상하느냐를 결정하는 도약대 역할을 한다. MP3 플레이어를 만들던 애플이 글로벌 1위가 된 원동력에도, 중국의 중견기업인 샤오미가 삼성을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부상한 계기에도 스마트폰 사업이 주효했단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결코 손에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LG전자가 절치부심하며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을 필두로 달려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달 1일이면 구본준 부회장은 취임 5년을 맞는다. 취임 5주년을 맞는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의 새로운 먹을거리에 대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못한다면, 지난 5년은 어쩌면 잃어버린 5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난 5년간 LG전자는 어떤 혁신과 변화를 거쳐 왔을까. 구 부회장은 취임 이후 내건 가치는 세가지다. 바로 변화와 도전 그리고 품질이었다. 이미 그는 과거에 LG디스플레이를 3년도 안 돼 업계 1위로 올린 성공 경험이 있는 오너였다. 게다가 전문경영인보다 과감한 결정과 사업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강점도 지녔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LG전자는 올해 2분기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4%를 차지하며 간신히 5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0% 시장 점유로 1위다.

그래서 지난 5년 구본준 체제에 대한 평가는 ‘사업 재정비’가 아니었냐는 평가가 나온다. 다시 말해 미래를 선점하는 도전과 변화보다는 그동안 LG전자가 잘해오던 걸 더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역점을 뒀다는 것이다. 지난 5년 구본준 체제 아래서 MC사업본부의 임직원들은 갈팡질팡 대기 일쑤였다. 명확하고 혁신적인 사업목표를 정하고 올인하기보다는 선두 업체들이 일구어 놓은 스마트폰 유행에 맞춰 기능과 품질을 강조한 전략을 구사했다.

더 큰 패착은 인력관리였다. MC사업본부의 유능한 기술자들이 대거 다른 회사들로 빠져나가는 위기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서도 MC사업본부의 인력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하면 LG전자의 MC사업본부 인력 15~20%를 다른 사업부 등으로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실히 재도약보다는 재정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구본준 체제의 맹점이다.

스마트폰 도약의 마지막 기회될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지난 5년은 LG전자가 스스로 생활가전 중심의 전자기업으로 후퇴했던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분명 G시리즈 스마트폰을 통한 전반적인 혁신을 꿈꾸기도 했지만, 시장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현재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의 회생을 준비하는 인물은 조준호 사장이다. 스마트폰 사업의 활기가 LG전자의 근본적인 위기경영을 극복하는 필수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수조건은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조준호 사장은 LG전자의 지난 5년간의 스마트폰 사업의 패착을 마무리 짓고, 반격의 5년을 준비할 인물일지도 모른다. 오너십의 한계에 직면한 대기업일수록 전문경영인의 결정과 리더십을 인정하고 키워줘야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내달 1일 서울과 뉴욕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발표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날은 구본준 부회장의 취임 5년이 되는 날이다.

LG전자는 5년전과 달리 보급형 스마트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고스펙, 고기능으로 승부를 거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제대로 속도 경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LG전자의 새로운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대폭 강화할 것이란 정보가 있다. 일부 시장에선 최근 나온 아이폰6S, 갤럭시노트5, 갤럭시S6엣지플러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프리미엄 스마폰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도 돈다.  

문제는 LG전자가 시장의 어떤 틈새를 공략할지 여부다. 세계 휴대폰 시장 5위인 LG전자는 선두그룹인 삼성전자와 애플 그리고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기업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로 끼여 있는 상황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의 최적화에 강점을 보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소재, 휴대폰 부품과 완제품 단계까지 수직계열화를 해서 하드웨어에 특화돼 있다. LG전자는 반도체도 없고, 자신만의 소프트웨어도 없다. 지난 5년 스마트폰이 뒷걸음질치고 그 여파로 전체 사업 비중이 생활가전으로 치중된 것도 이러한 태생적 한계가 있었기에 그랬다.

어쩌면 LG전자는 중장기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1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조준호 사장은 지난 3월 MWC에서 이렇게 선전포고를 했다. “하반기에 G시리즈를 뛰어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출시하려 합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라인업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3위 자리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스마트폰 시장은 42㎞ 넘게 달리는 마라톤 경쟁으로 비유될 수 있다. 선두그룹과 한참이나 떨어진 3위 이하의 중위권은 우승 확률이 거의 없다. 이미 시장의 승자는 선두권에서 결정됐고, 뒤집기에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문제는 중위권의 선두자리를 누가 잡느냐의 싸움이다. 승부에는 1, 2등만 있는 게 아니라, 오래 함께 달리는 3등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LG전자는 중국 업체들과 중위권 선두 다툼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LG전자에게 삼성전자와 애플은 경쟁자가 아니다. LG전자의 또 다른 5년은 사실상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5년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LG전자에겐 시간이 정말 없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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