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그룹재건 나선 금호 박삼구 회장

드디어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최근 금호산업을 다시 품에 안으면서 그룹을 재건하는 기초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8일 금호산업 채권단은 박 회장에게 제시할 경영권 지분(지분율 50%+1주) 인수가격을 주당 4만1213원, 총 7228억원으로 결의했고 24일 채권단과 박 회장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박 회장이 7228억원을 올해 안에 마련하면 다시 금호산업의 주인이 된다.

지난 2009년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이후 대략 6년이 지났지만, 실질적으로 그룹을 해체하게 된 원흉은 2006년부터다.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이어 2008년 대한통운을 사들이면서 그룹의 주춧돌이 마구 흔들렸다. 두 회사를 인수하는 데 쓴 자금만 10조원에 달한다. 2006년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였다. 박삼구 회장은 60년을 기점으로 또 다른 60년을 준비하려 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2016년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창립 70년이 되는 해다. 금호산업의 인수는 사실상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운전대를 쥔다는 의미다. 금호산업은 그룹 재건의 첫번째 퍼즐이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30.08%)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 금호사옥,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에어포트,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로 이제 박 회장은 항공을 시작으로 건설, 터미널 등 핵심적인 그룹의 먹거리를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

자금력 관건…돈맥 네트워크 활용해야
금호산업을 되찾았지만, 그룹 재건의 길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금호산업을 살 자금 여력이 있느냐하는 거다. 올해 내내 금호산업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은 인수가격을 두고 줄기찬 밀당을 해왔다. 채권단은 최초 1조218억원을 제시 했었다. 이에 박 회장은 6503억원을 불렀다. 50% 수준의 인수가격을 부르며 과감한 딜이 가능했던 것은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채권단에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채권단이 너무 일찍 우선매수청구권을 줬기에 자승자박이었다는 냉혹한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어 박 회장이 다시 7047억원을 제시했고 채권단이 7228억원으로 조정하면서 최종 인수가격이 확정됐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박 회장의 자금사정을 고려해 계약금(매매가의 10%)을 받지 않는다. 인수가격부터 조건까지 박삼구 회장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매각진행에 대해 시장에서는 ‘오너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제 박 회장은 10월 안에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3개월 안에 매각대금을 내지 못하면 금호산업은 다시 다른 주인을 찾아야 한다. 일단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자금줄이 말라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12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 때문에 33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박 회장과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그리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등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타이어 지분도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다. 현금이 따로 없는 관계로 결국 가지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을 팔아야 할 형편에 직면해 있다.

최근 주요 일간지와 증권가는 금호고속을 되팔 것이라고 예상한다. 금호고속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기업이다. 그룹의 뿌리라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박 회장은 지난 5월 금호고속 인수대금 4150억원을 지불하며 지분 100%를 확보했었다. 어렵사리 되찾은 그룹의 뿌리를 불과 5개월도 안 돼 되팔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은 그만큼 박 회장의 현재 자금력이 미약해졌다는 뜻이다.

10년전 승자의 저주 ‘반면교사’
팔아도 잘 팔아야 한다. 최근 금호고속을 사려고 나선 곳은 칸서스자산운용이다. 이 회사의 대표인 김영재 회장은 박삼구 회장과 광주일고 동문이다. 만약 이 회사에 팔린다고 해도 금호고속은 오랫동안 박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그룹 행보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밖에도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로 거론되는 신세계, 롯데, CJ 등 유통기업들을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 유통기업들은 아시아나항공의 면세점이나 기내식 등과 협업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에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친인척 관계인 대상그룹(임창욱 명예회장이 매제)이나 지난 2003년 금호타이어 지분 70%를 매입해 도움을 줬던 군인공제회의 도움도 충분히 가능한 돈맥(錢脈)이다. 지분 담보대출 이야기도 나온다. 금호산업 주식 20~30%를 담보로 1000억원대의 자금을 끌어다 쓴다는 말이다. 결국은 빚을 내어 그룹을 재건하는 게 박삼구 회장이 할 수 있는 예상 시나리오들이다.

그룹 재건의 시나리오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금호산업이 그룹 재건의 주춧돌이라면, 금호타이어는 그룹의 큰 기둥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다시 되팔 것으로 예상되는 금호고속도 그룹 재건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에 되사야 한다. 당장 금호타이어 인수에도 수천억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지난 2010년 워크아웃으로 채권단에 42% 가량의 지분이 팔렸다.

여기서 운명의 시계는 다시 2006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잃어버린 10년을 촉발시킨 원흉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무리한 인수부터였다. ‘승자의 저주’라는 딜레마다. 막상 어렵사리 시장의 거물을 사들였지만, 인수한 기업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게 되고 그 여파로 그룹 전체의 경영환경마저 흔들리는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품으려다가 그룹의 핵심격인 금호산업과 그룹의 전통인 금호고속과 큰 기둥인 금호타이어를 잃어버렸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토해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건 프로젝트가 10년전 승자의 저주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박 회장의 확실한 사업구조 개편과 구체적인 미래비전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승자의 저주를 운운하는 이유가 있다. 금호산업 인수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는 아시아나항공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에 그렇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매출 가운데 50% 이상을 차지하는 캐쉬카우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절박하다 못해 위기까지 치닫고 있다. 저유가의 장기화로 항공사의 운영비용이 낮춰지고 있는 반면에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 614억원 가량 적자를 봤다.

여기에 저가 항공사들이 국내는 물론 동남아 등 인접 국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노선 입지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의 매출 절반이 단거리 노선(에어부산 지분 46%도 보유하고 있음)에서 발생하기에 저가 항공사들의 공세는 상당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하늘 노선을 양분했던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는 조금씩 퇴색되고 있다.

경영권 승계 등 그룹 재건 숙제 산적해
하늘에서만 위기가 발생한 게 아니다. 금호타이어는 매년 상당한 노사 갈등으로 생산차질을 빚기가 일쑤다. 최근 금호타이어 노조는 한달 넘게 파업을 했고 사측도 보름 가까이 직장을 폐쇄했었다. 금호타이어는 한국타이어에 이어 국내 타이어 시장의 2위를 굳건히 차지해온 강자다. 하지만 지난 상반기 3위 기업인 넥센타이어보다 영업이익에서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파업 여파로 3분기 실적도 장담치 못하는 분위기다. 하늘에서 저가항공사에 쫓긴다면, 땅에서는 넥센타이어에게 역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어쩌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건의 마지막 퍼즐은 박삼구 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일지도 모른다. 금호산업의 인수가 연내 마무리되면 아마도 박 회장의 외아들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박삼구 회장과 그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두고 여전히 냉랭한 갈등 양상이라는 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통적으로 우애 좋은 형제끼리 함께 운영하는 형제경영이 원칙이었다. 박찬구 회장이 과거 ‘형제의 난’을 일으킨 연유도 박삼구 회장이 전통을 깨고 박 부사장에게 전권을 양위하려 했기에 반발한 것이다. 형제의 난 여파로 2009년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과 경영일선에서 동반퇴진한 아픈 기억도 있다. 박찬구 회장은 2010년 2월, 박삼구 회장은 같은해 10월 각각 경영 복귀했다.

이렇듯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것은 전체적인 그룹 재건 과정에 있어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인수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명운이 달려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다시 재계서열 10위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7228억원의 금호산업 인수자금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수년간 와신상담해 온 박삼구 회장의 경영 리더십이 얼마나 발전했고 혁신했느냐가 관건이다. 분명한 것은 박 회장에게 정말 마지막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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