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김정태의 KEB하나은행

약 100일 만에 꺼내든 야심작이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그룹 계열사 포인트를 통합해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만든 ‘하나멤버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나멤버스는 지난 7월 긴 산통 끝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이 성사된 뒤 두 은행의 통합 시너지를 발휘하는 첫 서비스였다.

하나멤버스는 금융권 최초라는 타이틀을 수식어로 달았다. 하나멤버스에 가입만 하면 하나금융그룹 계열사별 거래 실적에 따라 ‘하나머니’를 포인트로 적립 받는데, 이를 실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하나은행이나 외환은행 계좌에 입금하거나 현금자동입출금기인 ATM을 통해 하나머니를 현금으로 출금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과금·대출이자 납부, 카드 결제, 보험 가입도 가능하다. 하나머니는 모바일로 간편 이체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전화번호만 알면 친구에게 하나머니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SK플래닛의 OK캐쉬백의 잔여 포인트나 신세계 이마트 포인트를 하나머니로 바꾸고 이를 다시 현금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하나머니는 핀테크 시대를 대비한 전처후 머니인 셈이다.

이날 김정태 회장은 “하나멤버스는 기존 ICT 기업이나 유통 업체들이 주로 제공하던 멤버십 서비스를 금융권에 도입한 최초 사례”라고 강조했다. 카카오나 네이버 그리고 이마트, 롯데마트 등이 고객에게 제공했던 서비스를 은행 비즈니스로 과감하게 적용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통합된 KEB하나은행의 첫 작품
금융의 편리성을 전면에 내세운 KEB하나은행의 도전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금융권 풍속도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김정태 회장이 ‘모든 금융의 길은 하나은행으로 통한다’는 등식을 만들려는 야심도 업계 지형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에 그렇다.

가장 먼저 이달 말 계좌이동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은행권들이 분주해지고 있다. 계좌이동제란 주거래은행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길 경우 기존 계좌에 연결돼 있는 카드 대금, 각종 공과금 자동이체 등을 통합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휴대폰 번호이동제하고 닮은꼴이다. 사용하던 번호를 그대로 가지고 다른 이동통신 회사를 선택하는 이동제로 SKT, KT, LG유플러스 등 이동 3사는 매 순간 피 터지는 고객확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계좌이동제가 안착되면 회사마다 서로 고객유치전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김정태 회장도 연간 약 800조원으로 추산되는 자동이체 시장을 놓고 은행권의 고객기반 확보를 위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에 선도적으로 하나멤버스를 내놓으며 시장에 혁신을 부르짖은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통합이 되고 나서 하나금융이 고객한테 무엇을 줬느냐를 말하기 위해서 만든 상품 중 하나가 바로 하나멤버스”라고 말했다. 달라진 하나금융이 고객에게 선보인 첫 선물이 바로 하나멤버스라는 것이다.

은행권의 기본 전략은 안정적인 고객 확보에 있는데, 하나금융은 더 큰 집을 짓고 더 많은 손님을 모으려고 하나은행-외환은행 통합 작업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김정태 회장이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자산을 합치면 약 290조원에 이른다. 신한은행의 약 260조원보다 30조원이 많은 메가뱅크가 탄생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은행자산은 기업이든 개인고객이든 은행에 맡긴 돈의 총합을 말한다. 통합 과정으로 단숨에 은행권의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KEB하나은행은 그 몸집에 걸맞은 무기(서비스)들이 필요한 것이다. 통합 은행의 통합 금융서비스는 분명히 업계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다.

김정태 회장은 하나멤버스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하나멤버스는 고객 서비스에 대한 차별화 전략인데 너무 많이 알려져 카피가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하나멤버스 같은 전략적인 서비스는 한 금융 계열사(은행, 카드, 보험 등)의 고객기반을 하나로 묶고 여기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기에 KEB하나은행 보다 더 강력한 고객 네트워크를 갖춘 경쟁사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면 치열한 시장 경쟁도 불가피하다.

계좌이동제 실시 이전에 이미 여러 은행들이 특화된 고객 서비스를 보였는데, 거기서 거기라 차별성이 좀 떨어졌었다. 이처럼 KEB하나은행을 비롯해 은행권 전반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는 이유에는 핀테크 시대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

핀테크 시대에 대응한 ‘원큐’ 서비스
최근 금융계의 뜨거운 이슈는  핀테크인데 은행권에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기존 금융시스템을 탈피해 인터넷은행, 페이 등의 대표적인 서비스들을 말한다. 모바일 결제 및 송금, 개인자신관리, 클라우드 펀딩 등 IT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술이다.

최근 IT기업들이 애플페이, 페이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을 선보이고 있는데,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 간편하게 지불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은행권도 비슷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데, KEB하나은행이 지난 13일 발표한 서비스 혁신 선언도 이러한 기존 은행권의 혁신 노력 중에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핀테크 시대에 맞춰 KEB하나은행이 내세운 서비스는 바로 ‘원큐(1Q)’ 브랜드다. 김정태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사인 국민과 신한지주를 언급하며 “이들도 나름의 강점이 있지만 하나금융지주는 핀테크 쪽으로 앞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경쟁사 대비 KEB하나은행의 영업력이 뒤처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으로 945개의 영업점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는 신한은행을 제치고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어 3위 수준이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은 새로운 KEB하나은행의 갈 길을 기존 소매금융에서의 점유율 확보에 집착하는 것 보다 핀테크와 같이 해외시장까지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시장에 전념하는 쪽으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원큐의 성공이 중요하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원큐 뱅크’와 온라인 전용 대출 ‘원큐 대출’ 등으로 하나금융의 통합 브랜드로 밀고 간다는 방침이다. ‘한방’에 모든 은행 업무를 제대로 하는 원큐 서비스는 핀테크의 경쟁력인 속도와 품질의 키워드를 잘 읽고 선보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가장 큰 고민은 이러한 서비스가 조기에 시장에 정착해 고객들이 널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된 내부 문화 결속도 관건
김정태 회장은 핀테크 사업에서 부족한 기술력과 실행력은 협업을 통해 풀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상품을 출시하려면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금융의 힘만으로 핀테크 사업을 추진하기는 역부족”이라며 “핀테크 기업과 함께 해야 하고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하나멤버스, 원큐 등 새롭게 선보인 금융 서비스가 경쟁사 대비 과감하고 빠른 것은 맞지만, KEB하나은행에게는 이보다 앞서 풀어야 할 내부적인 과제도 아직 남았다. 바로 ‘하나’된 은행 문화를 구축하는 일이다. 하나은행 내부에는 HSBC라는 말이 있는데, 각각 과거 통합 과정에서 기존 은행의 첫 이니셜(하나·서울·보람·충청)을 딴 명칭이다. 그간 여러 은행이 계속 합쳐지면서 내부적으로 화학적 결합은 항시 문제였고 화두였다. 더군다나, 최근 외환은행이 더 해지면서 김정태 회장이 평소 강조하는 ‘원뱅크’ 정신의 결속이 절실해 보이는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난제를 풀어줘야 할 사람은 외환은행 통합을 이끌어낸 김정태 회장밖에 없어 보인다. 김정태 회장 집무실 문에는 ‘Joy Together(함께 즐기자)’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누구든지 방으로 찾아와 대화를 나누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통합을 결사반대했던 외환은행 노조를 설득하고 조기통합을 이끌어낸 원동력도 이런 김 회장의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었다.

단단한 조직문화인 원뱅크의 과제가 풀려야 향후 글로벌 메가뱅크의 도전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태 회장은 합병 초기인 지난 7월 KEB하나은행의 영업력을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까지 넓히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외환은행의 해외 영업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영업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쩌면 소매금융의 하나은행과 기업금융(외환업무)의 외환은행의 시너지는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더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서로의 장점을 배워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진짜 시너지 효과 창출의 출발일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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