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뽀드득’하면 생각났던 부광약품 안티프라그 치약.
거대기업이 이미 차지해 버린 치약시장에 신개념·고가제품으로 도전장을 낸 부광약품의 안티프라그 치약은 누구나 불가능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주류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대표적인 마케팅 사례로 손꼽힌다.
부광약품이 치약시장 진출을 검토할 80년대 당시 국내 치약시장은 시장점유 97%의 거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상태였다.
1955년 이후 본격적인 치약 생산이 시작 됐지만 30개에 이르는 브랜드가 사라질 만큼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의 신규 브랜드가 새롭게 진입한다는 것은 회사의 사활을 건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기능성 부각위해 ‘프라그’ 도입
그러나 부광약품은 치약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컸고, 중산층 이상의 경우 ‘콜게이트’와 같은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는 등 품질만 좋다면 가격은 감수하겠다는 욕구가 강하게 내재돼 있었던 점을 알아 차렸다.
이러한 소비자 욕구를 반영한 부광약품은 1981년 고가 제품을 내놓으며 치약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300원 하던 치약 가격을 1,500원으로 책정해 시장에 내놓았던 것. 중간가격 대 치약조차 없던 시장에 고가제품의 도입은 큰 모험이었지만 한편으로 신 개념을 뒷받침해주는 가격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부광약품은 제품의 기능성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개념조차 생소했던 ‘프라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 대기업의 막강한 유통지배력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광약품은 우선 광고로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약국보다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을 주요 유통경로로 택해 고급제품이라는 차별화 된 이미지도 확보했다.
프라그 테스트를 통해 양치질 후에도 프라그가 남아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은 광고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고 프라그가 치석 및 잇몸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국민 캠페인을 펼쳤다.
여기에 치 위생사 등 치과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기능성을 부각시키는 영업활동을 계속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졸 취업자를 영업현장에 배치, 전문성을 부각시켰다.
독점지배시장을 뚫고 새로운 치약시장을 만들기 위해 ‘제품개념의 효과적 전달과 강력한 시선유도’를 목표로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이 전개됐다. 생소한 ‘안티프라그’라는 개념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감성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랐다.

‘뽀드득’ 광고 선풍적 인기 끌어
프라그 제거의 매커니즘을 보다 감각적이고 신선하게 표현하기 위한 고심 끝에 ‘뽀드득’이라는 로고 사운드가 탄생했다. 물에 젖은 풍선을 문지를 때 나는 ‘뽀드득’ 사운드는 그 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살아 있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대적인 캠페인 성공으로 ‘브렌닥스’는 1981년 3%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을 1983년에는 19.9%로 끌어올리며 고성장을 이룩했다.
캠페인의 효과는 1983년 5월 전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1천2백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조사에서 부광약품은 1위 기업을 제치고 광고접촉률 92.8%, 상표상기율 95.6%, 광고선호율 58.3%, 주기억률 72.6% 등의 기록을 세웠다.
박완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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