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월트 디즈니의 세계

밥 아이거는 2005년 10월 월트 디즈니 CEO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창조적 콘텐츠에 대한 투자, 세계시장 진출 확대, 기술적 혁신이라는 세가지 경영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아이거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CTO에게 전체 사업부 관리를 도맡기는 대신, 사업부별로 한 명씩 따로 선임했다.

궁극적으론 자신이 회사 전체의 기술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심은 의도적이었다. 실제로 현재 디즈니에서 가장 CTO 역할에 근접한 인물은 바로 아이거 자신이다. 아이거는 이에 대해 “각 사업 부문이 더러 실패하더라도 본사에서 파견한 감시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계속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와 기술, 그 중 한쪽에 집중하는 회사는 많이 있다. 하지만 디즈니만큼 두가지 모두에 집중하는 회사는 드물다. 2013년 전 세계를 휩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경우, 애니메이터들은 눈보라 속에서 흔들리며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스노우볼에서 눈 입자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먼저 수천개의 눈 입자 모양을 만든 후 각각의 눈 입자를 서로 결합시키는 방식의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그 결과 ‘겨울왕국’ 속 겨울 장면은 매우 실감 나게 묘사됐다.

이제는 가상현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간헐적인 제휴를 넘어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로 변해왔다. 이런 추세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이거는 여러 최신 기술에 대규모 조기 투자를 단행했다. 그가 최초로 내린 지시 중에는 ABC(디즈니 산하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인 ‘로스트’와 ‘위기의 주부들’을 애플의 아이튠스에 올리라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로선 전례가 없는 결정이었다.

매직밴드의 마술
이듬해에는 인터넷에 TV 프로그램 전편을 무료로 제공해 또 한번 새로운 장을 열었다(디즈니는 ABC 외에도 ESPN, 픽사, 마블 엔터테인먼트, 루카스필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월드에서 사용 중인 RFID 칩내장 손목 밴드, 인터랙티브 모바일 앱, 영화 촬영용 드론 등 수많은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놀이공원 입장부터 기념품 판매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춘 RFID 칩 내장 손목밴드인 ‘매직밴드(MagicBand)’에 투자한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매직밴드를 찬 방문객의 평균 소비 금액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다(디즈니는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디즈니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을 가장 먼저 출시한 미디어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최근에는 디즈니 매장에서 애플의 새로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Apple Pay)의 결제도 가능해졌다. 또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애플의 스마트 워치도 내년 초 출시될 예정이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아이거를 “눈 앞의 일을 제쳐 둘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며 “디즈니의 전통을 잘 알지만 이에 집착하지는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디즈니는 언제나 사실적인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제작할 땐 배경에 시각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멀티플레인 카메라(multiplane camera)를 도입했다.

1963년에는 디즈니랜드 ‘마법의 티키 룸(Enchanted Tiki Room)’에 전기로 작동하는 지저귀는 새들을 설치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로봇 분야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기술기업으로의 진화
지난 10년 동안 아이거가 보여준 경영 행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가운데 한가지가 있다. 이젠 미디어 기업이 기술 기업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업 CEO도 CTO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디즈니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줬다. 지난해 11월 디즈니는 2013년보다 8% 성장한 연 매출 488억달러를 올려 4년 연속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아이거가 이끄는 디즈니의 총주주수익률(TSR)은 S&P 500대 기업 평균인 104%를 훌쩍 뛰어넘는 341%를 기록했다.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브랜드들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09년 디즈니가 인수한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영화계의 최대 흥행작 다섯편 중 두편을 배출했으며,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 흥행작인 ‘겨울왕국’도 여전히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아이거의 성과에 만족한 디즈니 이사회는 지난해 10월, 2016년 만료 예정이었던 아이거와의 계약을 2018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아이거는 자신이 주도한 최대 투자 프로젝트 중 하나의 성공 여부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이후 첫 스타워즈 영화인 ‘깨어난 포스(The Force Awakens)’가 올해 말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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