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논쟁은 인터넷 신경제, 벤처, 부동산 등 거품이 발생한 영역과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곤 한다. 거품의 측정방법에 대한 통일된 견해는 없다. 따라서 ‘거품이다, 아니다, 과도하다,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쟁이 그치지 않는다. 불황타개 명분이나 기술혁신 명분을 앞세워 거품의 기능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런가.

왜 거품이 생기는가?
일반적으로 모든 시장에서의 과도한 기대는 거품을 만들고 거품은 과도한 기대를 가져온다. 따라서 완전한 예방은 사실상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책적 이유로 생겨나는 거품에 대해서는 통제가 필요하다. 고도성장 지속을 위해 또는 불황탈출을 위해 거품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내수 진작이라는 명분을 위해 때때로 거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과도한 가계대출, 신용불량자 양산, 턱없이 치솟은 아파트 가격, 억대 축의금, 헤퍼진 씀씀이 등 거품이 난무하는데 정작 경기호전의 증거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세계는 바닥을 치면서 국면호전의 소식을 알려오는데 우리는 경기실사지수 80점대를 계속 맴돌고 있다. 매년 1천개의 공장이 중국으로 빠져나간다. 수도권 공장 10개중 9개가 해외이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부동산 거품 논쟁만 치열하다. 사람들은 거품문제보다 정치문제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거품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거품 자체의 원인과 공과를 따진 다음 정부가 할 일과 우리가 반성할 일을 찾아야 한다.

거품의 부작용
거품이란 묘한 것이다. 불황탈출 명분으로 시작된 거품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우리를 다시 불황의 늪에 처박고 있다. 알고 보면 거품이란 일시적으로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약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손쉬운 내수 진작, 재테크, 허황한 코리안 드림으로 시선을 혼란시킨다. 대책 없는 수준으로 사람들의 기대수준을 높여놓는다. 빈부격차를 부채질한다. 중소제조업 종사자들의 기를 꺾는다.
거품제거와 소비 부추기기의 반복, 이 냉탕과 열탕의 사이클을 몇 번 거치면 사람들은 기준을 상실하게 된다. 당장 부자라도 된 듯 마음은 공중에 떠다니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과 철학이 없다.
정부가 거품제거에 팔 걷고 나서면 거품은 슬며시 빠져 나가되 반드시 되돌아올 자리를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해 넣는다. 거품제거와 함께 거래가격은 하향 조정되지만 허황된 기대수준은 하향 조정되지 않는다. 너도나도 대박을 꿈꾼다. 투자수익률 20~30%가 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한푼 두푼 저축하는 미덕이 사라진지 오래다. 1%의 코스트 다운을 우습게 보는 세상이 됐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러한 거품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선진적 경제체제로 진입할 수 없다. 신문을 펴들면 우울한 소식뿐이다. 경영자들은 정치를 탓하고 정부를 원망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로지 경영의 법칙을 생각해야 한다. 적절한 기대수준을 표준화하고 표준 이상의 능률과 생산성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왜 투자가 살아나지 못하는가? 투자 마인드의 기본은 대박이 아니라 경영의 법칙이다.
경제성장의 기본은 거품소비가 아니라 꾸준한 능률, 생산성, 내실이다. 정부는 여기에 운을 걸어야 한다. 서두르지 말자. 5천년 역사에서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았던가. 초고속 인터넷 망이 세계 제1이고 경제규모가 앞선다고 자랑하기보다 진정 초심으로 돌아가자. 초심으로 돌아가면, 비로소 그림자 드리운 중소기업 현장들이 우리 눈에 뜨이게 될 것이다. 직장 없는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생각나게 될 것이다.

이재관(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장)
jklee@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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