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S)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27번째 작품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S>(2015)를 본 한국인이라면 가장 먼저 “남한과 북한의 체제 대립 비화를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강대국 소련과 미국이 핵전쟁 공포로 서로를 의심했던 냉전기는 끝났고, 그래서 상대국에 대한 스파이 행위와 비밀 협상마저 영화로 만들어 당시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한 민족이라는 남한과 북한은 아직도 대치 중이니, 서글프다는 감정을 넘어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80살~90살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짧은 이산가족 만남과 기약 없는 이별의 충격을 안겨드리는 잔인한 대치 체제를 후대에게 길이 물려주게 되는 건 아닌지, 초조해진다.

더구나 최근 한국영화계는 차가운 계절이 왔음에도 잔혹한 살인 방식에 몰두하는 <폰> <어떤 살인> <그놈이다> 류의 영화만 내놓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추어냄으로써, 시대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영화는 만들 염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광이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행보가 더욱 존경스러울 수밖에.

 <스파이 브릿지>는 주인공 제임스 도노반(1916년~1970년)의 이력을 살피는 것으로 영화 내용을 축약할 수 있다.

 제임스 도노반은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버드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다. 1950년대에 뉴욕 브루클린의 법률사무소에서 보험 관련 변호사로 명성을 얻던 중, CIA에 의해 체포된 소련 KGB 소속 스파이 루돌프 아벨의 변호를 맡게 된다. 수많은 변호사들이 거절한 바 있어 변호사 협회에서 만장일치로 도노반을 추천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밝히고 있듯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려면 도노반처럼 유능한 변호사가 나서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여론은 물론 재판장도 아벨의 유죄와 사형을 당연시했고, 가족마저 테러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소련 스파이 변호를 맡은 이유로 도노반은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라고 말한다.

 도노반은 재판에서 아벨의 체포 시 영장 없는 수색을 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이에게도 정당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배심원 전원이 유죄로 기울고, 재판장의 최종 판결을 앞둔 시점에 재판장을 찾아간 도노반은 “미국인이 스파이로 소련에 체포될 경우 교환을 위해 보험 드는 셈치고 아벨을 살려두자”고 제안한다.

 이 선견지명은 현실로 나타나 1962년, 도노반은 CIA의 요청으로 동베를린으로 가서 소련군에 격추 당한 미국 비행기 조종사 게리 파워스와 미국 감옥에 5년째 수감 중이던 아벨의 교환 협상을 성사시킨다.

영화에서 CIA 간부는 “조국을 위한 일이지만, 조국은 당신이 잘못될 경우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 자격으로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겐 출장 간다고 거짓말 하면서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혼란기의 동베를린으로 향하는 용기.

 얼마든지 스릴과 감동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연출할 수도 있으련만 극적인 사건을 잿빛 톤으로 담담하게 연출한 스필버그 감독. 특히 영화 도입부 아벨과 그를 추적하는 CIA 요원의 추격전은 대단하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철조망을 넘나들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도노반의 시점은 최근의 난민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과거로부터 현재의 교훈을 끌어내는데 뚝심을 발휘했다는 칭찬을 들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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