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전 中企 성공 스토리]예상철 위비즈 대표

“20대 초반 이벤트 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드라이아이스를 자주 접했습니다. 방송국에서 많이 쓰는 탓에 구매하러 다니는 것이 제 일이었지요. 그런데 구매가 너무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드라이아이스가 당시만 해도 굉장히 폐쇄적으로 취급되던 물품이었습니다. 판매하는 다른 곳은 없는지 국내 드라이아이스 취급 대리점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부산 경남 지역에는 3개가 전부였다. 대구 경북 지역은 지금도 1개라고 한다. 생산 공장은 국내에 5개뿐이었다.

이에 예상철 위비즈 대표는 드라이아이스를 판매하는 대리점을 차렸다. 배달하는 드라이아이스 대리점은 예 대표가 유일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장의 50%를 석권하고 10억원의 연 매출을 올렸다.

사업이 잘되니 다른 곳에서도 배달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경쟁력이 떨어지자 예 대표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제조 공장을 차렸다. 대리점 운영 4년 만인 2000년이었다. 제품 제조 역시 차별화에 주력했다.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연구한 끝에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포장 박스를 만들었다. 제품은 인정받아 유명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브랜드 ‘베스킨라빈스31’과 독점 계약을 했다.

당시 드라이아이스 생산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큰 기업에서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을 위해 그 기업에 회사 지분을 일부 넘겨주고 긴밀한 협력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고야 말았다.

“원재료를 공급해주는 기업 상무님을 만나 저희 회사 지분 40%를 8억에 인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는데, 저희 회사 부사장이 그것을 모르고 따로 찾아가 16억원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났지요.”

괘씸하다 생각한 거래처에서는 결국 원재료 공급을 끊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원재료 공급처를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 계기로 인해 사람들의 미움을 제대로 사게 됐고, 끝내 2002년 폐업했다.

“망한 이유를 아니까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같은 업종으로 재기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재창업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정리하고 남은 5억원의 빚을 10년 만에 다 갚았지요.” 2003년 건설회사에 과장으로 취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녔다. 세무, 회계, 경영, 마케팅, 법률 등 그 동안 사업을 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5년 동안 공부하며 채우는데 힘썼다. 그렇게 예 대표는 재기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왔다.

그러다 2009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친구와 함께 호텔과 연회장에 음향을 설치를 했다. “저는 5000만원을 투자하고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둘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알고 봤더니 친구가 그동안 번 돈을 들고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첫 사업의 실패보다 더 힘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2억5000만원이라는 빚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충격이었지요.” 힘듦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시며 보냈다. 친구는 결국 구속됐고 예 대표는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친구가 고마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친구 덕에 지금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 때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재창업자금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아 2012년 재창업을 했다. 드라이아이스를 비롯해 드라이아이스 세척 장비를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력이 될 만한 아이템은 현재 개발 중에 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1억3000만원, 2014년 6억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23억원을 예상한다고 한다. 예 대표는 올해 마흔 여섯, 그의 인생 2막이 시작된 나이다. 젊음을 등에 업고 자신감 있는 말투, 카리스마 속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겸손함이 이제는 예 대표의 경쟁력이 됐다.

- 재창업일 : 2012. 7. 1
- 주력 아이템 : 드라이 아이스, CO2세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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