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세계 보일러 강국은 어딜까? 보일러 문화가 발달한 일본? 아니면 경동·귀뚜라미·린나이 등 보일러 명가(名家)가 있는 한국? 정답은 독일이다. 특히 독일의 바일란트(Vaillant)는 유럽시장 1위를 자랑하는 히든 챔피언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업명이지만, 바일란트는 보일러 문화가 있는 국가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기업이다.  

지난 1874년에 설립된 바일란트의 업력은 140년에 달한다. 바일란트그룹 창업주인 요한 바일란트(Johann Vaillant)는 독일 서부에 위치한 베스트팔렌주의 렘샤이트에 처음 살았다. 이 지역은 비가 자주 오고 습했다. 추운 날씨까지 있어 난방기기가 필수였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보일러였다. 나중에는 다양한 난방기기도 만들기 시작했다.

바일란트는 100% 가족소유기업으로 현재 전 세계 20개국이상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수출 국가만 해도 75개국이나 된다. 연간 약 170만대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연매출은 24억유로(약 3조1000억원)다. 수출국가, 매출, 판매대수 등 어느 하나만 따져봐도 유럽을 넘어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만의 가스난방 기술을 통해 보일러 강자로 우뚝 선 바일란트는 일반적인 가스 보일러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열 시스템은 물론 히트펌프, 펠릿 보일러, 전열교환방식 환기 시스템, 소형 열병합시스템 등 에너지와 관련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바일란트, 한국시장을 공략하다
세계 1위 바일란트가 최근 국내 보일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한국을 첫 방문한 칼슨 보크란더 바일란트그룹 총괄 회장은 “한국은 가정용 가스보일러 시장규모가 연간 120만대로, 영국(160만대), 중국(130만대)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시장”이라며 바일란트의 성공가능성을 점쳤다.

무엇보다 세계 보일러 공룡기업인 바일란트가 주목하는 틈새는 프리미엄 시장이다. 국내는 아직 프리미엄 보일러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바일란트가 공략할 시장이 바로 이 시장이다. 그간 국내 보일러 3사인 경동·귀뚜라미·린나이는 가격경쟁 위주로 시장을 형성해왔다. 따라서 바일란트와 같이 고급 보일러 시장의 진출이 용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이는 국내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구조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가운데 수입차 시장 규모는 10% 남짓하다. 바일란트가 목표로 한 고급 보일러 시장도 이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바일란트가 최근 공개한 타겟은 국내 상위 1%다. 약 1만2000대 시장이다. 숫자로 보면 크지 않지만, 시장의 안착을 위해선 반드시 정복해야 할 지지기반이다.

손유길 바일란트코리아 대표도 수입차 시장을 예를 들어 바일란트의 성장단계를 설명했다. “고급 수입차가 국내에 안착한 후에 점유율 면에서 5% 이하로 떨어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급 보일러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6만대(5%) 시장만 형성해도 상당한 성과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5% 이상 시장 확보는 충분히 가능한 자신감이다. 바일란트가 진출한 국가 가운데 10% 이하의 점유율을 기록한 곳은 한곳도 없다. 바일란트의 무서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일란트가 국내에 도전장을 내밀며 선보인 제품은 콘덴싱 보일러인 ‘에코텍(ecoTEC) 시리즈’다. 바일란트의 에코텍 제품은 세계적으로 300만대 이상이 팔린 가스보일다. 세계 보일러 시장의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에코텍 시리즈의 가격은 260만~330만원대다. 일반적으로 80만~100만원대인 국내 업체의 제품보다 3~4배나 비싸다. 이러한 프리미엄 때문에 일부에서는 ‘강남 보일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내 프리미엄 시장의 승산은?
가격만 비싼 것은 아니다. 가격에 상충하는 기능적 요소는 상당히 강렬하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공격적이다. 바일란트그룹은 R&D 인력만 600명 정도이고 개발비는 연 매출의 4~5%에 달한다. 바일란트 보일러는 최소 15년 이상 사용가능하다. 한번 설치해서 30년을 쓰는 소비자도 수두룩하다. 프리미엄 수명이다.

반면 한국의 보일러는 보통 교체 주기가 7년이며, 대개 10년이면 수명이 다한다. 바일란트 보일러는 거실에 설치해도 될만큼 디자인이 뛰어나고 안전하며 저소음으로 설계됐다. 보일러실에 처박히는 물건이 아니라, 가구나 전자제품과 같이 생활 속에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인 셈이다.

이번 바일란트의 도전은 상징성이 있다. 우선 없던 시장(프리미엄)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 휴대폰 시장에서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인 것과는 다르다. 아무리 프리미엄 보일러라고 해도 보일러의 혁신이 기존 보일러를 대체할 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바일란트의 프리미엄 전략은 실패할까. 결국은 프리미엄 주택을 겨냥해야 승산이 있다. 개별난방을 사용하는 단독주택이나 고급 빌라, 타운하우스의 수요가 폭발한다면 한국에서도 바일란트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급 아파트에서도 오래 쓰고 반영구적인 내구성을 갖춘 바일란트의 보일러가 각광을 받을지 모른다. 국내 수입차 시장을 거머쥔 독일차처럼 바일란트가 새로운 보일러 시장의 트렌드를 만들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