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잦은 비와 안개 너머로 울긋불긋 단풍 든 나무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지 않기란 정말 어렵다. 더 늦기 전에 진한 계피 향 사랑에 빠지고 싶다. 이런 심리를 겨냥해 가을엔 사랑 영화가 많이 개봉되는데, 올해는 특이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남성 주인공 영화들이 눈에 띈다.

# 우리가 사랑한 시간
어릴 때부터 비극적이면서 로맨틱한 영화에 심취해 “나는 러브 스토리가 아닌 영화 제작을 상상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미국의 32살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가 직접 각본까지 쓴 <우리가 사랑한 시간>부터 만나본다.

첼리스트로만 살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고등학교 음악 교사를 병행하는 중년의 키이스(가이 피어스). “영국서 교환 학생이 오기로 했다”는 아내 말에 신경질을 냈는데, 이웃집 사내는 “저렇게 멋진 여학생과 한 집에 살다니, 정말 부럽군”이라고 한다.

딸과 같은 나이인 소피(펠리시티 존스)의 놀라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격정에 휩싸이는 키이스. 현실의 궁핍함과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클래식 음악이 있어 두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가난한 중년 유부남이 딸 나이 여성과 손이라도 잡아보려면 첼로 정도는 연주할 줄 알고,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 이름도 알아야 하는구나. 

# 스윗 프랑세즈
아름답고 착한 프랑스 여인 루실(미셸 윌리엄스)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의 클래식 피아노 연주에다 작곡까지 하는 중년 유부남이 한명 더 있다. 그런데 그는 하필 점령군인 독일 장교 브루노(마티아스 쇼에나에츠)다. 루실의 집에 묵게 된 브루노는 마을의 다른 군인들과 달리 사람을 죽여야 하는 처지에 갈등하는 지적이며, 예의 바르고, 잘 생긴데다, 무엇보다 음악의 소통을 믿는 신사다. 더구나 처음부터 유부남임을 밝히고 유부녀인 루실에게 다가온다. 아, 전쟁만 아니라면, 아니 서로를 밀고하는 무서운 전시 상황이라 사랑이 갈급하다.

사울 딥 감독의 <스윗 프랑세즈>는 39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 작가 이렌 네미로프스키의 유고에 기초한 때문인지, 그 묘사가 절절하다. “난 내가 잃은 이들을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음악은 항상 날 그에게로 데려간다.” 클래식 음악이 몸에 밴 신사만이 여인의 마음에 이런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거겠지.  

# 5 to 7
현대 뉴욕의 연상연하 커플의 조건도 평범한 이들을 기죽인다. 출판사로부터 거절 편지를 받는데 익숙한 24살 작가 지망생 브라이언(안톤 옐친)은 아름다운 여인 아리엘(베레니스 말로에)이 고독하게 담배 태우는 모습에 반한다.

두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제안한다. “난 33살 프랑스 외교관 부인으로 아이 둘이 있어. 오후 5시에서 7시까진 시간이 비는데, 호텔 키를 받아줄래?” 3주를 망설이던 브라이언은 호텔로 향하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 남편의 연인과도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프랑스와 미국인의 애정관에서부터 뉴욕의 데이트 명소까지, 연상 여와 연하 남과의 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환상을 달래줄 감정과 경제적 조건이 화려한 빅터 레빈 감독의 <5 to 7>. 아내의 연하 연인에게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해줘 고맙소”라며 거액의 수표를 끊어줄 수 있는 프랑스 남편의 여유까지 배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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