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이마트의 새로운 실험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이마트엔 비밀스러운 연구소가 있다. 말 그대로 ‘비밀연구소’다. 이마트는 지난 8월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 바이어, 고객서비스, 물류담당자 등 모든 부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비밀연구소를 열었고, 비밀연구소의 별도 홈페이지에는 비밀연구소가 발명한 새 상품과 서비스 개발 현황이 공개돼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비밀연구소를 오픈하면서 “새로운 이마트는 가격할인이 아닌 이마트를 찾아와야 할 본질적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 간의 경쟁은 거의 분 단위로 벌어지는 가격 싸움이 전부라고도 할 수도 있는데, 이마트의 경쟁사인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와의 시장점유율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한 가격의 제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느냐가 성패의 중요한 승부처였다.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이 첫 개점한 이후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은 전통적으로 이러한 박리다매(薄利多賣) 방식의 경영전략을 펼쳐왔다.

그런데 비밀연구소는 20년 넘는 경영전략을 벗어나 새로운 각도에서 싸움의 본질을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들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 속 가치에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발명하기로 했다. 그 발명의 중심에는 이마트의 자체상품(PB) 브랜드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

‘노브랜드’라는 新대형유통 패러다임
이마트가 올해 주목한 신(新)경영전략은 PB제품의 선도적인 확대다. 저렴하면서도 좋은 품질의 제품을 대거 쏟아내면서 유통업계의 새로운 트랜드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그간 이마트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심해 왔었고, 그 최종 목표는 PB제품을 어떻게 확대하고 홍보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정 부회장은 다른 경쟁사들 보다 이러한 PB전략에 있어 가장 혁신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마트의 PB제품에는 ‘피코크’(가정간편식)와 ‘노이즈’ ‘데이즈’(저가 의류) 등이 있다. 비밀연구소가 단순한 TF를 넘어 실질적으로 이러한 PB제품에 혁신을 불어넣는 기구로 거듭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정 부회장은 이마트 매장에서 진열상품의 50% 이상을 PB제품으로 채우려고 하는데, 이러한 과감한 변화의 원인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대형마트업계의 실적악화에 기인하고 있다.

신세계의 유통 비즈니스의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이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 5831억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많지만 전년 대비 20%나 감소된 수치다. PB제품은 일반적인 상표 보다 마진을 남기기가 훨씬 쉽다는 장점이 있다. 정 부회장이 혁신을 위한 비밀연구소를 만들고 PB제품 발명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가 사실 여기에 담겨 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1월 미국 시카고에 있었다. 세계적인 자체브랜드 박람회인 ‘스토어브랜드 앤드 비욘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자리에서 정 부회장은 직접 발로 뛰며 미국 식품납품업체들과 원료 공급에 대한 흥정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렴하고 품질 높은 원료의 확보는 이마트의 자체브랜드 확대에 결정적인 에너지가 될 것이 뻔했다.

이렇게 이마트가 해외에서 원료를 구매해 국내 중소기업에게 완제품 생산을 맡기는 것으로 PB제품을 내놓게 된다. 이러한 자체 브랜드 양산 생태계를 거치게 되면, 제조회사로부터 완제품을 받아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는 것보다 많게는 50% 가까이 저렴하게 선보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대형마트에 가 보면, 자체 브랜드라는 상표를 달고 나온 각종 상품들의 가격이 훨씬 저렴한 것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자체 브랜드라는 말은 사실상 브랜드가 없다는 ‘노브랜드’와 일맥상통한다. 홍보비나 판촉이나 운영관리브랜드 값이 따로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제품 값만 받고 팔기에 그렇게 가격이 반값까지 떨어지는 것이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선순환 생태계
이미 지난 4월부터 이마트는 원료에 대한 해외소싱 방식을 정착시키고 있는 중이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등에서 값싸지만 고품질의 원료를 확보해 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이마트의 PB제품은 일반적인 상표와 비교해 가격을 협상할 때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게 된다. PB제품을 기준으로 다른 완제품 상품을 받기에 납품 가격을 확 끌어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세계는 최근 인사개편을 통해 PB제품을 어떻게 더욱 전략화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체 브랜드를 신세계 계열사들이 생산하고 그걸 이마트와 같은 유통회사들이 판매한다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신세계푸드 신임 대표로 이번에 최성재 부사장이 중용됐는데, 그는 이마트에서 식품본부장을 지냈다. 아울러 이마트의 식품 분야 PB제품인 피코크의 사업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신세계푸드는 최근 중소 냉동만두 업체를 인수한 것을 비롯해 충북 음성에 제2식품가공센터도 가동하고 있다. 증권가가 전망하는 내년도 피코크의 매출 예상치는 8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올해 대비 4배나 늘어난 전망치로 이마트의 식품 PB제품의 성장세가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신세계그룹에서 패션사업을 담당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마트의 의류 분야 PB제품인 데이즈와 디자인 유나이티드까지 운영·생산·관리하고 있다. 데이즈의 경쟁사는 유니클로다. 저렴하면서도 상품성이 뛰어난 제품을 앞세우고 있는데, 연매출이 지난해 약 3500억원에서 올해 5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것은 이마트라는 유통회사의 수익확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세계그룹 전반의 생산성과 수익성에도 큰 기여를 하는 활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PB제품의 원료 확보에 나선 이유도 그룹 전반을 위한 행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PB제품 세계시장 점점 커진다
세계 유통업계도 PB제품 바람이 광풍처럼 불고 있는 추세다. 세계적인 유통 공룡 아마존도 PB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P&G와의 협력을 통해 의류나 생활용품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는 ‘아마존 엘리먼츠’ 브랜드를 출범했었다. 특히 아마존 엘리먼츠는 고급형 PB제품 서비스를 컨셉으로 하고 있는데, 아마존에서 연회비 99달러를 지불하는 프라임고객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PB제품의 희소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인 대형유통 업체인 코스트코의 PB제품인 커클랜드도 강력하다. 지난 1995년에 선보인 이 브랜드는 브랜드 가치만 따져도 7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클랜드가 코스트코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0%에 그치지만, 커클랜드가 선보이는 최신 트랜드의 신제품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고객들로 언제나 코스트코는 불야성을 이룬다고 한다. 한 마디로 커클랜드가 코스트코의 입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제품의 가성비를 따지고 브랜드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최근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비 트랜드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이마트가 파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다른 대형마트나 편의점 브랜드들도 조금씩 이러한 PB제품 확대전략에 힘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PB제품이 뜨는 이유로 침체된 내수경기 불황을 들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꾸만 싼 제품을 찾고 있어 유통업계가 이러한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조업체들이 공급하는 가격을 무조건 낮출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통업체가 직접 생산하는 PB제품이라는 것이다. PB제품은 유통업계가 살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의미다.

정용진 3세 경영의 발판은 이마트
최근 단행된 신세계그룹의 임원급 인사에서 주목할 또 다른 인물은 김해성 부회장이다. 김해성 부회장은 2005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경영을 맡아 7년 만에 연매출 80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키워낸 승부사였다. 그 시절 이마트에서 관리하던 패션 PB 브랜드 3개를 신세계인터네셔날로 들여왔다. 그는 2013년부터 그룹 경영전략실장에 올라 그룹의 전체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온라인몰 ‘SSG닷컴’ 등의 신사업도 그의 작품이었다. 2013년 말에는 이마트 공동대표이사(사장급)로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단숨에 부회장 직위까지 오른 것은 신세계그룹 중 정용진 부회장의 머릿속을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해성 부회장은 앞으로도 이마트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진출도 더 가시화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신세계그룹에서 이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맞먹는다. 그래서 이마트가 흥해야 그룹 전체가 살아난다. 이러한 시기에 김해성 부회장과 같은 실력 있는 충신은 정용진 부회장에게 제갈공명과 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와 신세계푸드를 담당하고, 정유경 사장은 백화점 사업을 총괄하는 것으로 3세 경영의 출항을 알렸다. 이제 이마트의 PB제품들이 정 부회장에게 새로운 신세계 교향곡이 되줄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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