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이랜드의 중국 유통사업 진출

최근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이 시기에 청소년들과 20대 젊은층들이 즐겨 입던 패션 브랜드엔 뭐가 있었는지, 잠시 돌이켜봤다. 수많은 브랜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겠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이랜드’였다. 영문으로 ‘ELAND’라고 적힌 간판의 상점들이 이 시기에 주요 도시 상권마다 어김없이 문을 열었었다. 

지금은 우리에겐 상당히 오래된 브랜드로 회상되지만, 지금 이랜드 그룹은 한국 시장은 물론 중국에서 상당히 강렬한 패션 트랜드를 주도하고 있는 패션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이랜드를 왕년의 스타 정도로 우습게만 볼 게 아닌 게 현재 이랜드 그룹은 250개에 가까운 각종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인수합병을 통한 세력의 확충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패션뿐만 아니라 외식, 액세서리 등의 보유 브랜드로 웬만한 중대형 백화점의 매장을 모조리 채울 만큼 급격하게 성장했다.

자체적으로 수많은 디자이너와 상품기획자(MD)도 보유하고 있다. 패션을 기획하고 이를 제작해 다시 유통 및 마케팅까지 이랜드라는 생태계 안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랜드 그룹의 보유 브랜드를 열거해 보면, 우선 의류 브랜드로 스파오·미쏘·티니위니 등이 있고, 라이프스타일 SPA로는 버터·모던하우스, 외식 브랜드 애슐리·자연별곡 등이 포진했다. 해외에서 인수한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만다리나덕·코치넬리·케이스위스 등도 보유 중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발전이었다.

수백개의 각종 브랜드를 앞세운 이랜드 그룹은 2014년에만 한국에서 8조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또 다른 핵심 매출 국가는 중국으로 지난 2013년 매출 2조원을 넘어선 이후 2014년 2조4300억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에 있다. 총 매출만 10조가 넘는 기업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매출 10조가 넘는 곳이 불과 40여개에 그친다. 이는 이랜드 그룹의 위용과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을 사로잡는 유통기업 될까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이 바로, 이랜드의 중국에서의 성장세와 영향력이다. 중국에선 이랜드는 ‘이롄(衣戀)’으로 부른다. 중국어로 “옷을 사랑한다”라는 뜻의 발음이 이롄과 유사해서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롄이 중국에 상륙한 시기는 1994년이다. 한국에 본격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할 때인데, 아마도 이 무렵 이랜드의 토종 브랜드들의 인기가 한풀 시들해진 때였다. 그래서 이랜드 그룹이 제2의 소비시장을 택한 곳이 바로 중국이었던 것이다.

‘중국을 사랑한 이랜드’는 1994년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이후 중국 대륙에서만 최근까지 8000개의 의류·외식·SPA 영업 매장을 늘려나가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20년 동안 차근히 매출을 올려 2조4000억원이 넘는 수준을 달성한 걸 보면, 국내 기업으로써 중국시장에 매우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랜드의 중국 성공신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랜드 그룹이 또 한번의 중국 성공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유통이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경 부회장은 지난 14일 중국 상해 JW메리어트호텔에서 첫 대형 유통점인 ‘팍슨-뉴코아몰’을 공식 오픈하는 15일의 전야제 행사로 현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박성경 부회장은 “중국 최대의 유통·패션·외식 기업이 될 것”이라며 “1994년 중국에 처음 진출 했지만 본격적인 시장 개척은 올해가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랜드의 ‘1994 패션신화’에 이어 이랜드의 ‘2016 유통신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이랜드가 선보인 ‘팍슨-뉴코아몰’은 아울렛 성격이 강한 종합 패션매장이다. 일단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 면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상해 포동과 포서를 연결하는 지하철 2호선과 연결된 창닝 지구에 위치해 있는데, 서울을 상해라고 하면, 창닝 지구는 대략 분당이나, 용인 쯤에 있는 도시다.

이번에 이랜드 그룹과 손을 잡은 중국 현지 기업은 팍슨(百盛)그룹으로, 이번 팍슨-뉴코아몰은 팍슨이 4년 동안 백화점으로 운영하던 매장이다. 지난해 7월 이랜드와 합작하고 쇼핑몰로 전환했고 지분 관계는 이랜드가 51%, 팍슨그룹이 49%로 각각 나눠 갖는 형식이다. 사실 지분 관계만 그럴 뿐 실질적인 운영권은 이랜드가 주도하고, 팍슨은 건물과 자본금만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中 서민층까지 공략하는 쇼핑몰
팍슨-뉴코아몰에는 현재 200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데 이랜드와 팍슨의 보유 브랜드가 각각 35%, 5%로 구성돼 있다. 지하1층에 지상 5층 규모로 영업면적은 약 5만㎡에 달한다. 첫날 찾은 방문객만 15만명으로 집계되며 성황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 쇼핑몰의 성공유무는 향후 이랜드가 패션기업에서 유통기업으로 도약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번 쇼핑몰의 특징은 ‘실용’이다. 아울렛 컨셉의 특성상 공략하는 소비층이 서민층부터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쇼핑몰을 중심으로 남쪽은 부촌이 형성돼 있고 북쪽은 중산층 주거지역이 형성돼 있다.

그래서인지 쇼핑몰은 크게 동관과 서관으로 나눴다. 동관은 럭셔리 컨셉이 묻어나는데 30~40대를 타깃으로 하고 명품 직매입 매장인 럭셔리 갤러리와 중화권 유명 귀금속 브랜드가 들어섰다.

반면에 서관은 젊은층 중심이다. 이랜드의 10여개 SPA 브랜드와 3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있고 한국의 유명 화장품과 패션 편집숍 등도 입점해 있다. 또한 유명 브랜드 제품들을 기존 백화점 대비 50~80% 이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구성했다.

여기에 한류의 냄새를 물씬 풍겨 놓았는데, K-Pop 가수들의 최신곡을 연신 틀고, 중국인에게 친숙한 한국 연예인의 광고판이 이곳저곳 눈에 띄게 만들었다. 마치 동대문이나 명동을 온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중국경기 둔화를 ‘기회’로 삼는다
잘 나가는 패션기업인 이랜드가 이렇게 과감한 유통기업의 혁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중국의 내수시장이 최근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경기가 상당히 둔화되고 있다. 실례로 중국의 부동산 재벌인 완다그룹도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보유하고 있던 백화점과 쇼핑몰 등을 축소하고 있는 판이다.

이랜드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의 패션사업 매출이 마이너스는 아니지만, 성장세가 조금씩 꺾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랜드는 새로운 종합 쇼핑몰을 추진했다. 그래서 이랜드가 새로운 유통사업에 뛰어든 것은 위기 속에 기회를 찾고자 하는 도전으로 해석된다.

돌이켜보면, 이랜드는 언제나 위기 속에 기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우선, 1990년대 한국에서의 매출신장 한계를 깨닫고 과감하게 중국진출에 공을 들이고 성공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엔 중국 내에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혁신이었다면, 이번엔 패션에서 유통으로의 도약이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유통 사업은 정말 만만치 않은 비즈니스다. 13억 중국시장이라는 달콤함에 출사표를 던졌던 글로벌 유통공룡 3인방인 월마트, 테스코, 까르푸 모두 중국 현지 업체 밀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롯데나 신세계도 중국 주요 도시에다가 대형 유통점을 출점했지만, 매출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랜드 그룹의 유통사업 전략은 달라야 했다. 그것이 앞서 밝힌 실용이라는 것이다. 럭셔리 제품을 중심으로 취급했던 중국 백화점 사업은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이제부터 아울렛과 종합 쇼핑센터의 시대가 떠올랐다는 걸 이랜드가 말하고 있다.

이랜드는 늘 그랬다. 초창기 패션사업 때부터 거리에서부터 소비자들의 마음과 욕구를 챙겨왔다. 이랜드 유통망만 봐도 지방의 작은 도시나 시장까지 마치 거미줄처럼 분포돼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거리의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에도 중국 거리의 소비자들의 변화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오픈한 팍슨-뉴코아몰은 중국에서 유례가 없는 컨셉의 쇼핑몰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존 백화점 방식의 진열코너와 매장구성을 뒤엎어, 명품 직매입매장과 SPA브랜드와 편집숍 그리고 외식브랜드, 유아 체험 콘텐츠까지 구현해 냈다.

이랜드 그룹은 오는 2020년까지 이러한 쇼핑몰을 100여개로 확대하고 중국에서만 25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이랜드는 1994년 중국에 첫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2016년 유통사업에 진출했다. 이랜드의 진짜 중국 신화는 어쩌면 지금부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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