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현장점검] 위기의 자영업자

# A씨는 2년 전 직장에서 명예퇴직 후 서울 성내동 골목길에 치킨집을 창업했다. 퇴직금까지 쏟아부어 권리금 3000만원에 보증금 2000만원, 시설 투자비 2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투자했다. 초기에는 장사가 어느정도 되는가 싶더니 작년에 같은 골목에 치킨집이 두곳이나 생기면서 매출이 급감해 현재는 월 150만원의 임대료조차 내기 힘들어져 폐업을 고민중이다.

#의류관련 B조합은 3년 전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 명목으로 지자체로부터 15억원 갸량의 자금을 융자받았다. 이 자금은 조합원사들 개별 업체로 5000만원~1억원 정도씩 지원됐지만, 내수침체로 원금회수는커녕 이자도 제대로 못내는 조합원사들이 많아져 결국 B조합은 간판만 내건 유령조합이 돼버렸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영업시대’다. 이렇게 말하면 볼멘 소리를 할 자영업자들이 수두룩 하겠지만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맞는 얘기다.

한국의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은 23.2%로 그리스(31.8%)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늘어난 자영업자 대출잔액 역시 지난해 240조원에 육박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9만3768개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신설법인 수도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든 베이비부머 세대가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창업의 질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배경 없이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무조건 뛰어들고 보는 ‘묻지마 창업’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치킨집 망하면 또 다른 치킨집…‘폭탄 돌리기’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골목 상권 내 신규 창업 점포 수는 2007년부터 조금씩 늘어나다 최근 5년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커피집의 수는 2010년 1291개에서 2014년 3053개로 5년간 2.36배로 증가했다. 호프집 개업도 같은 기간 553개에서 1272개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한식집은 증가율 자체는 높지 않지만 2010년 6689개, 2012년 7082개, 2014년 9772개 등으로 신규 개업 점포 수는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 기간 창업한 골목 상점 중 33%는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것으로 분석됐다.

2012년 개업한 치킨집·호프집 등 7개 업종 1만4305개 점포 중 작년 10월까지 폐업 신고가 들어온 곳은 4729개에 달했다.

3년 이내 폐업률은 치킨집이 38%로 가장 높았고, 호프집(37%)·커피집(36%)·양식집(33%) 등이 뒤를 이었다. 자영업의 증가 속도는 가파르게 달리고 있지만 기존 자영업자는 없어지고 다시 그 자리를 다른 자영업자가 메우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서울시는 골목 상권 월별 매출액이 2013년 9월 매장당 2262만원에서 작년 9월 2554만원으로 12.9% 상승했지만, 결제 1회당 평균 판매액은 같은 기간 2만3273원에서 2만76원으로 13.7% 하락한 것으로 집계했다. 동종업계 경쟁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단 얘기다.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치킨집과 커피전문점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창업이 쉽다”며 “은퇴자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치킨집 등을 열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게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주 연구위원은 이어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을 중심으로 창업이 많지만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문제는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중장년층 은퇴자들이 상당 부분 생계형 대출을 끼고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경기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후 대출금리까지 오르면 자영업자로선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대출영업에 주력해 온 은행들이 대규모 부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신규 자영업자 대출 평균금리는 지난해 7월 3.41%에서 지난 연말 3.64% 올라 대출금리도 슬금슬금 오르는 추세다. 

“자영업 대출 대부분 사업용 아닌 생계용”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자영업자 대출은 신규 사업 확장용이 아닌 대부분 사업유지를 위한 생계형으로 추정된다”며 “금리가 오르면 원금 상환 압박을 받아 은행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영업 문제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된 지 오래지만, 정부의 자영업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경기침체에 대응한 서민·중산층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자영업자 지원 관련 사업을 매년 시행해 오고 있다. 자영업자 지원 관련 사업은 중소기업청,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국가보훈처 등 4개 부처에서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해당 4개 부처에서 자영업 대책으로 25개 세부사업에 2조6616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이 자영업자의 창업지원에 치중한 나머지 자영업자 비중을 늘리거나 유지하는 형태를 답보할 뿐 경쟁력 확보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국회예산처가 내놓은 ‘자영업자 지원사업 평가’에서도 융자사업의 지원방식의 재검토와 자체 재원조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쟁력 상실 자영업자 퇴로 열어줘야”
보고서는 정부의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 수립 및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 설치·운영 등 자영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개선해야 된다고 밝혔다.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를 위해 창업위주의 지원에서 탈피해 자영업자 생애주기 단계별 맞춤형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기존 자영업자들에 대한 금융지원의 경우 최근 대출한도, 신용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지원을 실시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자영업자들의 퇴로에 대한 지원은 다소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의 취약한 재원조달 구조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금의 주요재원은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의 예수금이다. 앞으로 국가부채에 대한 보다 엄격한 관리가 이뤄질 경우 안정적인 재원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또 차입을 통한 재원조달은 향후 원금 상환문제가 상존하기 때문에 이 기금의 사업들이 융자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고서는 “정부는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자영업들을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업종이나 유망 업종으로 유도하고 창업을 위한 철저한 사전준비를 지원하는 등 자영업 경쟁 과다 방지를 위해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자영업자의 경우 신기술 유망 업종으로 변경을 유도하거나 자영업 퇴출 뒤 임금근로자로 전환하도록 하는 등 효과적인 정책 지원을 통해 폐업 자영업자들이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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