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필자의 과장 시절 이야기다. 일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해 전도가 유망하던 대졸 여직원이 사표를 냈다. 이유를 알고 보니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아니고 교사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반도체 업종이 꾸준히 성장하던 시기라 직업의 안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다른 업종에 비해 보수도 괜찮은 편이어서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특히 그녀의 카운터파트였던 미국의 고객은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기업체를 떠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당시는 교직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때가 아니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한 지인이 주민등록상 3년이나 늦어 정년퇴직하려면 10년 가까이나 남았다며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같은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회사를 이미 그만둬 모임에 나오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또 최근에 독일 고객들과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가 우리나라의 정년에 대해 물었다. 대기업의 경우 올해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됐지만 기업 형편에 따라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독일은 67세인데 매년 조금씩 늘고 있어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정년이 빠르면 연금지급에 정부가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직업의 안정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교직이나 공직을 택했던 사람들은 선택을 잘한 셈이다. 최근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명의 지원자가 몰려 무려 5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업의 역사마저 일천한 우리 나라에서 벌써부터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시험성적이 우수한 젊은이가 공직에 몰렸다고 해서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본래 고졸을 대상으로 했던 9급 직종의 경쟁률치곤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임용되기가 힘들다 보니 임용된 후 자칫 특권의식을 가지고 본래의 역할을 잊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행정은 규제하는 측면이 있지만, 서비스가 본업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느라 여력이 없으니 대신 국민들이 돈(세금)을 갹출해 행정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다.

선비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해 과거시험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던 처지를 한탄하던 선각자들이 생각난다. 툭하면 터지던 각종 사화로 수많은 선비와 고위 관리들이 도륙을 당하는 등 참화를 입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신분에 따른 응시자격 제한이 없어 오히려 예전보다 경쟁이 더 심화된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기업체 특히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에서 일하면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고 자신이 익힌 분야를 발판 삼아 자신의 기업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는 세속적인 잣대로 볼 때 결코 성공한 직장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비교적 적성에 맞는 일을 재미있게 해왔다. 기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확실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고 매력이기도 하다.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세계 경기와 한반도 주변의 난기류로 기업의 대소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봄을 맞이해 모두 기지개를 켜고 전진 또 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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