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두산 ‘4세 경영시대’ 출범

최근 두산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보면, 다른 한국 재벌 오너가들과 비교해도 보기 드문 경영승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는 25일 두산그룹 주주총회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에서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라고 한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만 회장의 조카다.

두산그룹은 지난 120년 동안 장자경영을 제1 원칙으로 하고 이어 형제간 경영 바통을 넘겨 주는 것 또한 승계 철칙으로 지켜왔다. 그간 두산그룹의 120년 경영권 승계 과정을 다시 한번 간단히 풀어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두산의 창업주는 고 박승직 회장(1864~1950)이었고, 그의 장자인 고 박두병(1910~1973) 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어 1980년대부터 두산그룹 3세들간의 경영권 릴레이가 이어지는데, 첫 바통은 장남인 박용곤 회장을 필두로 차남인 고 박용오 회장 이어 3남 박용성 회장, 4남 박용현 회장 그리고 5남이자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박용만 회장이 나이 순으로 그룹을 이끌어 왔다.

다만 이생그룹 박용욱 회장(6남)은 두산그룹에서 분가해 독자 경영을 하고 있는 관계로 3세간의 경영권 승계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용만 회장에서 박정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 받게 되는 것인데, 박정원 회장은 바로 2세대 경영자인 고 박두병 회장의 장손자이자, 두산그룹 3세 경영자 가운데 장남인 박용곤 회장의 첫째 아들이다. 박용만 회장을 끝으로 두산 3세경영은 막을 내렸고, 이제 두산그룹이 4세대 경영 승계의 포문을 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산이 지난 120년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세대 순, 장자 순의 승계 철칙을 준수해왔다는 것은 정말로 인상이 깊다. 다른 재벌가들은 장남이건, 차남이건 먼저 경영권을 획득해 장기집권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룹 경영권에서 밀려난 로얄패밀리들이 각자 따로 그룹을 만들어 독자생존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한 점에서 두산의 경영승계 방식은 한국 기업사에서 유별나고, 또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현재 위기경영 중
두산의 경영승계가 한국 기업문화에서 훌륭한 측면이 강하다고 해서, 두산의 경영성과가 매번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박정원 회장이 맡게 된 두산그룹의 사정은 ‘경영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계제로의 상태다. 주력 계열사들도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의 재무적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일단 지난해 두산그룹은 무려 1조7000억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남겨버렸다. 전체 매출은 18조9000억원, 영업이익은 2646억원을 기록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94%나 떨어졌고, 두산건설은 지난해 순차입금이 1조3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일 MBK파트너스와 두산인프라코어가 공작기계 사업부문 매각 협상을 마무리했는데, 이를 통해 두산은 대략 1조13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두산의 올해 자금 수혈은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내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증시에 상장한다는 방침이고, 방산기업인 두산DST도 매각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 3조원 정도는 수중에 들어올 것으로 예측된다. 박정원 회장의 경영 원년에는 이렇듯이 재무적인 리스크를 좀 털어내고, 신규투자 및 신사업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창업주의 장손이자 만 54세로 비교적 젊은 4세대 경영인이라는 메리트도 박정원 회장의 두산호에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어찌됐든, 박정원 회장에게 주어진 그룹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박용만 회장은 그간 인력감축, 계열사 정리 등 큰 틀에서 그룹의 구조조정을 담당했는데, 지난해 세차례나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해 질타를 받았다. 이제 박정원 회장은 잘 정리된 그룹 사업 환경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삼촌이 조카에게 그룹 회장직만 준 게 아니라, 새로운 도약대도 선물했다는 뜻이다.

이미 박용만 회장은 지난해말부터 중요한 결정권은 박정원 회장에게 이임하는 등 조금씩 그룹의 지휘권을 넘겨 준 바가 있다. 박정원 회장은 베테랑 기업인이다. 두산에서 30년 넘게 몸을 담으면서 차근히 그룹 전반에 대한 실무를 익혀온 전문경영인 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23살에 두산에 입사한 그는 31년간 두산그룹에서 굵직한 현안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왔다고 한다. 그에게는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다고 한다. 지난 1999년 두산 상사BG 부사장에 취임한 박정원 회장은 다양한 사업 분야를 과감하게 수익사업 위주로만 개편하면서 다음해인 2000년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리는 성과도 올리기도 했단다.

특히 두산의 연료전지사업의 경우 박정원 회장이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운 사업인데, 지난 2014년 처음으로 뛰어들어 2년 만에 수주 5870억원을 올리는 등의 쾌거를 달성했다.

두산건설의 운명이 바로미터 될 것
박정원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취임 이전과 취임 이후로 나눠서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취임 이전까지의 성과만 봐도 우수한 능력을 인정 받아왔다고 평가된다. 문제는 취임 이후의 경영능력인데, 그의 첫 경영 시험대가 될 것이 두산건설의 정상화가 아닐까 한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두산건설을 맡아 경영했다. 2012년 지주사인 두산 회장까지 겸임하게 되면서 차기 두산 총수의 입지를 다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두산건설은 국내 건설경기 침체의 여파 등으로 지난해에만 영업손실 1669억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해 회수가 어려운 부실채권의 비용처리 등으로 2300억원이나 쓴 것으로 알려졌고, 건설 수주까지 줄어들고 있으면서 여건이 말이 아닌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두산건설 정상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두산건설은 주식 액면가액을 기존 5000원에서 500원으로 줄이는 90% 비율의 감자를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자본효율성과 주주가치가 제고되면서 재정여건이 좀 나아지는 효과를 보게 된다. 또한 두산건설은 렉스콘사업부 관악공장도 물적분할하기로 했다. 레미콘 제조사업에서 관악공장을 분리 매각해 기업 역량을 주력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인데, 지난해에도 렉스콘 사업부 공장 6곳 중 5곳을 팔아버린 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두산건설은 지난 1월에 성남시 분당의 토지를 그룹 계열사에 팔았고 이를 통해 1018억원의 현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은 앞으로도 두산건설을 살리는 일이라면, 이렇듯 각종 대책을 강구하고 실천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두산건설의 위기가 있었다. 2012년 무렵에도 4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었던 것이다. 이때 박정원 회장의 구원투수로 나선 곳도 계열사들이었다.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적자폭을 메우고 건설 사업의 정상화를 도모하기도 했었다.

두산에게 있어 건설 사업은 다른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면서 한순간에 그룹 전체를 무너뜨리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하는 비즈니스다. 앞서 웅진그룹도 극동건설을 소화시키지 못하면서 몰락했고, 금호아시아나도 대우건설을 삼켰다가 경영악화로 뱉어내면서 오랜 위기 상황에 직면했었다. 두산건설은 두산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비즈니스다. 왜냐하면, 두산은 중후장대형 사업만 하는데, 예를 들어 원전이나, 선박이나, 플랜트 등 덩치 큰 사업이다 보니까, 전문적인 건설 능력을 중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건설의 위기를 넘긴다면, 박정원 회장은 그가 처음부터 공을 들였다고 하는 연료전지 신사업에서 더 큰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 사업권을 따낸 시내 면세점 등 유통 사업도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두산 구조조정 “이제부터…”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정원 회장의 뉴 두산이 되려면, 다시 한번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이유는 박용만 회장 시절에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가 큰 적자에 시달리면서, 그룹 전체에 어려움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단 박용만 회장이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어찌됐든, 그룹의 중요한 사업들은 제대로 속도를 못내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두산의 핵심 사업들 대부분이 대외적인 경기여건에 따라 수주물량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사업들이어서 더욱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에 칼은 박용만 회장이 꺼내 들었다고 하지만, 칼을 제대로 휘둘러 체질개선을 할 사람은 다름아닌 박정원 회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박용만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 물러나서도 당분간 두산인프라코어의 회장직은 계속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직 이 회사의 실적개선을 비롯해 밥캣의 주식 상장 등 주요 현안이 풀리지 않고 있기에, 이를 그간 경영했던 박용만 회장이 마무리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박정원 회장은 그렇다면, 그룹의 위기를 종결시킬 마무리 투수가 될 것인가? 박용만 회장이 지난해 한국시리즈 관중석에 나타나 두산베어스의 승리를 지켜봐 화제가 됐었는데, 사실 두산베어스의 구단주는 박정원 회장으로 지난 2009년부터 맡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자타공인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에서 박정원 회장으로 투수 교체가 이뤄지는 시점이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상대팀의 역전기회가 찾아왔다. 박정원 회장이 위기 상황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플레이볼을 외칠지 좀 더 두고 봐야 하겠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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