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별별수저(別別匙箸-EATING TOOLS)

하루 세번 이상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만으로 미술관 전시가 가능할까?

그릇 가게나 공예품 가게라면 모를까 시립미술관에 숟가락과 젓가락 전시라니,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의문.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아놓은 전시를 보며 무얼 생각하라는 거지? 숟가락과 젓가락의 역사, 조형미, 만드는 방법?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철학, 미학적인 답까지 전하는 전시가 <별별수저 別別匙箸>전(~5월15일,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이다.

현대 전시회는 전시회 제목을 해부해야 기획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별별’은 ‘별의별’을 줄인 것이고, ‘수저’는 ‘숟가락 시 匙’, ‘젓가락 저 箸’. 우리는 숟가락의 높임말로 수저를 쓰기도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한 한벌 개념을 수저라 하기도 한다. <별별수저>전은 ‘사람을 위한 사물, 식도구의 재발견’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별의별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유추하고 사색하고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별별수저>전은 30명의 장인, 현대 작가의 작품과 보고재, 저집, 최봉영의 수집품 등 300여점으로 꾸며졌다. 이 중 80%가 공예·디자인 제품이며 그 외 조각, 설치, 회화, 영상 작품이 함께 한다. 매듭과 누빔이 응용된 수저집(김시재, 김윤선), 수저를 의인화한 섬유예술(신예선)을 볼 수 있는가하면, 전통 수저를 만드는 이형근 장인의 유기 공방이 재현돼 시연을 볼 수 있으며(5월7일), 유연희 작가의 현대적인 공방도 옮겨왔다.

전시는 사람, 만듦, 멋, 씀, 삶의 다섯가지로 구획됐는데, 재질이나 장르로 나눈 것이 아니라, 수저에 대한 사유를 순환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편의적 설정이므로, 이를 무시하고 자유롭게 감상해도 좋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을 위해 탄생한 식 도구로서의 수저, 사람의 시선과 손짓, 소화 작용, 욕구 등이 투영된 수저를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6자 회담에 쓰인 식탁을 염두에 둔 류근택의 ‘어떤 만찬’이란, 한지에 수묵 그림이 대표적이다.

‘만듦’은 제작에 관한 집요함을 볼 수 있는 장이다.
이형근 방짜 유기장 공방에선 수없이 두드리는 행위로 만들어진 수저를 볼 수 있고, 김시재의 덕혜옹주 수저집을 재현한 금박 매듭 수저집의 섬세함, 강릉 방짜 유기장 김우찬이 손이 불편한 이를 위해 만든 숟가락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멋’에선 재질을 넘어선 미적 대상으로서의 수저를 선보인다. 일본에선 예술 작품 수준의 수저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작업 공예품, 즉 가격이 비싸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수저를 일상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코너이기도 하다. 전진현 작가는 미각을 잃은 이들을 위해 돌기가 있는 세라믹 숟가락을, 전용일은 똑같이 만드는 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은수저를 수작업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씀’은 실제 생활에서의 대상과 사용에 대한 반전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장으로 ‘멋’ 섹션과 연결된 보고재 갤러리의 수집품 등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삶’의 장에선 생계를 위한 도구와 사회적 가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코너라 할 수 있다.

<별별수저> 전은 인간에게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만들어진 대상은 시대정신과 물질문화의 취향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전시회다. 이런 수준의 사색을 하려면 도슨트의 설명(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1시30분)을 듣고 다시 한번 작품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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