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에 대한 기초 정보들(감독, 배우, 시대 배경, 줄거리 등)을 들었을 때의 기대는 무척 컸다.

감독  박흥식은 소심하고 소박한 노총각 노처녀가 서로를 향해 서툴게 걸어가는 멜로드라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로 데뷔해, 딸이 그악스런 엄마와 무기력한 아버지의 스무살 연애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드라마 <인어공주>(2004), 영상미로 한국 무협 영화의 신경지를 개척하려했던 <협녀, 칼의 기억>(2009)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일정 수준의 연출력을 보여준 감독이다.

주연 배우 한효주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중전 의상을 우아하고 위엄 있게 입어낸 선이 고운 배우고, 천우희는 <한공주>(2013)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무엇보다 1944년의 경성, 대중가요가 태동해 이난영이 인기를 얻던 무렵, 권번의 두 동기생이 첫사랑 남자의 약속, 노래에 대한 열망, 우정과 질투로 갈등한다니, 볼거리도 들을거리도 많겠다는 기대가 가장 컸다.

그런 한편 여성에게 판소리가 금기된 조선시대, 명창을 꿈꾸었던 소녀 진채선과 그녀를 키운 스승 신재효라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켰음에도 시대 상황에 주저앉힌 <도리화가>(2015)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어화>는 <도리화가>의 잘못을 반 넘게 답습하고 있다. 여주인공의 온전하고 건강한 성장 영화가 드문 한국 영화에서, 페미니즘 운운할 수 있는 영화를  기대한 잘못이 크다.

<해어화>의 전체 틀은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까지를 함께 한 동무가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그 남자만이 꽃 피워줄 수 있는 나의 재능을 탐하다 상반된 길을 간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홍콩 멜로 영화에서 익히 봐온 구도인데, 대표적인 영화가 양범 감독의 <유금세월>(1988)이다. <유금세월>이 17살에 만난 두 여성이 이심전심 사랑을 양보하며 우정을 저버리지 않음으로서 30살에 재회하는데 반해, <해어화>는 질투와 무심에 눈멀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목숨까지 담보로 잡힌다는 이분 논리로 마감된다.

 <해어화>는 제목에 충실한 영화도 아니어서, 남성 관객의  기대도 채워주지 않는다.‘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 즉 기녀를 이르는 단어지만 마지막 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에서의 소녀들의 예능 수업 외에는, 성인 기녀 세계 묘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말을 알아듣는 꽃’의 영화도 아니다.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는 권번에 팔려온 처지를 다독이며 성장한 둘도 없는 동무라지만, 작곡가 윤우(유연석)의 등장에 운명 공동체로서의 우정을 간단히 깨뜨리고, 그 과정에서 연민이나 이해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게 왜 그랬어”라는 원망만 있을 뿐이다. 신파적 설정을 신파조로 풀어가는 것이다.     

감독은 기자 시사회에서 “이 영화는 소실점이 있다. 1991년 현재 씬에서 할머니가 된 소율이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걸’이라고 하는 대사를 향해 모든 씬이 배치돼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1년의 소율을 찾아온 옥향의 충고만을 기억하고 싶다. 소율이 위로삼아 들려줬던“가장 중요한 건 좋은 가수가 되는 것이야”를 되돌려준다.

옥향은 자신의 과거와 소율의 과거, 그리고 소율의 현재 비밀을 함구해주고 현재 삶을 소중하게 이어가라고 말한 것이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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