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기술 유출 백태

 

# 배터리 라벨 제조기업 S사는 자사가 납품하는 대기업 L사로부터 기술 자료를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전체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품질관리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다음 납품계약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 S사는 기술자료를 건네줬고, 이후 L사는 이 기술을 중국 내 자체 생산시설에 적용했다.

# 벤처기업인 C사는 자체 개발한 모바일 게임을 통해 M사와 국내 및 해외 유통을 위한 업무제휴를 신청했다. 그러자 M사는 기획서 및 핵심자료를 요구했고, 이 후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얼마 후 M사는 C가 개발한 게임과 유사한 게임을 해외에서 출시했다.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선 대기업과의 업무제휴나 기술자문 요구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중소기업의 기술이 대기업에게 제공됐고, 대기업들은 기술사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기술을 도용해가는 일이 비일비재해 왔다.

정부가 이날 중소기업기술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기술유출 사례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 소개됐다.

‘중소기업 기술보호 범 부처 태스크포스(TF)’는 중소기업 기술유출 사례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소개했다. 우선 내부 또는 경쟁사의 직원으로 인한 기술유출은 불법적인 기술 탈취로 분류됐다. 의료기기 제조업체에서 오랫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진행하다 연구소장까지 지낸 A씨는 퇴사 후 경쟁업체 B사의 기술자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A씨는 기술자문으로 활동하면서 B사에 유사제품을 출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디스플레이 검사장비업체 O사 직원이 국내 S사와 L사의 AM-OLED 기술을 USB에 담아 해외 경쟁업체로 유출한 게 외부자에 의한 기술탈취 대표적인 사례다.

당장 기술은 개발했지만 양산이나 판매할 자금이 없는 중소기업이 쉽게 피해를 입는 사례는 거래 과정에서의 기술이 유출되는 것이다. 주로 △하도급업거래 △공동연구 △기술자문 △사업제안 △기업 인수·합병(M&A) △기술수출 과정에서 기술이 빠져나가고 있다.

갑을관계를 이용해 하도급거래 과정에서 기술을 빼가거나 기술자문 과정에서 허술한 보안의식을 틈타 몰래 기술을 빼돌리기도 한다. 기술닥터 업체인 P사는 부품세척기 개발업체 B사의 기술자문 과정에서 취득한 신기술을 B사 몰래 특허 출원한 다음, 미국의 환경회사에 유출했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전·현직 임직원과 공동연구를 하는 대학교수나 업무제휴 기업 등도 기술을 빼돌렸다. 국내 모 대학의 K교수는 지하철 광고시스템을 개발하는 A중소기업과 센서기술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취득한 신기술을 동의 없이 특허로 등록했다.

상하이(上海) 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 고용 유지와 신차개발 투자를 약속했으나 구조조정 실시 및 투자약속 불이행, 완성차 생산기술과 하이브리드 관련 기술 등을 유출하고 2009년 법정관리 신청 후 철수한 사건은 M&A 과정에서의 기술유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외에 기술수출이나 M&A를 추진할 때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신고나 승인 등 행정절차를 회피하거나 관련제도를 잘 알지 못해 기술이 새나가는 경우도 있다.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제도안내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 같은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원인을 분석해 기술보호를 위한 장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 측은 “사건처리 및 사후구제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중소기업의 해결 의지 약화 등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기술보호에 대한 임직원의 인식 및 관심이 부족하고,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프리 라이더(free rider)’ 심리가 내재돼 있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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