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The Family of Invisibles)

풍경이나 인물 사진, 보도 사진을 사진의 전부로 아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가족>(2016년5월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일우스페이스)전은 무척 어려운, 머리를 싸매야할 전시가 될 것 같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기획된 전시라 해서 한국과 프랑스의 행복한 가정, 가족사진들을 볼 수 있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그의 사진론에 입각한 전시회라고 하니 말이다.

롤랑 바르트(1915~1980년)가 누구인가. 철학 수업 등에서 귀 아프게 들은 프랑스의 난해하기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비평가 아닌가. 게다가 제대로 된 번역서가 국내에 나오지 않아 이해불가가 당연하다는 말도 있다.

매일 오후 2시와 4시에 도슨트 설명이 있는데, 도슨트마다 자신이 충분히 이해했거나 인상적이거나 중요한 작품을 골라 설명해주므로, 하루 두번씩 일주일 내내 도슨트 설명을 들어야만, <보이지 않는 가족>전과 롤랑 바르트의 사진관을 연계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실현 불가능한 미션을 권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현대 유명 작가 100여명의 작품 200여점을 선보이는 대형 전시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가족>이라는 이율배반적으로 다가오는 전시 제목은 이번 전시가 1955년에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전을 모태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가족>전은 MoMA의 사진 큐레이터였던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켄(1879~1973년)이 기획한, 20세기 사진 전시회 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성공적인 전시였다. 7년간 38개국 100여 도시에서 900만명이 관람한 <인간가족> 전은 1957년 임응식 사진작가의 유치로 국내에서도 무려 30만명(당시 서울 인구의 18%)이 관람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CNAP)와 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Frac Aquitaine)이 1930년대 이후 소장한 작품들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가족>전은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신화를 해체하기 - 지배적 표상들과 위대한 남성들’은 승자에 의한 역사 이데올로기나 신격화된 지배적 인물의 위상을 끌어내리는 장이다. 현대 미술의 아이콘인 제프 쿤스는 자신이 모델이 된 사진을 선보인다. 물질적 성공을 거둔 작가가 왕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데 그를 따르는 건 물개, 돼지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자신을 조롱하고 현대 미술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군인, 귀족, 여성 하나를 둘러싼 남자들, 가부장적 아버지 등 지배적 위치의 표상들을 조롱하는 사진들이 붉은 방을 차지하고 있다.

‘중립 안으로 - 사진의 0도’에선 가치중립적 사진, 미니멀리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워커 에반스, 토마스 데만트, 로만 오팔카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 이미지에서 시적 고찰의 가능성을 발견한 바르트의 시각을 통해, 중립이라는 키워드가 역사와 분쟁의 영역 밖에서 유토피아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다시 상상하는 방법임을 되새기는 장이다.

‘보이지 않는 이들 - <카메라 루시다>의 사진첩’은 거리의 아이들, 유랑자, 지적 장애인, 노예였던 사람들, 사형수, 동성애자, 예술가의 어머니, 여성 시인과 같은 소수자들을 조명한다. 대안적 사회 질서, 획일화된 거대 역사와 규범적 전형성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범주 속 인류의 복수적 재현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아의 허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변모하는 정체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이다. 이미지와 그를 통한 판타지가 사회 영역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 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한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일우 스페이스의 전시는 <인간가족>전을 상기시키는 작품들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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