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산(912m)을 찾은지도 꽤 오래된 듯하다. 지도에서 위치도 확인하지 않은채 무작정 사불산으로 향했다. 충주를 거쳐 문경읍을 지나면서 내심 관광도로가 필요할 듯 기억이 가물거린다. 곰곰이 생각해 낸 것이 예천의 용문사와 인접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문경에서 예천방면으로 가면 팻말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약간 빚나갔다. 문경읍에서도 상주와 예천, 안동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예천길로 접어들면서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기 시작한다. 호계라는 마을에 이르니 반가운 목적지 팻말이 나선다. 이번에는 김룡사를 먼저 들렀다. 운달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가 세운 절로 당시의 이름은 운봉사였다. 가장 번성할때는 절의 규모가 대단했다고 한다. 31개 본산 중의 하나로 45개의 말사를 관장했으며 산 안에만 14개의 암자가 있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화장암, 양진암, 금선대, 대성암 등이 남아있고 지방문화재 235호인 대웅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온돌방(35평)이었다는 설선당 만이 남아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개축 공사를 해서 건물은 더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다.
답답한 입구를 지나 한바퀴 빙 들면 오래전 요사채였음직한 허물어져 가는 건물과 그 뒤에 항아리들. 절집 연륜은 구석구석에 남아 옛 향기를 풍겨내고 있다. 한바퀴 빙 경내를 둘러보고 개울 옆 해탈교를 넘는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난 짧은 산길이 아름답기 그지 없다. 산길을 돌아서니 명부전이 나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단풍이 막 시작되고 있다. 첫 번째 방문때 못보던 새로운 감흥이 느껴진다. 김룡사의 가을 길을 벗어나 이내 대승사로 향한다.
처음 찾아온 날의 감흥이 그대로 살아난다. 여전히 아름답다. 대승사를 뒤로 하고 윤필암으로 향한다. 비포장길은 어느새 포장이 돼 있다. 짧은 길이지만 가는 산길이 예사롭지 않게 환상적이다. 윤필암은 선방으로 비구니들이 머물고 있다. 안쪽 선방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고 왼편 바위 능선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사불암과 선불장만 둘러볼 수 있다. 비구니 사찰이어서인지 곳곳에 여성의 손길이 느껴진다. 마루 한켠에는 메주가 햇살을 받고 있다. 졸졸 흐르는 약숫물에 목을 축이니 차고 예사롭지 않은 물맛이 느껴진다. 사불암에는 여승이 염불에 열중하고 있다.
불전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는 벽면을 유리로 설치했다. 이곳도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염불에 행여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워진다. 조심스럽게 법당안에 삼배를 하고 조용히 물러선다. 나중에 사면암에 올랐을 때에서야 법당안에서 사불암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을 알았다. 법당안에는 불전함이 없는 것이 이색적이다.
윤필암은 1380년(고려 우왕 6) 각관이 창건했다. 창건이래 참선도량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1645년 서조와 탁잠이 1765년 야운이, 1806년 취운 종백이 각각 중건했다. 1885년 고종의 명으로 창명이 중건했으며 1980년대 초에 모든 건물을 새롭게 지었고 현재도 중창불사가 한창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사불전 뒤 암반위에 서 있다. 이곳에 들러서 꼭 볼 곳은 사불바위다. 산길을 따라 왕복 1시간도 채 안걸리는 곳이다. 평평한 바위 위에 큰 바위 한기가 우뚝 서 있다. 이 바위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사불암은 높이 2m, 각면이 1.5m 정도인 사면체 바위인데 사면에 부처님 모습이 돋을 새김 돼 있다. 오랜 세월에 마모돼 형체만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능선위의 큰 바위 위에 터를 잡고 있는 모습이 장엄하다.
바위도 의미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발아래 풍광으로 윤필암은 물론이고 묘적암까지 정교하게 내려다 보인다. 멀리 사불산의 산자락과 마을까지 한눈에 잡힌다. 이 아름다운 곳을 그냥 지나쳤다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산자락을 내려와 묘적암쪽으로 올라가보니 우측에 돌계단이 나선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평평한 바위 뒤에 정교하게 잘 조성한 마애불이 나타난다. 팻말에는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239호)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엔 미륵암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 불상의 암석은 약간 앞으로 숙여져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또 갓바위가 설치돼 있어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보인다. 높이가 약 6m, 폭이 3.7m인 여래상으로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머리상부에 화염문을 간략하게 변형시킨 2개의 연꽃형 뿔모양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기름한 면상에 귀는 길며 눈은 감다시피 하고 입술은 두텁다. 이곳에도 불전함은 없다. 보기 드문 일이다. 나옹혜륵선사의 출가 암자이자 성철 스님이 정진했던 묘적암까지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또 대승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절집 입구에는 공덕산이라는 팻말아래 삼국유사의 한 대목을 적어 놓고 있다. 붉은 천에 싸인 바위덩어리(사불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네 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다. 진평왕이 몸소 찾아 예를 올리고 대승사를 창건케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공덕산에서 사불산으로 바꿔 부르게 됐단다. 대승사(054-552-7105,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 사불산은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 40리 지점에 있다. 산북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른쪽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높이 올라가면 해발 6백m 산마루에 뛰어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대승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 극락전, 나한전, 응진전, 서원, 요사채로 구성돼 있으며 위쪽에 총지암을 새로 지어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에 대승사에는 유일강원이 개설돼 근대의 큰 인물을 배출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전국 13도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결같이 스님네들의 얼굴에서는 먹물이 느껴진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대중교통 : 문경시에서 전두행 1일 6회 운행, 40분 소요. 산북면에서 택시 이용.
■자가운전 ; 문경시 영강교(2km)-북쪽 단양방면 975번 지방도 따라 6km-산북면 사무소-17번 군도 10km, 전두리(3.6km)- 대승사 주차장. 마애여래좌상:대승사와 윤필암 갈림길에서 왼쪽 윤필암방면으로 450m쯤 가면 왼쪽으로 묘적암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걸어서 가야 한다.
■별미집·숙박 : 김룡사 앞에만 음식점이 있다. 토속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민박도 가능하다. 번듯한 송어장집이 있다. 대승사 가는 길목인 거산리에는 학교가는 길(054-553-0822, www.schoolroad.com)이 있다.

< 이혜숙 여행작가 (http://www.hyesook.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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