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욱 회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을 ‘행복나눔125’ 운동본부 회장이라 소개하기를 바라는 그는 사실 한국을 대표하는 ‘테크노 CEO’로 손꼽힌다. 삼성그룹에서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혁신과 성장의 물꼬를 튼 ‘스타 CEO’다.
삼성SDI 사장으로 있으면서 국내 최초로 식스시그마 운동을 도입해 ‘식스시그마 전도사’로도 이름을 알렸다. 삼성전관 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거쳐 농심 회장에 이르기까지 손 회장은 줄곧 거대 조직의 수장을 두루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기술경영솔루션센터장을 맡고 있는 손 회장에게 리더의 덕목과 자질 그리고 조직문화 개선의 중요성 등 기업인들이 반드시 챙겨보고 고민해 볼만한 문제들을 물어봤다.
<대담 : 권기만 편집국장 / 정리 : 이권진 기자/ 사진 : 오명주 기자>

- 기업의 CEO와 임원이 윤리적인 잘못으로 사회적 지탄과 비난을 받는 뉴스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CEO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지요. 리더의 실책이 기업의 매출하락과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라는 실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사회가 경영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을 다시 살펴보죠. 19세기는 먹고 사는 생존 이외에 생각할 게 없었습니다. 살고자 하는 목적 하나로 북간도 지역으로 탈조선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20세기는 완전히 뒤바뀝니다. 개인과 조직의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시대였죠.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성공을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한데 모였기 때문이죠. 100년전, 50년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우리의 삶은 천지개벽을 했거든요. 여기서 문제는 조직은 성공을 했는데, 개인은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거예요. 긍정적인 정서 자체가 실종됐습니다. 리더들이 그러한 대중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성공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조직문화, 정신문화를 조성해 줘야 해요.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여기서 기업의 창의와 열정이 나옵니다.

- 한국형 리더십개발원을 지난 2012년에 출범시키셨지요? 이 개발원의 뿌리는 약 15년 전에 포스코에서 시작된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로 알고 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다고 하던데요.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한달에 한번 참석해 조찬토론을 했어요. 그러다가 일반인들도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게 만든 것이 한국형 리더십개발원이었죠. 한국에서도 미국의 케네디 스쿨이나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리더십 양성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드웨어를 짓고 보니까 소프트웨어(이론)가 있어야 하잖아요.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한국형 리더십의 원형이라고 판단했죠. 마침 세종 연구에 정통한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함께 여주대학교로 리더십개발원을 옮기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됐어요.
 
- 한국의 리더십 이론 99%가 미국의 학문과 사례를 기초로 하잖아요. 국내에 출판된 리더십 관련 서적도 미국의 유명 리더십 모형을 인용하더군요. 결국 한국형 리더십의 원형 이론을 세종에서 찾고 계시는 거네요.
한번은 2000명의 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신입사원부터 해서 사장급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죠. 한국형 리더십의 특성을 조사한 겁니다. 한국 사람에게 부족한 리더의 덕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나왔습니다. 첫번째가 ‘솔선수범’, 두번째가 ‘하향온정’, 세 번째는 ‘비전 제시’ 등입니다. 반대로 이 세가지를 잘하면 훌륭한 리더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더 연구를 해 보니까 바로 세종대왕이 펼쳤던 리더의 덕목과 일맥상통하더라 이겁니다.  

-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세종의 리더십이 현대사회에 와서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포스코의 박태준과 같은 신화적인 인물들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히셨는데요.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산업화 시대를 일궈온 경영 1세대의 리더십이 어떤 도움이 될까요?

단군시대부터 전해지는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누구나 다 알지요. 사람 사이에 널리 보탬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되자는 말이죠. 그러한 가치를 잘 실현하려면 솔선수범하고, 하향온정을 베풀고, 비전을 제시해야 가능합니다. 경영 1세대들이 정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분들의 행적을 다시 돌이켜보면, 알 수 있잖아요. 우리의 DNA 속에 이미 이러한 리더의 자질이 500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우리의 강력한 DNA를 끄집어내자는 게 세종 리더십을 한국형 리더십의 원형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기업과 단체 등의 조직문화를 개조하고 리더십을 제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2010년부터 ‘행복나눔125’ 운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합니다. 신바람 나는 행복한 국가와 조직을 만드는 것은 정신문화 운동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과거 새마을운동이 성공적으로 전개된 것도 정신문화 운동이었기 때문이죠. 행복나눔125 운동이 특별하지도 않아요. 하루에 한가지 이상 착한 일을 하고, 한달에 책 두권을 읽고, 하루에 다섯개 이상 감사 일기를 쓰자는 것입니다. 이를 묶은 게 125입니다.

- 정말 감사 일기를 매일 쓰고 착한 일을 하루 한번 한다고 조직이 바뀌고 개인의 행복이 향상될까요?

지금 전국 군부대에서 이 운동을 안 하는 곳이 없습니다. 기업체에선 포스코그룹,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체 200여곳이 참여하고 있어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이순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계시지요. 2014년 8월에 육군 2작전사령부 사령관이었는데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행복나눔125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강의를 경청한 뒤에 참모 사단장에게 이렇게 지시했어요. “이거야 말로 군에서 필요한 일이다. 진행 상황 보고 하지마. 직접 내가 가서 보고 확인할 거니까.” 딱 1년 동안 125 운동을 하고 나서 어떻게 됐을까요? 인명사고가 57%나 줄었습니다. 관심병사는 60%가 감소하고, 징계사병이 28%나 축소됐어요. 반대로 특급전사가 24% 증가했습니다. 숫자가 이 운동의 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생산률은 늘고, 사고는 현저히 떨어졌어요. 가정에서도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무뚝뚝한 아빠들도 감사일기를 쓰고 나서는 아들딸들과 더할 나위 없이 친하게 지냅니다. 아내와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결국 이 운동은 조직원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능력을 키우게 하자는 거예요. 중소기업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운동이 아닌가 싶어요.

- 그런데 CEO는 당장 이익과 매출이라는 숫자에 집착을 합니다. 치열한 기업경쟁 속에서 ‘미래의 우리’ 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중요하니까요. 이러한 성향은 1세대 창업주보다 2, 3세대로 갈수록 심화되는 거 같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1세대 경영인들은 모두 민족정신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국익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시대적 고민들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CEO들이 탐욕에 젖어 시장의 파워를 키우고 이익을 신장시키는 일에만 매달려요. “공존공영하자!” “상생합시다!” 하고 외치지만 진심은 아니죠. 자기 기업만 성장하면 되는 거예요.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께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1세대 창업주들에게 국가를 위한 일에 협조를 바란다고 건의를 하면 모두가 수긍을 하고 힘을 합쳤어요. 그런데 2세대 경영인들에게 같은 협조를 구하면 2명 정도만 동조를 합니다. 그러면 3세대는? 거의 없어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영인도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가 정신이 점점 메말라가는 기분이에요.
 
-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나 제왕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런데 가족경영기업의 경우 창업주와 비교하면 2, 3세들의 권위나 조직 장악력은 한층 떨어집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EY한영에 따르면 가족경영기업이 3대까지 생존할 확률은 3%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신화를 수많은 손자들이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까요?

창업주보다 더 뛰어난 2, 3세가 나타나면 되지만, 확률적으로 그럴 일은 없잖아요. 그런데 일본을 한번 보세요. 천년 가업을 유지하는 곳이 많습니다. 세계에서 업력이 200년 이상된 기업의 3분의 2가 일본에 있어요. 나머지는 거의 독일에 있고요.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은 가족에게만 물려주는 게 아닙니다. 자기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식이 아니라도 경영권의 바통을 물려주는 거죠. 그러면 천년을 가는 거예요. 다만 창업주는 기업가 정신을 유지하는 데에 노력해야겠지요. 중소기업들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한 집안의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직원이 이런 회사를 다니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려고 하겠어요.

- 말씀처럼 오너십에 의해 장악된 기업은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심리적인 소유의식을 갖기 힘듭니다. 위에서 아무리 자율과 창의를 강조해도 종업원이 진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거죠. 미국의 경영석학인 짐 콜린스 교수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까. “경영자는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국은 언제까지 현재 시간만 알려주는 CEO만 있어야 하나요?

우리 민족이 원래 그렇지 않았어요. 작은 일을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이상하게 사회계급이 점점 고착화됐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아예 차단되기까지 했죠. 지난 500년간 꽁꽁 닫힌 정신문화의 틀로 살아오니까, 구성원들이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나요. 제가 삼성SDI 대표로 있을 때 보니까 TV는 30년이 지나도 세계 1등을 못하는 거예요. 반대로 삼성 반도체는 8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라섰어요. 왜 그럴까 하고 들여다보니까, 삼성 반도체는 일주일에 한번씩 기술진들끼리 만나서 난상토론을 하는 거예요. 그게 가능했던 게 삼성 반도체를 세울 때 인재들을 대부분 세계 일류 기업에서 모셔왔거든요. 난상토론은 원래 삼성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삼성 TV브라운관도 이렇게 한번 해보자. 그랬더니 1년반만에 1위를 달성한 거예요. 리더는 조직원을 믿어야 하고 그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관건입니다. CEO의 말이 곧 법인 조직은 장기적인 미래가 없습니다. 빨리 문화를 바꿔야 해요.
   
- 중소기업 CEO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인력 확보입니다. 인재 확보는 둘째치고 당장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회장님은 삼성인력개발원장으로 계시면서,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교육을 전담하시지 않았습니까.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제 사람들은 인센티브 때문에 더 노력하지 않습니다. 보너스 얼마 준다, 승진시켜준다는 말은 동기유발이 안됩니다. 저는 이것보다 인력난에 다른 큰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인력개발원장 시절에 보니까 한국에서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했다는 친구들을 뽑아도 2~3년은 재교육을 시켜야 실전 투입이 되는 겁니다. 미국을 봤더니, 졸업하자마자 실무가 가능한 거예요. 재교육에 필요한 비용만 1억원이 넘게 듭니다. 또 공대를 나왔는데, 공학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절반이 안 될 거예요. 또 공대 출신 중에 총무직이나 영업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게 왜 그럴까요? 자기가 전공한 것에 자신이 없는 겁니다. 이러면 대기업도 그렇고 중소기업이 어떻게 사람을 쓰겠어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부터 교육체계를 뜯어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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