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대우전자·하이텍이 쌍두마차…‘미래 뜀틀’로 제조업 낙점

김준기 회장이 이끌고 있는 동부그룹은 지난 2013년 그룹 사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계속되는 실적악화로 계열사를 내다팔 정도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김준기 회장은 동부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알짜들을 매각하고 주요 계열사의 자산도 대량 판다는 자구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자구책의 총 규모만 3조원에 달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동부그룹은 그룹의 제조업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동부제철, 동부건설을 잃고야 말았고, 관련 제조 계열사도 동부그룹에서 떠나야 했다. 제조업이 강했던 동부그룹의 영광이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부건설의 매각은 아팠다. 건설은 동부그룹의 모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김준기 회장은 동부건설(옛 미륭건설)을 대학생 시절인 1969년에 창업했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동부그룹을 키워나갔다.

그룹의 뿌리까지 빼앗기고 구조조정의 날들을 보낸 동부그룹의 지난 2~3년은 정말 힘든 세월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 일단 한숨을 돌린 상태다. 동부그룹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함께 구조조정을 계속 진행하면서 그룹의 건전성 확보에 노력했고, 결실을 맺었다. 요즘 동부그룹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다. 제조업 관련 계열사도 조금씩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 모양이고, 금융과 전자부문으로 계열사 재편도 완성되면서 동부그룹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세탁기 등 동부대우전자의 글로벌 파워
지난 2013년은 동부그룹이 가장 덩치가 큰 상태였었다. 제조부문 계열사가 55개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간 계열사 정리를 통해 최근에는 13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재계 순위도 뚝 떨어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대기업 순위에서 30위권 밖으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그러나 동부그룹이 회생의 기반을 마련한 데에는 아직 보유하고 있는 알짜배기 계열사들이 많기에 가능했다. 동부하이텍, 동부대우전자 등이 탄탄한 주력 계열사들이다.

먼저 동부대우전자는 현재의 동부그룹에 있어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곳이다. 동부대우전자의 옛 이름은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지난 2013년 2월에 동부그룹이 인수합병한 회사다. 당시 그룹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불과 몇달 전에 일어난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외부에서는 전자 제조업을 품에 안은 결정이 과연 효과를 볼지 물음표를 많이 달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국내 전자 제조업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신의 놀이터처럼 완전히 장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부대우전자는 국내가 힘들다면 선제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동부대우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 수출에 주력을 했는데, 주로 미국과 중국의 거대 시장을 노렸다. 이어 멕시코, 페루 등 중남미 시장에도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데에 성공을 한다.

성과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동부대우전자는 멕시코 냉장고 시장의 30%가량을 점유하면서 1위로 등극했다고 한다. 세계의 소비시장인 중국에서는 베이징·상하이 등 100여개 도시에 위치한 가전매장 300여곳에 입점을 하면서 동부대우전자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동부대우전자의 냉장고와 세탁기의 세계 판매량은 얼마나 될까. 약 30만대가 넘는다고 하고 이는 해외 비중의 80%를 차지한다. 동부대우전자는 지난해 매출 1조6000억원을 기록하고 대략 영업이익을 200억원 가까이 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2013년 위기의 순간에도 대우일렉트로닉스라는 카드를 잘 선택한 보답을 지금 받고 있다.

동부하이텍, 반도체 위탁생산의 힘
동부하이텍도 동부그룹의 새로운 성장에 있어 대표적인 핵심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한 반도체 파운드리, 즉 위탁생산 업체다. 사실은 이 회사도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한동안 매각을 추진하다가 실적이 점차 좋아지자 채권단이 매각을 중단했다.

이 회사의 실적 개선에는 높은 영업이익이 눈에 띈다. 지난해에만 매출 6666억원을 거뒀고. 영업이익은 125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동부하이텍의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김준기 회장에게 동부하이텍은 특별한 존재다. 지난 1997년 동부전자라는 이름으로 설립될 때부터 김 회장은 남다른 관심과 지원을 쏟아 부으며 동부하이텍의 성장을 도모했다. 문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부진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시장 특유의 높은 기술장벽과 천문학적인 투자비 등이 동부하이텍의 성장에 걸림돌이 됐다.

동부하이텍은 2005년 이후 아날로그 반도체에 특화된 위탁생산 업체로 체질을 전환하면서 회생했다. 주로 중국의 스마트폰이나 초고화질이라고 할 수 있는 UHD TV 제조사에 반도체 칩을 납품하는데, 이 물량이 증가하면서 동부하이텍의 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최근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도 우연찮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대만에는 동부하이텍과 같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가 많은데, 연초에 터진 대만 지진으로 가동이 장기간 멈추면서 반사이익도 얻었다고 한다.

동부하이텍의 최근 분위기만 보면, 올해 매출 7300억원 물론, 영업이익 1700억원 돌파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동부하이텍이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고 있는데. 요즘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상승여력으로 자동차, 건물, 일회용품 등에 적용될 반도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동부그룹에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계열사들이 또 있다. ㈜동부는 동부CNI의 새로운 이름으로 IT사업에 주력하는 곳이다. 적자에 계속 시달리다,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ING생명의 IT인프라 운영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김준기 다시 제조업으로 그룹 재건
이쯤에서 보면, 김준기 회장이 어떻게 그룹을 재건하려고 하는지 그의 큰 그림이 보인다. 바로 동부대우전자와 동부하이텍을 새로운 그룹의 양대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동부그룹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이 중심 축이었다면, 그 바통을 이들 전자 분야 제조업 계열사들이 받게 된 것이다. 결국, 김준기 회장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제조업을 통해 동부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자 분야 제조업을 중심으로 그룹 재건에 나서는 김준기 회장은 동부대우전자에 상당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전신인 대우일렉트로닉스를 2700억원에 인수할 때 김 회장은  사재로  250억원을 보탤 정도로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동부대우전자가 2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고, 김 회장이 별도로 60억원의 사재를 털기로 했다는 뉴스도 있다. 현재 김 회장은 동부대우전자의 대표이사 자리에 있다.

김 회장은 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을 대학시절에 창업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IT전자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 전자업계를 견학을 할 기회가 있어 김 회장은 현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IT전자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은 식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래서인지 김준기 회장은 반도체 전문 동부하이텍에 30년 넘게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동부하이텍이 투자 대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 김 회장의 이러한 투자에 대해 염려 섞인 우려를 많이 했었다. 2009년에는 김 회장이 동부하이텍에 3000억원 가까운 개인 돈을 출연한 적도 있다.

IT전자가 동부그룹의 성장 열쇠가 될 여지는 충분하다. 김준기 회장이 앞세운 두 기업, 동부대우전자와 동부하이텍의 최근 실적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런데 최근 김 회장과 그의 일가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5년간 계열사에서 모두 1114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동부건설의 법정관리를 앞두고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 손실을 피하려 했다는 것.

겉 모양만 보면 최근 검찰 소환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 이득을 챙긴 사례와 닮은꼴이다. 동부그룹은 해당 배당금은 모두 제조업 구조조정 비용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에 대한 의혹은 좀 다르다. 그가 미공개를 통해 이득을 본 금액은 3억원도 안 된다. 그룹 재건을 위해 그동안 수천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그였다.

김준기 회장의 그룹 재건의 열망에 있어 이러한 사건이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동부그룹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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