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가 정부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상향조정에 대해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는 지난 9일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총액 10조원으로 일괄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기준은 현행 5조원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는 기획재정부, 산업부, 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 협의와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37개 기업 618개 계열사 규제 풀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상호출자·채무보증이 제한되는 대기업집단 지정 자산 기준이 8년 만에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아진다. 농협을 뺀 공기업도 모두 빠진다. 이에 따라 대기업 집단의 수는 65개에서 28개로 줄어든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던 카카오, 셀트리온, 하림이 제외되는 것을 비롯해 한국타이어와 코오롱, 동부, 한라,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증흥건설, 세아, 이랜드, 한국지엠, 태광, 태영, 아모레퍼시픽, 하이트진로, 삼천리, 한솔 등도 대기업집단에서 빠진다.

중소기업계는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대기업 쏠림을 줄이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불공정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틀이 합리적인 기준없이 변경되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려는 제도의 취지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채무보증이 제한되는데 이번 기준 변경으로 37곳이 여기서 풀려나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벗어난 37개 대기업집단은 계열사만 618개인데 이들이 골목상권 진출이나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실제로 대기업 기준이 2조원에서 5조원으로 변경된 2009년 대기업 집단에서 해제된 일부 기업들은 공공조달시장 위장진출,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중소상공인에게 어려움을 준 바 있다. 특히 한솔제지는 중소 제지 유통회사와 골판지 생산업체를 인수 하는등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 중소업체들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중소기업계는 이번에 대기업 집단에서 벗어나게 된 카카오 역시 택시·대리운전은 물론 미용실·가사도우미 예약서비스 사업에도 진출해 있어 소상공인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하림도 사료값 담합과 계란유통사업 진출에 따른 독점 논란이 커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기업 규제 국회서 충분히 검토해야”
국회 입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만으로 다른 38개 법률이 정한 규제 적용 기준까지 바뀌는 것도 부담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제한 등의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적용받는다. 이와 별도로 중소기업, 조세, 고용, 금융, 언론 등과 관련한 38개 법령도 공정거래법상 지정제도를 그대로 끌어와 사업 및 주식소유를 제한하거나 각종 혜택을 배제하고 있다.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개선방안에 따라 다른 부처 관할의 관련법도 무더기로 개정될 예정이다. 법령에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10조원 이상 기업집단’ 등으로 공정거래법을 그대로 끌어쓴 벤처기업육성법, 기업활력제고법 등 36개 법령은 별도 개정없이 공정거래법 시행령 변경 내용이 자동 적용된다.

다만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우선지원대상 기업에서 배제하도록 한 고용보험법 시행령, 해조류양식어업 등 일부 어업면허 금지를 담은 수산업법 시행령은 10조원 기준 적용을 위해 별도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공정거래법의 좁은 시각에서만 검토하고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대기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다양한 규제를 하려면 국회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부터 60개 이상 지속 유지”
중소기업계는 이번 대기업 기준 변경엔 특별한 근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후반, 기준을 상향했을 때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기업 지정 대상이 급속히 늘어 조정이 필요했지만 저성장 기조가 강해진 2012년 이후 대기업집단은 변동이 없어 이번 조치의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간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은 61~65곳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 규제를 받는 기업이 30개이하로 떨어진 것도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이 아닌 투자확대, 신사업진출, 해외진출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예외적 규제 완화는 인정한다”면서도 “이는 산업·업종·자산규모별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력집중 심화와 골목상권 침해가 우려되는 현실에서 이번 기준 개정이 제도의 본질에 충실한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은 현행 유지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인 지주회사의 자산요건은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와의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14년 만에 늘어났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는 기준을 완화하지 않고 ‘5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대해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3년마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과 지주회사 자산요건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기준 상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사후규제에 대해서만 자산규모 기준을 차등 적용하는 내용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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