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4조2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한다고 한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대우그룹 전체가 무너질 때도 대우조선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은 2조9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기사회생한 적이 있다.

또 이번 지원이 끝도 아니다. 지원하면 경영이 정상화될 거라는 낙관적 시나리오 하에 투입되는 최소한의 금액이고 외부환경이 더 나빠지거나 해서 추가부실이 생기면 투입되는 혈세는 눈덩이처럼 더 커질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부실기업을 살리는데 그렇잖아도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세금을 내야 할 까?

정책담당자나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은 그럴듯하다. 대기업이 망하면 거기에 줄줄이 딸려 있는 협력기업과 근로자들도 망하고 기업에 대출해준 금융기관과 지역경제도 부실해지기 때문이란다.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과 숙련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고 일시적인 불황의 시기만 잘 견뎌내면 다시 호황이 도래했을 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밑 빠진 독 물붓기식 지원 멈춰야

정말 그럴까? 세계경제가 공급과잉과 구조적인 저성장기로 들어서고 경쟁상대인 중국의 경쟁력이 우리를 턱밑까지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낙하산 경영자와 강성노조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에 국민의 혈세로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수렁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합리적 상식에 어긋나는 이러한 일들이 나라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거리낌 없이 행해지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패러다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망하게 놔두면 협력기업, 근로자, 금융기관, 지역경제 모두 부실해질까?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그려질 수 있다. 망한 기업에서 시장에 밀려나온 숙련기술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창업을 할 것이다. 노조에 안주했던 근로자들도 생계유지를 위해 더 이상 노조의 버팀목이 없는 기업에서 땀을 흘릴 것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기업가정신을 회복한 지역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경제 패러다임·시스템 변화 절박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이 과정에서 아무리 외쳐도 실현되지 않았던 경영개혁, 노동개혁은 자연스럽게 부산물로 얻어질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공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핀란드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혁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망한 이후 핀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다.

우리라고 이걸 할 수 없을까? 아니 우리는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자영업자 비율에 숨어 있는 창업 DNA, 역시 세계 최고수준의 노동시간에 숨어 있는 노동 DNA가 결합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가정신이 발휘돼 이미 수명을 다한 대기업을 대신하는 강소기업이 줄줄이 생겨날 수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준비된 창업이 이뤄지도록 창업인프라가 탄탄히 구축돼야 하고 구조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나 안전망도 만들어져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대기업 중심 패러다임에서는 생겨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절박해야 변화로 가는 동력이 생기는데 대마불사의 대기업 중심 패러다임 속에서는 절박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물꼬만 터주면 우리나라 기업과 국민의 극성 DNA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낡아빠진 대기업중심 패러다임으로 물꼬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 작금의 답답한 현실이다. 대기업도 부실하면 언제든 망하게 하고 그 빈자리를 실력 있는 강소기업이 채워가도록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바꿔가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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