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호텔 포시즌스의 성공

이저도어 샤프(ISADORE SHARP)가 이룩한 호텔 왕국 포시즌스(Four Seasons)는 뛰어난 고객 응대로 유명하다. 이저도어 샤프가 1961년 호텔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는 호텔 산업에 무지했다. 그러나 샤프는 본능적으로 호텔 서비스의 본질을 파악했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도 철저하게 준비하게 됐다.

예를 들어 샤프는 호텔 객실의 정숙함을 유지하기 위해 배관이 콘크리트에 직접 닿지 않도록 설계해 시공했다. 또한 포시즌스에서는 주차요원부터 임원까지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즉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줬다. 모든 서비스의 정점에 고객이 있다는 것이 이 호텔의 기본 철학이다.

샤프는 올해 84세의 노장임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포시즌스는 현재 41개 국가에 걸쳐 96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 중이다. 매출은 연간 40억달러 수준이다. 포시즌스의 장점 중에 하나는 체인을 확대할 때 개발사업자에게 단순히 브랜드만 빌려주고 알아서 설계와 시공을 시키지 않는다느 점이다.

고속도로 모텔 건축부터 시작
샤프는 “개발업자들이 새로운 포시즌스 호텔을 짓고자 할 때, 지금도 회사가 세부 건설 방향과 직원 고용을 주관하고 있다”며 “단순히 포시즌스 이름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샤프 회장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1931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샤프는 주택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의 건설현장에서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건축가가 되고 싶던 그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이어슨 대학을 졸업했다. 1955년 그가 처음 지은 건축물은 고속도로 옆에 있는 작은 모텔이었다. 친구의 의뢰를 받아 손쉽게 진행됐다. 그후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 단계 발전한 샤프는 은행과 생명보험기관 등을 통해 투자금을 유치하며 도심 지역에 새로운 모텔을 지으려고 시도했다. 모텔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두번째 도전은 토론토 외곽에 객실 200개의 리조트 건설이었다. ‘더 인 온 더 파크’(The Inn on the Park)라고 리조트 이름을 지었다. 이 사업도 성공했다.

1963년 샤프는 성공을 기념해 아내와 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그리고 런던에서 단 하루 숙박한 최고급 호텔인 도체스터(Dorchester)를 보고 그는 호텔사업의 매력에 빠졌다. 토론토로 돌아온 샤프는 도체스터 건축에 관여한 업자와 미팅을 할 수 있었고, 런던에 새롭게 호텔 건설을 계획한다.

그렇게 해서 1970년 더 인 온 더 파크 런던(The Inn on the Park London)이 오픈했고, 1년만에 유럽 최고의 호텔로 선정된다. 단숨에 호텔업계 1위로 오른 이유는 다른 호텔과 차별화된 고객서비스 덕분이었다.

그뒤 샤프가 호텔 사업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사건이 일어난다. 1974년 밴쿠버에 대규모 호텔을 건설해 임대할 계획이었지만, 함께 사업을 추진한 투자자들의 자금사정으로 난항을 겪게 된다. 결국 파산직전까지 갈뻔하다 간신히 자금을 빌려 기사회생을 한다. 이를 통해 샤프는 자금 리스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체감한다. 그 결과 포시즌스는 호텔 건설에 집중하기보다 사업 전반에 눈을 돌렸으며, 호텔 자산 관리에 있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이저도어 샤프는 1986년 포시즌스를 상장한다. 자산의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포시즌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1994년에는 주식 일부를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주가보다 25%나 높게 쳐 매각을 했다. 하지만 2007년 포시즌스는 다시 비상장으로 전환한다. 이때 포시즌스의 가치는 34억달러 규모였다. 샤프는 회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경영의 안정성을 도모하고자 했다.

포시즌스가 고객에게만 최고의 호텔인 것은 아니다.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최상으로 따진다. 포시즌스가 가장 먼저 개선하는 시설은 직원 시설이다. 직원도 한명의 고객으로 대우해 준다. 불경기로 인원을 감축하는 경우에는 해고된 직원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채용이 필요하면 우선 순위로 재고용을 한다. 이저도어 샤프의 성공 노하우는 풍부한 자금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었던 셈이다.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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