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내수·수출 기댈 곳 없는 중소기업

#현장사례1. 배전반을 제조·판매하는 A사는 최근 내수 침체의 해법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1년에 3~4회 해외 입찰을 시도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초기 비용이 부담이다. 1회 번역 비용으로만 500만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는데, 입찰에 실패할 때마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처리 되고 있다. ㄱ대표는 “언어능력과 전문지식을 함께 갖춘 인력을 채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생각보다 많은 초기 비용이 들어가니 해외 진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청의 지원사업이 있지만 희망 기업에 비해 예산 규모가 작다보니 실제로 이용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장사례2. 첨단환경기술 기업 B는 최근 해외 시장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다니기 바쁘다. 수출 초보기업으로 정부 유관기관에서 발간하는 자료를 참고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보는 특정 주제에 맞춰진 분석 자료라 관련된 내용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통관절차와 규제도 달라 딱 맞는 업종별 정보를 찾는데 만 수개월이 걸린다. ㄴ 대표는 “신흥국과 신생 업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정보 전문기관에 요청했더니 중소기업에겐 엄두도 못낼 금액을 요청했다”며 “정부에서 보다 다양한 업종과 나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사례3. 휴대전화용 플라스틱 키보드 패드를 만들던 C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제품 자체의 판로가 없어졌다. 사업 전환을 다각도로 모색해 왔지만 기계설비 등 시설 투자에 들어간 돈이 많아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신규 기계 설비를 구입하는데 애로가 큰 상황이다. 사업을 전환할 때 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해 해당 기업에 적절한 품목을 고르는게 핵심인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분석과 판단을 하는데 CEO 개인 역량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부담이 크다. ㄷ대표는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업종에도 전문가의 컨설팅으로 도움을 준다면 혁신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자신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기업인들의 사투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산업계를 둘러싼 규제와 맞춤지원 부족으로 중소기업이 신음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전 임직원이 지난 4월21일부터 5월31일까지 중소기업 현장을 방문해 경기 등 실물동향을 점검한 결과 이 같은 애로가 쏟아졌다. 대외적으로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브렉시트)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구조조정과 김영란법 시행 등 산업계를 위축할만한 요건들도 산적해 이를 돌파할 지원책과 신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中企 73.6% “1년 이내 투자의향”
중기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상반기 현장점검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향후 1년 이내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기업이 73.6%에 달했다.

인력을 채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기업도 81.5%에 달해 최근의 경영위기에 소극적 대응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기업들에게 앞으로 수출을 추진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51.3%가 ‘수출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중소기업의 의지를 뒷받침할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정부의 과제로는 ‘중소·중견기업 육성’(68.6%)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이어 ‘신속한 산업 구조조정’(33.3%)과 ‘신성장산업 발굴’(31.8%), ‘내수부양’(30.7%) 등 순으로 조사됐다.

수출 추진 시 필요한 지원정책에 대해서는 ‘시장조사·바이어 발굴 등 일대 일 맞춤형 지원’(41.4%)에 대한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수출초기기업에 대한 수출자금 지원우대’(36.4%)와 ‘해외전시회·시장개척단 참여기회 확대’(33.6%), ‘해외 규격인증 획득 지원확대’(29.1%) 등 순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절반은 지난해보다 경영상황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전에 비해 경영상황이 ‘악화됐다’는 중소기업은 47.5%에 달한 반면, ‘개선됐다’는 곳은 28.9%에 그쳤다.

현재의 경영상황 악화가 얼마나 계속될 것 같은가를 물어본 결과 ‘2년’이라고 답한 비율은 36.5%, ‘3년’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7.8%를 기록, 현재의 경영상 어려움이 단기간에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중소기업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유영호 중기중앙회 산업지원본부장은 “직접 현장을 찾아 실물동향을 점검해 본 결과 중소기업 경영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내수부양과 최근 브렉시트 영향이 국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소기업의 예상처럼 하반기 산업전망도 잇따라 나쁘게 발표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1일 발표한 ‘하반기 산업 기상도’에 따르면 대부분 업종이 ‘흐림’으로 예보됐다.

특히 조선은 글로벌 분업고리의 약화로 물동량이 줄어 선박수주도 같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세계선박 발주량이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감소하는 등 수요감소가 이어진다는 예상 때문이다. 실제 상반기 한국의 수주량은 88% 감소했다.

IT·자동차 ‘흐림’, 조선 ‘비’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 영향으로 IT·가전 업계에도 구름이 꼈다. 다만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디스플레이 매출은 좋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를 매기며 ‘통상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철강업계도 흐릴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중국내 철강산업 구조조정으로 공급 과잉 문제가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정유·유화 업종은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아시아지역 석유 제품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이 나왔다. 유화업계의 대표적 수출 품목인 에틸렌도 해외 경쟁사의 신규투자 축소로 반사이익이 예상됐다. 

건설업계도 저금리로 신규분양 수요가 늘고 공공건설 수주 효과를 볼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공공건설 시공사를 선정하는 입찰 방식인 종합심사낙찰제의 세부 규정이 마련되면서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7조9000억원대의 공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도 구조조정 여파로 지방 내수가 위축되고 해외 수주가 불안하다는 점 때문에 ‘맑음’보다 한계단 낮은 ‘구름 조금’으로 예보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에서도 올 하반기 우리의 주력산업 대부분이 중국업체와 치열한 경쟁 속에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12대 주력산업 가운데 반도체와 조선은 올 하반기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1%, -11.8%로 전년보다 각각 -5.7%포인트, -0.7%포인트 나빠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는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중국 현지 생산 등이, 조선은 중소형 조선사의 법정관리로 인한 건조물량 취소와 해양프로젝트의 인도 연기 등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산업의 전반적 부진 지속으로 올해 수출 성장률은 -6%가 전망됐다.

올 하반기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 전환하는 곳은 디스플레이(5.9%)와 일반 기계(4.1%) 업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1.0%), 자동차(-1.3%), 섬유(-2.4%), 정유(-4.5%) 등도 하락 폭이 둔화되는 것으로 전망됐다.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하반기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되겠지만, 설비투자 감소세가 여전하고 구조조정의 영향도 클 것으로 보여 전년과 비슷한 연간 2.6%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산업 육성이 근본적 해결”
정부는 하반기 경제성장 회복을 위해 추경편성을 계획하고 있다. 상반기 세수가 확대됐기 때문에 이를 부채감축보다 추가 집행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가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추경을 매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재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장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개혁하는 중장기적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신산업 육성으로 보고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신산업 육성 전국 토론회 출범식’을 갖고 신산업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확대나 금리정책 등과 같은 단기적 수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산업을 찾고 육성하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해법이 나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경기침체가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와 달리 ‘실물’이 위기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처방도 달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경련은 신산업을 찾는 방안으로 어려운 ‘하이 테크(High Tech)’ 산업보다 성공이 쉬운 ‘하이 찬스(High Chance)’산업, 경쟁이 심한 과잉공급 산업보다 공급이 부족한 ‘과소공급’ 산업, 국가창업형 산업 등을 선정해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하이 찬스’ 산업은 수요가 분명하고 비교우위가 있지만 규제에 막혀 있는 산업을 뜻한다. 업종으로는 산지(산악)비즈니스, 스마트의료, 자동차 개조 등이 있다. 과소공급 산업으로는 국내에 없거나 미진하지만 시장 기회가 큰 시니어산업, 농식품, 해양레저 등을 꼽을 수 있다. 국가창업형 산업으로는 개인이나 기업, 지자체가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항공정비(항공기 MRO), 바이오제약 등이 있다.

전경련은 이날 출범식 이후 9월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지자체와 함께 신산업 육성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는 전북에서는 식품산업을, 자동차 영암서킷 활용방안을 찾고 있는 전남에서는 자동차 튜닝산업을, 세계 1위 바이오제약 생산 능력을 보유한 인천에서는 바이오제약 산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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