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춘(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한국경제TV 해설위원)

2012년 12월부터 아베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아베노믹스가 참의원 선거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엔저 유도’로 상징되는 지금까지 추진했던 방식과 사뭇 다른 정책수단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아베노믹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재정정책에 우선순위가 실린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일본은행(BOJ)은 발권력,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제로 이어지는 금융완화수단을 고집해 왔다. 하지만 엔저로 외수 기여도가 높아지기 위한 전제인 ‘마샬-러너 조건’과, 엔저 이득이 국민에게 돌아가는데 필요한 ‘역 바세나르 협정’이 충족되지 못해 경기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직후 10조엔 규모의 대대적인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의 재정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베 총리가 크루그먼의 훈수를 받아들인 배경에는 미국 학계에서 벌어졌던 ‘로코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이 있다. 로고프 독트린이란 재정지출로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신뢰 위기에 봉착하고, 경기도 ‘구축 효과’가 발생해 의도했던 대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완화에서 재정확대로

하지만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재정적자 축소에 우선순위를 두면 1930년대 대공황 당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오히려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면 누진적인 조세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재정수입이 늘어 재정적자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 ‘크루그먼 독트린’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경제학과 자리를 놓고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간 자존심 싸움으로 비유됐던 이 논쟁에서 오바마 정부가 손을 들어준 것은 크루그먼이다. 오바마 정부는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살리고 재정적자를 축소하는데 효과를 거뒀다. 아베 총리도 이 점을 주목해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의 250%가 되는 여건에서 대규모 재정지출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 경제가 처한 재정여건을 감안할 때 재원조달 수단으로 국채를 발행해 민간에게 소화시키는 방안과, 발행한 국채를 BOJ가 매입해 주는 ‘국채 화폐화’ 방안이다.

두 방안 모두 경기부양 효과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민간소화방안은 국채발행 과정에서 시장금리가 올라가 금융완화정책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총수요도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민간수요 위축으로 공공지출 증대를 줄이는 ‘구축 효과’가 발생해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미래 불확실성’해소가 먼저

BOJ가 인수하는 방안은 공공부문이 민간수요 창출을 주도하는 ‘마중물 효과’가 1990년대 이후 약화돼 왔다. 고령화 등으로 일본 국민과 기업이 느끼는 미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BOJ의 독립성 훼손과, 궁극적으로 물가를 끌어 올려 국민에게 그 부담이 귀착되는 ‘강제 저축’도 우려된다.

금융완화정책은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경기와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다. 궁여지책 속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대처한 것으로 평가받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를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와 아베 총리가 잇달아 만났다.

앞으로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 입장에서 관심이 되는 것은 버냉키 전 Fed 의장의 상징 격이 된 ‘헬리콥터 밴식 통화정책’이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경제주체가 느끼는 ‘미래 불확실성’에 있다.
제3의 정책이 나와야 한다. 재정지출 총량을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부양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항목을 줄여 경기부양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몰아주는 ‘페이-고’나, 균형재정 승수효과가 ‘1’이라는 점을 착안해 조세와 지출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간지언’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분간 금융완화정책은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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