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세계적 건설기업 ‘벡텔’

미국 기업인 벡텔(Bechtel)은 세계적인 건설업체다. 목장을 운영하던 창립자 워런 벡텔(Warren Bechtel)이 철도 건설 지원을 위해 1898년 회사를 처음 창업했다.
벡텔은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단기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창업주 후손 총 네명이 CEO를 맡아 회사를 이끌었다.

가족기업은 첫 2~3세대가 지난 후 전문 경영인 손에 맡기지 않으면 반드시 쇠락하게 된다는 경영계의 일반 상식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었다. 미국 역사상 벡텔만큼 세습경영에 성공한 대기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118년 역사를 가진 벡텔은 전 세계 다른 어느 기업보다 더 많이 ‘물리적 세계’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그들의 주요 실적으론 미국의 후버 댐(1936년 완공), 아라비아반도 횡단 송유관(1950), 베이 에어리어 고속환승 시스템(1976), 나사(NASA)의 40번 우주발사장(1992),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인 채널터널(1994), 아테네 지하철(2004), 그리고 전 세계 최대 수준의 공업지대 건설 프로젝트로 회사가 40년 이상 총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바일 등이 있다.

또 벡텔은 연간이용객 수 5000만명(뉴욕 JFK공항과 동일한 수준)을 목표로 지은 카타르의 하마드 국제공항을 최근 완공한 바 있다. 그들의 작품 중에선 미국의 태양광기업 브라이트소스 에너지와 합작한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이반파 태양광 발전 단지도 빼놓을 수 없다. 태양광 집열판만 35만개인 이 단지는 현존하는 지구 최대 태양열 발전소다.

그 외에도 벡텔은 런던 중심부와 교외를 연결하는 터널·철도 네트워크 건설 프로젝트인 크로스레일 프로젝트(유럽 최대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다)의 상당 부분도 감독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 내 최초의 LNG 수출 터미널도 건설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프로젝트 행렬 덕분에, 벡텔은 2015년 매출 400억달러를 올려 제과업체 마스(Mars), 슈퍼마켓 체인 퍼블릭스(Publix) 등을 제치고 미국 6대 비상장기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벡텔 사업의 4대 축은 광산업, 원자력 및 정부관련 사업, 석유 및 가스, 인프라 분야다. 정체 상태부터 고성장까지 각 분야의 상황은 제각각이다. 예컨대 광산업은 2009~2013년 가파르게 성장해 벡텔의 최대 사업부인 석유·가스 부문을 추월할 기세였다.
하지만 이 기간 이후 구리, 알루미늄, 철광석 가격이 폭락하면서 업황이 함께 나빠졌다. 시장 변동성이 크다는 문제는 비교적 안정적인 정부사업을 통해 일부 상쇄되고 있다.

2004~2015년 회사 매출은 174억달러에서 400억달러로 늘어나 약 8%대의 연 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다. 건설업이 성숙기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였다(벡텔은 연매출과 예약 매출액을 제외한 다른 재무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장이 정체되면서 연매출이 2013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벡텔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사업구조 다각화에 성공했지만, 에너지산업의 급격한 가격변동과 구조적 변화 때문에(특히 천연가스 사업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벡텔의 개별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분야는 중국·일본·스페인행 유조선에 실을 천연가스를 점도 높은 액체로 바꾸는 냉각플랜트 건설이다. 현재 최대 사업부인 석유 및 가스 부문의 총매출에선 LNG 관련 계약이 비중이 절반을 넘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건설업계가 갑작스런 변화에 위축되고 있는 절체절명의 전환기다. 원자재 가격이 전세계적으로 폭락하면서 정유 및 광산업체들이 알루미늄 제련소, 구리 광산, 신규 LPG 프로젝트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중동 산유국들은 초대형 환승시스템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했다.

한편 중국 건설업체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자국 노동자 수천명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개발했다. 그 결과 벡텔의 경쟁력이 가장 큰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새로운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벡텔이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지를 우리 건설업계도 주목해야 한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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