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중섭, 백년의 신화展

생전엔 몰이해와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일찍 세상을 등졌건만, 사후엔 천문학적 단위로 그림이 거래되며 신화 운운한다.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은 궁핍한 삶의 여정 때문에 ‘한국의 고흐’로 불러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여성과 결혼했지만 가난 때문에 아내와 두아들을 일본에 보내고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양담배 속지인 은지(은종이)와 편지에 빼곡히 담았다. 전시회를 열면 그림을 가져가는 이는 있어도 돈을 받지 못했고, 영양실조와 정신 이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홀로 세상을 떴으며, 사후에 친구들이 무연고 처리된 작가의 시신을 찾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어줬다는 슬픈 이야기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 서거 6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려 국립미술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0월3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중섭 미술관을 필두로 뉴욕현대미술관, 서울미술관, 개인 등  60여 소장처에서 대여 받은 200여 작품과 100여점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은지화, 엽서, 편지, 사진, 도록, 영상물 등 작가에 대한 자료를 많이 그러모은 전시라, 이중섭 그림에 대한 총체적 재평가 기회가 됐으면 한다.

각 방은 시기별, 정주 지역별로 각각 두세개 섹션으로 나뉘어졌다.

‘이중섭의 은지화 1950-1955’ 방은 은지에 그려 넣은 그림을 잘 볼 수 있도록 부분 조명을 밝혔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난 후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닦아내, 긁힌 부분에만 물감이 남게 한 은지화는 고려청자 상감기법이나 철제 은입사 기법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중섭은 300여점의 은지화를 남겼다는데, 한쪽 벽면에 벽화와 같은 대작을 그리고 싶어 했다는 작가의 마음을 대신해 은지화를 크게 확대 상영하고 있었다.

‘전후 통영 1953-54’는 안정적 생활기로, 대표작 소 그림과 풍경화를 많이 남겼다. 이 시기의 소 그림을 포함해 소 그림은 이번 전시에 10점이 전시되고 있다. 풍경화는 소박한데, 특히 ‘청기와’가 재미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기와지붕 그림으로, 알몸 사내가 대자로 누워있는 형상을 볼 수 있다. 

‘이중섭의 편지 1953-55’에선 현존하는 가족 서신 60여통의 일부를 볼 수 있다. 편지 글씨가 힘차고 조형미가 뛰어난 데, 학창 시절 서예를 배웠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아카이브’에선 삽화를 그린 잡지, 구상이 스크랩한 이중섭 관련 신문 기사들, 1974년 작 영화 <이중섭>과 연극 ‘길 떠나는 가족’ 등의 자료, 팜플릿, 책, 사진, 일본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이중섭의 아내>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고흐도 말한 바 있는 정직한 화공을 꿈꿨다는 이중섭. 의외로 많은 자료가 남아있음을 확인하며 궁핍한 삶과 예술 혼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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