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근(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지금 대한민국 50~60대는 베이비붐 세대이다. 정치의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이다. 그 결과 직접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가벼운 투표용지 한장에 무거운 가치를 실어놓은 세대이다.

그 다음 40대는 베이비붐 이후 세대이다. 50~60대보다 정치적 무당파와 중도층이 많은 세대이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의 끝자락에서 ‘취업난’을 겪기 시작한 세대이다. IMF 후폭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세대다. IMF 때 부실 재벌의 해체를 목도했지만, 역설적으로 경제의 집중화를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다.

대한민국 40대의 정서에는 박탈감과 소외감, 두려움과 피곤함이 혼재한다. 통신비, 주거비, 교육비는 스쳐 가는 월급통장이 주는 박탈감의 원인 제공자다. 경제가 어렵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5년 전에는 ‘경제민주화’가 화두였다. 속도에서 질로 경제성장의 방향타를 바꾸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치와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파급력이 있었지만, 생소한 용어였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는 재벌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와 횡포를 막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을 꾸준히 이끌어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과 창업 활성화 정책도 봇물이 터지는듯 했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발전적 개념 논쟁도 지속하고 있다.

말의 성찬보다 나의 ‘내일’에 관심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경제민주화가 되면 내일 나의 하루가 어떻게 나아지는지가 더 궁금하다. 경제민주화가 40대의 박탈감, 소외감, 두려움, 피곤함을 어떻게 위로해주는지가 관심사이다.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포용적 성장’이 화두이다.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포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포용적 성장은 미국의 애쓰모글루 교수가 ‘포용(Inclusion)’이라는 표현을 통해 포용적 성장을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IMF와 OECD가 받아들였다. 2012년 이후 OECD 각료이사회는 포용적 성장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OECD 정책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OECD 각료이사회는 다음과 같은 포용적 성장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목적은 삶의 질 제고이다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의 과실이 공유돼야 한다 △기회의 불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불평등도 고려돼야 한다 △경제정책이 성장뿐 아니라, 소득·건강·고용 등 다른 부문에 미치는 효과도 고려돼야 한다 △포용적 성장 정책은 정부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방식이어야 한다.

삶 속에서 체감하는 성장 절실

여기에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므로, 기술혁신과 구조조정 등 생산성 향상 방안이 분배의 형평성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포용적 방식으로 추진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용어는 다르지만, 포용적 성장의 실질은 경제민주화와 맥이 같다.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해 특정 경제세력의 집중화를 해소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활동영역 확보를 위해 통합적 정책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면, 포용적 성장은 경제민주화의 동어반복이다.

다시 궁금해진다. ‘포용적 성장’으로 내일 나의 하루는 어떻게 나아지는지? 포용적 성장도  지친 40대가 삶 속에서 체감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전기와 통신 시장을 정비해 핸드폰 통신비와 에어컨 전기료 부담을 낮춰야 한다. 빈곤한 노년을 만드는 망국적인 교육비 부담도 낮춰야 한다. 갑질 문화를 신뢰와 배려의 문화로 바꿔야 한다. 불공정 거래 관행 타파, 기술혁신, 구조조정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근로자의 88%가 일하는 중소기업의 임금도 올리고, 남들 쉬는 대체휴일에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용적 성장은 40대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용어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