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동아줄’내릴까?

지난달 30일 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결국 부족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하면서 부실경영에 빠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지독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진해운은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단연 1위 규모의 해운사이자, 세계 7위에 랭크된 세계적인 해운사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한진해운의 회생 자금줄을 끊게 되면서, 조선업계는 물론 국내 산업계에 앞으로 미치게 될 충격은 클 것으로 보인다. 수출 물류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해운업의 가장 중심에 있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선다는 것만으로도 한국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지난 30일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자금지원 요청을 만장일치로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한진해운에 자금을 수혈해 줘도, 현재 해외에서 빚진 외상값을 갚는 것이 1순위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미 산업은행에겐 학습효과라는 게 있었다. 불과 몇년 전, 대우조선과 STX조선을 회생시키는 자금지원의 일환으로 두 회사에 총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대우조선은 지금 수조원대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고, STX조선은 법정관리로 내몰렸다. 그렇기 때문에 한진해운을 바라보는 산업은행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객관적이고, 냉혹했을 것이다.

한진해운 경영상황은 먹구름
한진그룹이 자체적으로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다고 금융당국에 제시한 금액은 총 5000억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가장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대한항공이 4000억원을, 그밖에 계열사들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000억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한진해운이 필요한 돈은 얼마 정도였을까. 한진해운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부족자금은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진이 부족자금에 30~40% 수준만 부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산업은행은 이를 다르게 분석했다. 한진해운이 추진하는 선박금융이나 용선료 조정이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부족자금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진해운이 당장 갚아야 할 빚이 상거래 연체 채권인 6500억원이라고 하는데, 한진은 올해 2000억원만 상환할 수 있고 나머지 4500억원은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안아야 할 판이었다. 이 빚은 해외 용선주나 해외 항만하역업체 같은 곳에 갚아야 할 돈이다. 해외업체에 빚을 갚기 위해 금융당국이 당장 수천억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명분이 없는 모습이다.

대외적인 리스크도 상당해 보인다. 여름 시즌은 해운업계에게 최대 성수기임에도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운임료가 인상되기는커녕 뒷걸음질치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한진해운의 회생에 먹구름을 들이고 있었다. 글로벌 2대 선사인 머스크·MSC도 현재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등 해운시장은 앞으로 좀처럼 턴어라운드의 조짐이 감지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사실은 정부가 자금지원이든, 구조조정이든 결정하는 데는 모두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국내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무작정 자금을 지원했다가는 최근 같은 처지에 있었던 국내 2위 선사인 현대상선과는 차별화된 특혜 의혹에 휩싸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진해운과 달리 현대상선은 자구책 마련을 위해 1조2000억원에 현대증권을 팔고, 주요 계열사 자산을 모두 동원했으며, 오너가 사재를 출연하는 등 채권단의 지원 일체 없이 유동성을 먼저 회복하는 선례를 남겼던 것이다.

이렇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 것도, 또한 두 회사가 각각 여성 최고경영자가 이끌었다는 점(한진해운은 최은영 회장, 현대상선은 현정은 회장)에서도 앞으로도 한국 경영사에 있어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어 보인다.

수송보국의 꿈은 좌초되나
그런데 현재 최은영 회장이 침몰해 가는 한진해운의 운전실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한진해운은 지난 2013년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은영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서 경영권 바통을 넘겨받았는데, 고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2007년 무렵 본격적인 경영에 참여하면서 이끌어 왔었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의 뿌리다. 그래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애착을 보여왔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의 아버지이자 한진그룹의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지난 1977년 세운 회사로, 해운업이 수출 증가로 나날이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키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2002년 조중훈 창업주가 운명을 하고 셋째 아들인 고 조수호 회장이 이어 받게 되지만, 2006년 안타깝게도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를 하게 된다. 그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선 배경이다.

최은영 회장도 야심은 있었다. 한진그룹에서 분리돼 독립경영을 하면서 한진해운을 세계적인 리딩 해운사로 키울 계획도 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이 경영에 나선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세계 수출 경기 자체가 불확실되면서 결국 시숙이자 조중훈 창업주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정상화라는 숙면적 과제를 안게 됐다.

그간,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의 경영지원에 나몰라라 한 것도 아닌 것이,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여러 계열사들이 많은 지원을 퍼부었었다. 대한항공이 총 8000억원을 지원하기도 하면서 2014년 이후 총 1조2500억원이 한진해운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조양호 회장이 불과 2, 3년 동안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을 한 이유가 있다. 한진그룹에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정신이 깃들여 있다고 하는데, 조중훈 창업주의 창업정신이라고 한다. 그는 한진그룹을 육, 해, 공을 모조리 연결할 수 있는 수송왕국을 목표로 그룹을 키웠고, 2세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했다. 그래서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는 항공과 육운(옛 대한통운)을, 둘째 조남호 회장에게는 중공업과 건설, 셋째 조수호 회장에게는 해운을 나눠줬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양호 회장은 선친의 창업이념을 받들어 무리를 해서라도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가져왔고, 경영 항로의 정상화를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금융당국은 냉혹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조양호 회장이 바라던 수송왕국의 꿈을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향방은
조양호 회장의 꿈은 물거품이 됐을지 몰라도 투자자나 시장은 이번 법정관리 결정을 내심 환영하는 표정이다. 왜냐하면, 지난 2, 3년간 드리워진 한진해운이라는 리스크를 벗게 됐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지난 2분기에 6년 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내면서 주목받았는데, 한진해운 자금지원이라는 이슈가 한창인 때라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도리어 하락을 했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지고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칼, 한진 등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소폭 반등하는 추세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이후 회생을 해야 장기적으로 대한항공에겐 득이 될 것이다. 현재 한진해운의 지분 33%를 보유한 대한항공이 최대주주이기에 그렇다. 다만, 현재 추가로 한진해운에 지원해야 하는 부담이 해소됐기 때문에 단·중기적으로는 대한항공에겐 나쁘지 않은 모양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세가지 시나리오로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선 해운업계의 특성상 법정관리에 들어서면 그 회사는 청산을 하는 게 수순이다. 보통 세계적인 해운사들은 ‘얼라이언스’라는 해운 동맹을 맺는데, 법정관리 신세라면 즉시 퇴출 대상이 된다. 또한 용선주들이 용선료를 받기 위해 배를 압류하게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청산에 치닫게 된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현대상선과의 합병이다. 청산이 아니라면, 다른 회사가 흡수해 존속하는 것이다. 선주협회에서도 한진해운을 현대상선이 인수합병을 해야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함은 물론, 두 회사의 합병으로 세계 5위 수준의 해운사가 탄생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었다. 마지막은 또 다른 회사가 인수합병을 하는 것인데, 지금 한진해운의 시장 가치가 가장 낮을 때이기에 글로벌 해운사들도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세기 한국경제의 해운산업을 풍미했던 한진해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9월에 방향을 잡을 것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이후 향방이 한진해운의 구성원은 물론, 관련 산업계에도 최상의 시나리오로 진행되기를 희망해 본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