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해운과 정부가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으로 촉발된 물류대란을 해결할 자금지원 방안을 놓고 오락가락 하는 사이 수출차질액 규모가 공식집계로만 1억달러를 넘어섰다.

입항거부·선박억류에 납기 지체상금 ‘눈덩이’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으로 한진해운 사태로 ‘수출화물 물류애로 신고센터’에 접수된 수출차질액은 약 1억1100만달러(약 1220억원)에 피해 건수는 258건(256개사)으로 집계됐다.

수출차질액은 인보이스(송장)상 물건 가격을 합산해 집계한다. 다만 피해 업체들이 구체적인 금액을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피해액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항로는 아시아가 131건으로 그 뒤를 이어 미주(118건), 유럽(113건), 중동(72건) 순을 기록했다. 유형별로는 해외 입항거부가 10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해외 선박억류가 83건, 한진해운 선박으로 화물을 운송하고 있어 장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례가 36건으로 집계됐다.

무역협회가 파악한 해외동향에 따르면 식품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품은 통상 유효기간이 3개월인데다 특히 중국의 경우 통관과 검사에 3주가 걸려 실제 유통 기간은 2개월 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 등 식품분야 6개 기업의 제품이 현재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있어 조속히 하역이 이뤄지지 않으면 판매 불가능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전분과 김치 등(계약금 600만달러)을 싣고 가다가 선박이 억류된 A사의 경우 유통기한이 임박해 제품을 폐기해야 할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중소기업인 물류 업체들은 화물을 부두나 선박에서 빼내기 위한 보증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거래하던 포워딩 기업들은 정상 영업이 어려워 운임수입이 없어진 데다 항구별로 차이가 있지만 화물반출을 위해 컨테이너당 2만위안 전후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있어 자금압박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선박억류로 인한 바이어 클레임 발생과 자금회수 지연, 수출 예정화물의 국내 재작업으로 인한 추가 비용 발생 등 화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또한 한진해운의 선하증권(B/L)을 바이어가 발급하지 않으면서 납기 지체상금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한진해운을 통해 식품을 수출해왔던 B업체는 해외 현지 터미널에 한진해운 선박이 억류되면서 납기를 지키지 못해 피해를 보고 있다. 선적된 신선제품의 유통기한이 임박해 폐기해야할 상황에 처했고, 바이어에게 해당 제품을 납기하기 위해 재생산하고 재선적하는 등의 비용이 25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컨테이너 보관료와 이적료 등의 물류비용이 추가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폭죽을 싣고 가다가 억류된 선박의 안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외항 대기나 억류 기간이 길어지면 고열 등으로 안전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섬유 제품을 실은 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 접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C사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자체 해결할 방안이 전무하다”며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한진해운 선박의 해외 출항거부로 유럽 수출용 원자재 수입 차질이 발생해 납기지연이 발생하고 있다”며 “물류업체로 화주들의 클레임을 제기하고 운임사승에 따른 수출경쟁력까지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 사태 수습 안간힘…‘한진 책임’방침 유지
정부는 일단 당장의 물류대란 여파를 수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아직 한진해운 정상화는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한진해운 발 물류대란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열린 장관급 회의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선박은 컨테이너 101척, 벌크 44척 등 총 145척이다. 지난 8일 기준으로 현재 운항중인 선박 128척 중 89척(컨테이너선 73척·벌크선 16척)이 26개국 51개 항만에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미 선적된 화물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화주와 운송계약을 맺은 한진해운이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한다는 원칙을 유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은 보유선박의 항만 입출항이 가능하도록 주요 국가의 법원에 압류금지(Stay Order)를 신청해 미국과 일본, 영국은 이미 발효됐다.

정부는 압류금지가 발효된 주요 거점(Hub) 항만으로 선박을 이동해 일단 화물을 하역한 뒤 최종 목적지까지 수송하도록 할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각 억류지 항만별 전담팀을 구성해 각 기항지에서 대체선박을 섭외할 계획이다. 거점항만으로 회항하는 선박에 대해서는 현지 관세관을 통해 외국세관의 신속한 적하목록 정정처리를 지원하고, 필요 시 항만당국과 접촉해 하역조치를 측면지원하기로 했다.

중소 수출기업과 중소·중견 협력업체에 대한 금융지원방안도 마련된다.
운항 차질로 손해배상 등 애로를 겪는 중소소출기업에 대해 1000억원의 수출보증, 2000억원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3000만원 미만의 보증 지원에 대해서는 약식심사를 거쳐 신속하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농축수산물의 유통기한이 지나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도 7000만원 한도로 총 7200억원의 경영자금을 우선 빌려주기로 했다.

한진해운 협력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2000억원의 중소기업청 자금과 2900억원의 정책금융기관 자금을 활용해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구조조정 특례보증 지원대상을 해운업으로 확대하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보증 규모도 3000억원 늘린다.

아울러 협력업체 등의 실업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지원 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부산시에 고용안정특별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재취업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대책이 기존 대책을 반복했을 뿐, 한진해운을 재가동할 수 있는 핵심인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은 여전히 빠졌다는 점에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6일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에 자금 1000억원을 긴급 수혈키로 했지만 당장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기항하는 비용 정도에 불과해 선적을 입항·하역하는 자금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미수금을 받지 못한 하역업체들이 하역비를 더 올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당장 물건을 내리는 비용만 2000억원까지도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진해운이 못 내고 있는 용선료, 하역 운반비 장비 임차료 등 밀린 외상값(상거래 채무)은 총 65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한진해운이 이미 사실상 남은 자산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추가로 담보를 잡고 대출을 받을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한진그룹도 이미 추가 대출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황이다.

한진해운 정상화 자금 마련 급선무
정부와 채권단이 이제 와서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어렵다. 물류대란까지 감수하며 지켜온 구조조정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파산 6부는 정부와 채권단에 한진그룹의 지원방안 실행 시기가 불투명한데다 한진해운을 정상화하는데는 부족하다며 긴급 자금 지원(DIP 파이낸싱·회생 기업에 대한 대출)을 요청했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이를 거부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직후 “혈세를 투입하지 않고 정상화에 성공한 현대상선과의 형평성에도 부합하고, 소유주가 있는 회사의 유동성은 자체 해결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켰다”고 내세운 바 있다.

확실한 자금지원 카드가 나오지 않는 이상 물류대란 사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해운업계는 사태를 방치하면 손실이 계속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쳤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일단 비정상 운항 중인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 있는 화물부터 목적지나 육지로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대로 방치하면 물류대란 사태는 1~2달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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