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하루 두편 꼴로 영화 보는 이의 가장 큰 고민은 웬만해선 감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보기라는 가장 농축된 감정 작업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다니, 이보다 잔혹한 일은 없지 싶다. 그 원인은 물리적 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요즘 영화들의 군살, 과잉에 있지 않나 싶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요즘 영화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판단력, 능력, 인간성, 제도를 제시하지만 관객을 윽박지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미 알려진 실화에 기초했음에도 시종 긴박감을 유지하며, 기술적 허점도 보이지 않으며, 어느 장면도 불필요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최선의 선택의 연속이다.

이처럼 완벽한 영화를 연출한 이는 감독 겸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1930년~)다. 86세의 나이에도 내용, 기술, 도덕 측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영화를 연출하다니,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밖에.

2009년 1월15일, 샬럿 행 US항공 1549편이 승객 155명을 태우고 이륙한 지 3분, 시속 200마일로 날던 2800피트 상공에서 새떼에 부딪혀 양쪽 날개 엔진이 손상된다.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는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라는 관제탑 지시가 실행 불가능하다고 판단,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해 승객 전원을 구한다.

설리는 9·11과 경제 불황으로 침체된 미국민에게 희망을 전한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동시에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청문회에 소환돼 비상 착수가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심판받게 된다. 영화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후유증을 겪는 설리와 언론에 시달리는 그의 아내, 그리고 청문회 과정을 오가며, 설리의 선택에 따른 진실을 추구한다. 공군 조종사 시절부터 사건 당일까지 설리의 회상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긴장의 강도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임에도 심리적 압박을 느끼며 꼼짝 못하고 지켜보게 된다. 심리적 압박은 크게 청문회를 앞둔 설리의 심경과 영화 후반부에서야 제대로 보여주는 착수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액션 영화로 둔갑시켜도 될 만 한 소재인 착수 장면을 후반부까지 미루는 자신감. 비행기가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시 한복판을 날아 강으로 착수하는 순간에서부터 관계 기관들의 긴급한 구조 연락, 인근을 항해하던 정기선과 헬리콥터의 구조 활동까지, 카메라를 흔들고 장면을 쪼개며 과장 표현할 유혹을 느낄 법 하건만, 이스트우드 감독은 규모에 함몰되지 않고 침착하게 꼭 필요한 장면만 연결시킨다. 설리의 사고 순간 판단이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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