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만(중앙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악화된 남북관계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는 가운데 언젠가 재개될 경제협력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지속적인 관심 역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한반도를 경영하라’라는 통일경제 가이드 북을 발간했다. 이 책을 공동집필한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기고를 연재한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 시장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물론, 경제회복을 위한 ‘위로부터의 변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 이상의 플러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제재 등 북한이 처한 대내외 환경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플러스 성장은 놀라운 일이다.

최근 북한은 주민생활 향상과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운영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제부처의 권한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기존 중앙계획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농업과 경공업 부문의 회생에 초점을 맞춰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 중인 것이다. 인센티브 제도 도입과 경제 주체들의 자율성 확대가 그 대표적 사례다. 외자 유치를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북한은 맞춤형 지방단위 경제개발구를 설정함으로써 개방을 확대하고자 한다. 하지만 대외경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애요인들이 많이 있다.

첫째, 핵개발을 지속하며 대외개방 확대를 의도하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이다. 둘째, 대외개방을 통한 외자유치에 성공하려면 대내 경제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경제특구에 외자를 유치하려면 최소한의 전력, 도로, 통신, 통관 등 각종 인프라 시설들이 조성돼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경우 이러한 기반시설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노선인데 이 노선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의 개방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며 해외 자본 유치도 어려울 것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국제 신뢰 못얻어
최근 들어 북한의 시장화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시장은 양적으로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변화하고 있다. 시장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그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당국이 개인 시장활동을 묵인함에 따라 불법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장마당은 종합시장으로 제도적인 발전을 했고 그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다.

시장 구조화로 인한 계획경제 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계획경제부문과 시장경제부문 간의 상호의존 및 공생관계 고착화는 국가의 재정운용 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화 현상이 심화, 제도화되면서 재정운용 시스템도 부분적으로 시장에 의존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과하고 있는 법인세, 부가가치세 외에 직접세인 소득세까지 부과하고 있다.

북한은 계획경제 시스템의 마비와 배급제의 붕괴로 인해 북한 주민 경제생활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소의 공식 임금지불이 줄어들고 국가의 식량 및 생필품 공급도 부족해지면서 주민들의 경제활동은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시장활동으로부터 획득하는 소득이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천이 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시장화의 진전으로 사적 자본이 축적되고 있고, 신흥자본 즉 ‘돈주’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돈주는 북한의 시장화 확산에서 물자와 자금공급 확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조금씩 감지되는 변화의 움직임
북한의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중간상인과 내수 자영업자의 육성이 특히 필요하다. 현물을 이용한 마이크로파이낸스(미소금융)는 이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자영업자 육성은 일반적으로 중소기업 육성방안과 그 방향이 유사하다. 북한의 규모가 작은 국유기업을 우선적으로 준중소기업으로 전환하는 ‘북한판 향진기업 육성’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소기업은 사유화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업종, 직종별로 협동조합이 형성돼 있는 북한의 경우는 협동조합에 자율적 시장 기능을 부과해 중소기업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시장 활성화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의 시장 활성화를 통한 남북경제협력 확대는 기존의 남북경협 방식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기존의 남북경제협력은 정치군사문제와 연계돼 ‘STOP&GO’ 형태로 불안정하게 진행됐고 남북경협의 제도화와 지속적인 추진이 어려웠다. 특히 국제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남북경협의 추진에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남북관계와 북한의 변화를 위해 남북경협 추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남북경협은 시장화 지원을 통한 북한경제의 시장화 확산과, ‘아래부터의 변화’를 통한 북한 개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새로운 남북경협은 물자와 자금의 공급뿐만 아니라 북한의 내수형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중소기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미소금융을 통한 자금지원과 물자공급 확대 그리고 마케팅 지원을 통한 판로 확대 등을 지원한다면 우리 중소기업은 북한의 시장화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시장화를 위한 보다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대표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에 통합추진기구를 설치하고, 학계 전문가들과 관련 정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 시장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中企 역할 분담하고 ‘투 트랙’접근을
정책 추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은 북한 당국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남북이 협력해 실행할 수 있는 사업을 나눠서 투 트랙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스스로 제도적 정비를 통해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과 남북협력이 필요한 사업들, 즉 남한의 자금이 투입돼 실행할 수 있는 사업 그리고 우리의 기술 및 노하우가 투입돼야 하는 사업 등을 나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대북 경제제재 조치로 남북경협을 위한 모든 통로가 닫혀 있다. 핵문제로 인한 남북관계도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는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즉 북한 주민들의 생존 욕구로부터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북한의 시장화 확산을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차원에서 남북경협의 예외지역, 즉 제한된 통로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최근 대외개방이 확대되고 있으며 북·중, 한·러 간의 경제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선특구지대를 프리존(free zone) 지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정경분리 전략을 활용해 중소기업중앙회와 정부가 역할 분담을 한다면, 북한의 시장화 확산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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