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화 개봉작이 기대되는 이유는, 폭력이나 스케일을 앞세우는 영화보다는 가슴을 파고드는 작은 드라마, 멜로 영화가 많아져서다. 특히 올해는 풍경이 제3의 주인공이라 할 영화들이 많아, 여행을 부추기는 이 계절에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먼저 동심을 전하는 중국과 태국 영화다. 펑천 감독의 데뷔작 <와와의 학교 가는 날>(사진)은 윈난성 누강 협곡에서 찍었다. 이 곳에 사는 리수족 아이들은 협곡에 놓인 130m 외줄을 타고 학교에 간다는 놀라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동화책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펑천 감독은 한겨울에도 슬리퍼만 신고 까마득한 협곡 아래 소용돌이치는 물길을 건너는, 용감한 아이들의 학구열을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한다. 어린 와와가 누이의 등하교를 지켜보다 몰래 줄타기 연습을 하고, 학교 창에 기대 수업을 듣는 모습. 친구 하나 없는 산골 아이의 외로움과 누이 사랑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니티왓 다라톤 감독의 <선생님의 일기>는 태국 카엥크라찬 국립공원과 태국 북부 람푼의 수상학교에서 촬영한 실화 영화다. 수상학교는 전기도 수도도 없는 열악한 환경으로, 아이들은 주중에는 선생님과 먹고 자고, 주말에는 배를 타고 부모에게 돌아간다. 태풍이 불어 학교 지붕이 날아가고, 시체가 떠내려 오기도 하지만 호수 너머로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뜨는 아름다운 풍광은 일기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소재를 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총성과 살인과 추적이 이어지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대지에 더 많이 눈길이 가는 영화들도 있다. 조나스 쿠아론 감독의 <디시에르토>는 미국으로 밀입국 하려는 절박한 멕시코인과 불법 이민자를 바퀴벌레라며 증오하는 미국 사내의 무차별 살인을 스릴 넘치게 쫓는다. 인물도 대사도 극도로 절제한 채, 이민자 문제를 부각시키는 은유를 적절히 활용하는 감독의 문제의식과 연출력이 돋보인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40도가 넘는 사막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에서 촬영했다는데, 그 공간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마저 걸음을 재촉한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로스트 인 더스트>는 자동차로 텍사스 서부의 황량한 풍경 속을 달리며, 매 장면에 꼭 들어맞는 서글픈 노래를 들려준다. 서부 텍사스 풍광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최첨단 디지털 카메라로 시네마스코프 촬영을 택해 공간감을 살렸다. 은행에 집과 농장을 빼앗기게 된 형제가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고, 은퇴를 앞둔 늙은 보안관과 인디언 출신 보안관이 이들을 쫓는다는 단출한 구도. 미국 경제 문제에서 서민을 착취하는 은행, 인종 차별 농담까지, 현대적으로 번안된 서부극 형식에 담아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범죄자와 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