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한 록히드마틴과 고등훈련기 생산 맞손

한국항공우주(KAI)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인 때문에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트럼프의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한·미 군사협정에 대해 회의적인데다가,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는 바람에 한국은 자국의 방위산업인 무기 관련 업종을 더욱 키워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정부에겐 부담일지 모르지만, KAI와 같은 방산기업에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정작 KAI가 웃는 데에는 미국의 방산업종과 연계된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로 당선이 됐는데, 정통적으로 미국의 방산기업들은 공화당을 지지해 오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가 총기사용 규제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미국에선 민주당과 방산기업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라고 한다.

어찌됐든 간에 KAI는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방산기업인데, KAI의 주력 사업들이 대부분 미국의 제1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 이번 트럼프 후보 당선에 따른 후광효과다. 록히드마틴은 트럼프 후보에게 188만달러, 우리돈으로 20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낼 만큼 공화당을 지지하는 기업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 정부는 38조원이 넘는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KAI가 록히드마틴과 함께 손을 잡고(컨소시엄) 고등훈련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훈련기란 전략적인 전투기를 운전하기 전에 조종사들이 훈련용으로 몰아보는 거다. 현재 이 사업에 뛰어든 경쟁기업으로는 보잉이 있지만, 보잉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기업이라는 낙인 때문에 향후 록히드마틴의 파죽지세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KAI가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올해 장사도 잘한 편
그러나, KAI는 한국에서는 눈칫밥을 먹는 존재다. KAI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올해 수출입은행에 5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팔았지만, 여전히 지분 19%를 가지고 있다. 국영기업인 KAI는 정부가 추진하는 민영화 대상이기도 한데, 요즘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고 주가가 점점 오르고 있는 데도 민영화는 차일피일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정부의 대대적인 신형 전투기 수주 사업인 KF-X 프로젝트가 각종 비리와 횡령 의혹으로 얼룩지면서 피해자격인 KAI는 대외적인 홍보를 아예 차단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KAI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전망이다. 3분기 매출만 8014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940억원을 돌파했다. 앞서 2분기에도 사상 최대 분기실적을 달성해 올 한해 매출 3조원과 영업이익 3500억원은 무난히 기록할 것이란 게 증권가의 일관된 분석들이다.

앞서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고 만든 수출용 T-50 항공기를 통해 수익을 계속 내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FA-50 전투기와 수리온(한국형 기동헬기) 양산라인에서도 조금씩 수익을 내는 것이 실적향상의 주된 원동력이다.

주식 투자자가 아니라면, KAI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다. KAI는 지난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탄생한 위기 속의 씨앗이었다. 1999년 무렵 정부가 나서서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3곳의 항공 관련 부문을 분리하고 통합해 설립한 정부 주도형 방산기업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수익도 잘 내고 미래가치가 있는 방산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이유가 뭘까가 궁금하다. KAI가 민영화 절차를 밟은 것은 지난해부터인데, 금융위원회가 KAI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게 비금융사 회사 지분을 오는 2018년까지 매각토록 지시했기에 그렇다. 본질적으로 KAI의 민영화 작업은 이러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알짜 수익을 내는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어려운 이유도 궁금할 것이다. 민간기업이라면 서로 인수를 해서 자신들의 성장원으로 활용하기에 아깝지 않기에 그렇다.

방산을 정리하는 대기업들
민영화가 만만치 않은 가장 강력한 이유는 국방과 관련돼 있기에 그렇다. 국방 관계 기업이면, 결코 해외 기업이나, 해외 자본에 경영권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매출 3조원을 내는 KAI라는 기업을 인수하려면 소요되는 자금도 부담될 텐데, 그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정치적으로 국내 기업이라는 출신성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KAI의 민영화를 발표한 이후로 국내 대기업들이 인수후보군이 압축되고 회자돼 오고 있었다. 일단 삼성이 가장 유력했는데, 안타깝게도 재작년에 한화에게 자사의 방산기업인 삼성테크윈을 매각하면서 완전히 이 영역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현대차도 사실 KAI 지분을 좀 가지고 있었는데, 자동차 본업에 충실하겠다고 올해 지분 일부를 매각했다. 현대차야 K-2 전차를 만들 수 있는 현대로템이라는 방산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어 항공 중심인 KAI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두산도 방산 계열사 지분을 한화에 다 팔고 이 시장을 최근 떠났다.

그러면 남은 방산 주력 대기업은? 한화그룹이다. 현대차가 지분을 팔면서 한화가 6%로 산업은행에 이어 2대주주가 됐다.(산업은행은 26.4%였다가 지분을 팔고 16%로, 현대차는 10%를 가지고 있다가 절반을 팔아서 5%다) 현대차, 두산, 삼성 등이 방산 분야에서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시장이 굉장히 폐쇄적이고 정부 주도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방산산업 안에서 신규 물량은 정부가 정해 놓은 무기소요계획에 따라 진행되는데, 정부가 소비자이기 때문에 공급자인 대기업이 아무리 많이 만들어 팔고 싶어도 못한다. 더군다나, 방산사업의 마진은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형편 없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2%도 못 미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객이 정부이다보니까 영업 자체가 무의미하고, 국방 보안이라 향후 5년 뒤의 시장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 수출 산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내수시장 산업이라 글로벌 사업도 불가능하다. 차라리 현대차, 삼성, 두산은 자신들이 잘 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게 수익면이나, 경영 면에서 수월하고 효과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화는 KAI 인수할까
앞서 밝힌 대로 현 상황에서 KAI라는 대어를 삼킬 대기업은 한화 밖에 없어 보인다. 한화라는 기업명의 모태가 한국화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출생이력 자체가 방산기업이었다. 그런데, KAI 인수의 가장 큰 핵심은 한화의 자금여력이다. 한화는 최근 3년간 삼성으로부터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하고, 두산에서 두산DST를 사들이면서 막대한 자금을 써야만 했다. KAI 매각 금액은 못해도 3조원이 넘을 것인데, 방산기업 인수에만 수조원의 자금을 쏟는 것은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달걀을 담는 꼴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일단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의지가 아주 적극적이다는 것에서 KAI의 인수합병(M&A)도 그냥 떠도는 소문은 아닐 것이다. 김 회장은 자신의 방산 부문을 세계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처럼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KAI를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한화와 같은 기업이 인수에 관심을 보이더라도, KAI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 신나게 항공을 내달리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를 떨쳐 내야할 것이다.

첫째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방산비리의 오명을 깨끗하게 벗어나야 한다. 둘째는 수출 중심의 사업으로 한정된 내수시장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KAI의 새로운 도전과 역사는 내년에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서 시작될 것이고, 힘차게 비상을 할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