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철수설’한국GM 들여다보니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새롭게 읽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몇년 전부터 현대·기아차의 독주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 사이로 수입차 브랜드들이 진입해 득세를 하고 있는 형국이 이제는 국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에 이어 국내 완성차 업체 중 3위라고 할 수 있는 한국GM은 이렇게 급변화하는 판세 속에서 어떤 실속을 챙기고 있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GM은 국내 4위 업체다. 1위 현대차(31.6%), 2위 기아차(30.9%)에 이어 3위는 수입차 브랜드 집단(14.5%)이다. 그리고 한국GM이 4위(10.4%)로, 2012년 수입차 브랜드의 역공에 3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번 주 기업인사이트는 국내 자동차 브랜드 4등 업체인 한국GM에 대한 분석과 평가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0%의 한국GM을 별도 기업으로 들여다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다.

무협지 이야기 같은 거다. 현대·기아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자신들의 영토를 야금야금 빼앗기는 중이고, 수입차 브랜드는 나날이 득세하며 중원으로 나아가 자신들의 깃발을 꽂고 있고, 르노삼성은 SM6와 QM6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탄생시켜 전투마다 연승을 행진 중인 상황이다. 이러한 국내 자동차 현대사 속에서 한국GM은 어떤 포지션에서 무슨 행보를 걷고 있는지 한번쯤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현대차에 도전한 첫 토종 브랜드
한국GM의 기원이 대우자동차에서 시작됐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대우차의 가치와 의미는 상당히 중요한데, 처음으로 현대·기아차의 아성에 도전했던 토종기업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아직 도로 위에서 종종 발견되기는 하지만) 로얄 시리즈와 레간자, 누비라 등을 기억하는 드라이버들이 여전히 많다. 국내 최초로 출시한 경차 티코의 파급력과 역사적 의의만 설명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붕괴로 대우차는 글로벌기업 GM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인수 이후에도 한동안 회사 이름을 ‘GM대우’로 할만큼 당시 대우차의 명성은 국내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GM은 ‘대우차’라는 과거의 명성 보다는 GM의 글로벌 일원이라는 새로운 미래 가치를 키우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한국GM으로 탈바꿈하면서 GM 글로벌 전략의 한축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 소임이 바로 소형차(경차) 생산의 아시아 허브기지 역할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한국GM은 생산기지가 됐다. 독자모델 개발을 하는 전략기지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와 같은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한국만의 독자생존 전략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인데, 이건 한국GM에겐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시장에 맞는 신모델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한국GM의 신차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한국GM의 태생적 한계다.

그래서 한국GM에 대한 소비자들의 아쉬움은 매번 컸었다. 그나마 경차 브랜드인 쉐보레 스파크가 오랫동안 인기를 구가하며 한국GM의 살림살이를 어느 정도 책임져 줬다. 근데 이것만 가지고는 전체 매출을 견인하기에 역부족이란 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한국GM이 지난해 8월 선보인 쉐보레 임팔라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한국GM의 약점은 대형차 시장이었고 이를 극복할 최적의 무기로 임팔라를 출시한 것이다. 임팔라의 강점은 미국 대형 세단 시장에서 1위를 자랑하고, 10세대(1957년 출시)에 걸쳐 사랑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1600만대나 판매돼 왔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링 카의 저력을 믿은 것이다.

사실은 과거 쉐보레 스파크 출시 이후 그리고 최근 임팔라 출시 이전 사이에는 수많은 날고 긴다는 GM의 중형, 대형 모델들이 한국시장에 발을 들여놨지만, 별다른 업적을 쌓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다. 대형차 모델은 참담했는데,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라는 대형세단을 야심차게 들여왔다가 뼈아픈 실패를 겪고 물러났다. 그나마 오랜 기간 쉐보레의 상품성과 인지도를 유지하는 모델은 스파크와 중형차 말리부 정도다. 그래서 임팔라 출시는 한국GM이 야심차게 던진 출사표 같은 거였다.

‘임팔라’라는 대형차 실험 통했다 
임팔라의 스타트는 대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난해 9월 본격 판매에 돌입한 이후에 기아차 K7와 르노삼성의 SM7의 판매량을 단숨에 앞지르더니, 그 여세를 몰아 현대차의 그랜저를 바짝 추격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12월에만 2700여대를 판매했다. 최근까지 월 판매량이 1500대를 육박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임팔라는 전량 미국 공장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국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공급을 제때에 맞추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한국GM은 임팔라의 고무적인 판매량을 내세워 ‘국내 생산’이라는 새로운 현지 계획도 본사와 협상하기에 다다른다. 이는 GM이 국내 생산 조건으로 내걸었던 월 1000대, 연 1만대 이상 판매에 부합하는 성적표였다. 그러나 본사는 국내 생산을 불허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유는 분명했는데, 국내 생산을 오픈하게 되면 기존 생산시설을 재조정해야 하고, 추가적인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수입 판매에 비해 비용적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한국GM의 태생적 한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엔 임팔라 수급 불균형으로 판매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판매량은 500대 수준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GM이 임팔라 신화를 구축하지 못하는 와중에,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를 출시했고, 기아차는 K7의 마케팅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이렇듯 좋은 차를 가지고도 확장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한국GM이 현지 생산 전략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차를 팔아도 확장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GM은 2013년부터 수차례 한국 철수설에 휘말리는 것도 현지화 전략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본다. 2013년 GM은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완전히 철수하게 되는데, 당시 한국GM이 쉐보레의 유럽 수출물량을 거의 대부분을 생산했었다. 유럽 물량을 끊으면 한국 생산공장이 무용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였기에 한국 철수설도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임팔라처럼 한국GM이 국내에서 차를 처음부터 제조·생산하기 보다는 본사에서 수입해 단순 조립만 하는 상황이거나 그대로 판매하는 비중만 높다는 점도 철수설에 무게를 주는 상황들이다. 지난해 한국GM 매출은 11조9372억원, 영업손실만 5944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러한 적자 경영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GM 측은 언론에서 제기하는 철수설에 ‘황당하다’는 입장일 뿐, 앞으로도 꾸준히 한국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전향적인 전략 타이밍 노리는 상황
한국GM 철수설은 낭설이다. 일단 한국GM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두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 SM6와 QM6의 열풍으로 길고난다는 르노삼성도 6%대로, 쌍용차와 비등비등하다. 현대·기아차가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기울어진 시장판에서 한국GM이 10%대 점유로 연간 15만대 이상 판매한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GM은 한국시장을 두고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반짝 열풍이지만 임팔라를 통해 결과적으론 한국GM도 대형차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또한 신형 ‘올 뉴 말리부’의 인기도 좋고, 여기에다가 한국GM의 SUV 모델인 신형 캡티바와 트랙스도 판매고가 올라서면서, 한국GM의 라인업 구성이 안정화되고 있다.

사실 2, 3년 전만해도 한국GM은 스파크가 판매량의 60% 가까이였지만 요즘은 그 비중도 40%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다른 모델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GM이야 당장 자체 생산라인 증설과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급하겠지만, GM 본사는 느긋하다. 현대·기아차의 국내시장 지배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고, 그건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 국민은 과거처럼 현대·기아차의 충성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GM의 경영진들은 전향적인 한국시장 공략 타이밍을 저울질 중이라고 판단된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국내시장에서 뒤를 잇는 완성차 업체는 결국 한국GM이다. 아직 한국GM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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