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의 인문경영학] 유방의 용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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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의 인문경영학] 유방의 용인술
  • 중소기업뉴스팀
  • 호수 2105
  • 승인 2017.0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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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대 혼란기였던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는 채 3대가 지나기 전에 위정자들의 무능과 폭정으로 망하고 말았다. 그때 진나라에 항거해 일어났던 혁명군 중에 가장 강력했던 인물은 초나라의 항우였다. 하지만 항우는 전력상 한참 열세였던 한나라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역발산의 기개를 갖춘 영웅 항우가 작은 동네의 한량 출신인 유방에게 패배한 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역전극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많은 역사학자들과 리더십 전문가들이 연구를 거듭했지만 직접 당사자에게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유방은 전쟁이 끝난 후 낙양성에서 부하들과 베푼 한 연회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승리요인을 밝혔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은 나는 장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을 위안하고, 전방에 식량을 공급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100만 대군을 통솔하여 싸웠다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사람은 모두 인걸이고, 나는 이들을 쓸 수 있었다. 항우는 범증이라는 뛰어난 재사가 있었지만, 이 한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해 나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유방이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을 잘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량, 소하, 그리고 한신 등이 수하에 있었고,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번쾌와 진평 등 수많은 인재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큰 공을 세웠기에 유방이 초반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봉기하던 초기부터 유방과 함께 했던 장량과 소하, 번쾌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항우의 진영에 있었다는 점이다. 항우는 이들 뛰어난 인재들을 쓰지 못했고, 이들은 모두 유방의 진영으로 넘어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유방이 사람을 포용하고 잘 받아들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게 했다’고 평했던 장량은 탁월한 계책으로 유방이 천하의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

소하는 행정 전문가답게 사람을 얻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언제나 유방에게 도움을 줬다.
“폐하는 10만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지만 저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고 말해 유방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던 한신은 말 그대로 타고난 장수였다. 탁월한 전략과 용병술로 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던 명 장군이었다.

유방의 이러한 리더십은 오늘날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 천하의 인재들 불러 모으는 겸손, 그리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수 있는 용인, 천하를 얻으면 그 과실을 함께 할 것이라는 분명한 비전의 제시는 큰일을 이룰 수 있는 리더의 핵심적인 자질이다. 비록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인재 전쟁’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크든 작든 조직의 성공을 이끄는 것은 그 조직에 속한 인재들이다. 그리고 그 인재의 가치를 최대치로 높이는 것은 바로 리더의 몫이다.

- 《천년의 내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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