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상용(한국이벤트산업협동조합 이사장·한림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헌법 123조에는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흔히 ‘9988’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며,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중소기업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를 위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을 지정, 해당제품의 공공 조달 입찰시 대기업의 입찰참여를 제한하고, 중소기업자간 경쟁 입찰을 진행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 204개 품목이 경쟁제품으로 지정됐으며, 행사대행 부문에는 ‘전시회, 박람회, 기타행사(개폐막식, 기념식 등) 등’을 중소기업간경쟁제품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지자체에서는 이 제도를 지키지 않고 빠져나가려는 꼼수를 쓰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2017횡성강원도민체전 개폐막식, 코트라 아스타나박람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경쟁제품 예외로 하려는 이유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이기에 참여의 폭을 넓게 하겠다”는 명목이다. 겉으로는 참가의 공정성을 내세우지만 결국 대기업의 자회사인 광고대행사, 방송사 자회사 등을 참여시키기 위함이 목적이다.

2015년 국가, 지자체가 발주한 행사용역은 1만6800여건이며 액수로는 8600억원에 해당한다. 이중에 규모가 큰 것은 대부분 광고대행사 자회사, 방송사 자회사 등이 수주해 중소기업 혹은 소상공인 수준의 회사에게 하청을 주고 있다.

이미 공무원들은 수많은 박람회, 개폐막식, 기념식 등을 진행하면서 이런 구조를 너무도 상세하게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큰 회사가 좋다’라는 식이다. 왜냐면 큰 회사가 계약을 이행하는데 안전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기관은 ‘계약이행의 안전성 보장’이라는 명분 때문에 대기업에게 넘기고 대기업은 ‘통행세’를 제하고 다시 하청을 주는 불합리한 행태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하는가.

이제는 각종 행사를 전문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하는 이벤트회사의 규모나 재정이 많이 양호해졌고, 수십억원 정도의 행사는 아무런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자체에서 또 하나의 ‘갑질’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2017횡성 강원도민체전의 경우에는 예산이 5억원 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제품 예외로 하려고 하고,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은 ‘축제 및 행사대행’이라는 품목으로 분류했다. 또 코트라의 아스타나 박람회는 CIS지역에서 개최하는 중요한 행사기에 대기업이 참여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대기업이 통행세를 받고 있는데 행사의 기획, 운영 등 실질적인 일은 누가하는가? 기획서 작성에서 프레젠테이션 등도 하청회사에서 하고 계약 이후에는 이벤트회사가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은 행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언제까지 통행세를 지불해야하는지, 이런 구조적 모순을 잘 알고 있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에 묻고 싶다.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한다는 헌법 123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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