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어 미국에서도 "지배적 지위 남용, 경쟁사 진입 막아"

세계 최대의 모바일 칩 메이커인 퀄컴이 휴대전화의 핵심 반도체의 독점을 유지하려고 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로부터 제소됐다.

지난달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퀄컴이 자국에서도 궁지에 몰린 것이다.

FTC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낸 소장에서 퀄컴이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의 지배적 공급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압박하고 경쟁 반도체 업체들을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애플’에만 유리한 로열티 적용
FTC가 퀄컴에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한국 공정위가 제기한 것과 비슷하다.

인텔, 미디어텍 등 모뎀칩 사업을 하는 경쟁 반도체 회사들에는 칩을 판매하지 않고 휴대폰 제조업체에만 모뎀칩 라이선스(사용권한)를 준 것이 문제였다.

또 6년간 최대 고객사인 애플에만 유리한 로열티 비율을 적용해 ‘표준특허를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프랜드’(FRAND) 확약을 어겼다.

퀄컴은 스마트폰 통신 기능의 핵심인 모뎀칩 분야에서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다. 한 기업의 특허가 표준필수특허로 채택되면, 다른 기업들은 회피 설계가 불가능해 해당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표준필수특허의 경우, 특허권자는 다른 기업과 특허 협상을 할 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해야 한다. 이를 ‘프랜드 원칙’이라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퀄컴은 베이스밴드 프로세서를 팔지 않을 수 있다고 위협해 고객사로부터 특허 로열티를 올려받았다. 퀄컴은 휴대전화 시스템에 핵심적인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파는 사업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낸다.

이 사안을 2014년부터 조사했던 FTC는 퀄컴이 애플에 자사의 칩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했다고 소장에서 지적했다. 대신 퀄컴은 애플에 수십억달러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고 결론 내렸다.

퀄컴은 다른 반도체 회사가 애플과 계약하면 자사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할 것을 우려해 애플이 다른 회사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FTC는 보고 있다.

퀄컴이 경쟁기업의 베이스밴드 사업 진출을 막은 탓에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됐다고 소장에서 지적됐다.

지난달 한국의 공정위도 퀄컴이 경쟁 모뎀칩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칩셋 제조, 판매에 필수적인 SEP에 대한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퀄컴의 특허 남용을 조사 중인 대만과 EU 경쟁당국도 한국 공정위의 제재 혐의를 벤치마크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 관계자는 “각국 경쟁당국이 조사 내용에 대해선 비밀을 지키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공정위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시정명령 내용을 파악한 뒤 중요한 참고 사항으로 조사에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식 기소 가능여부는 미지수
다만 FTC가 퀄컴을 법원에 정식으로 기소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정권과 함께 신임 FTC 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공화당의 숀 레예스 유타주 의원이다. 외신은 FTC 위원의 과반수 이상을 공화당이 점령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FTC가 좀 더 보수적이고 자국 기업 보호적인 공화당의 정책 기조에 따라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 위원장의 퀄컴 제소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퀄컴뿐만 아니라 구글, 인텔, 마이크로스프트(MS) 등도 FTC로부터 수차례 피소 당했지만 표준특허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사업 모델을 변경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며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FRAND 원칙 위배가 반독점법 근거로 활용되려면, 소비자 피해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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