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용품에 전기용품과 같은 안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안전법)’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달 2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한국소비자원 관계자가 안전기준 부적합 전기찜질기를 공개하고 있다.

“언제는 ‘손톱 밑 가시’까지 빼겠다더니 영세사업자 죽이는 규제를 막무가내로 시행하겠다는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동대문 시장 전체가 존폐 위기입니다.”  -서울 동대문 의류상가의 한 상인

지난달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안전법)에 대해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기안전법 시행에 따른 후폭풍을 예상치 못해 이렇다 할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등 미온적인 자세를 취해온 것이 되레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주형환)에 따르면 전기용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관리를 일원화하는 내용의 전기안전법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됐다.

전기안전법은 그동안 따로 분리됐던 ‘전기용품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하기 위해 개정된 법안이다. 해당 법안에는 △공산품과 생활용품의 특정 품목 판매 시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서 비치 △인터넷 판매사업자의 제품 안전인증 정보 게시 의무 △구매대행업자의 해외직구 제품 KC 표시 규정 등이 담겨 있다.

전기안전법이 뭐길래?
논란이 된 전기안전법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KC를 알아야 한다. 정부는 2009년 7월부터 ‘검’(가스 및 계량기점검), ‘안’(보호구 안전인증) 등 용도별로 분산돼 있던 인증마크를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마크 통합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관계법령이었다. 인증이 여러 개다 보니 개별 인증을 관리하는 법도 나눠져 있었다. 전기용품안전관리법, 공산품안전관리법, 어린이제품안전관리법 등이 KC마크를 관리하는 법들이다. 인증 마크를 합치다보니 자연스레 법령도 묶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시행된 전기안전법은 전기용품법과 공산품법을 묶어 태어났다. 전기용품법과 공산품법은 검사품목이 다를 뿐 같은 사실상 같은 인증을 다뤘지만 인증 과정과 절차가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면 전기용품법은 심사 과정이 ‘안전인증-안전확인-공급자적합성확인’등 3단계지만 공산품법은 ‘안전인증-자율안전확인-안전품질표시’로 단계별 내용이 달랐다. 같은 인증을 부여하면서도 저마다의 법에 따라 다른 심사과정을 밟아야 했다. 전기안전법은 이를 하나로 통합하고 제조업자가 국가 안전기준을 스스로 확인해 KC표시를 하도록 정했다.

옥시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공산품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법 작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2015년 8월에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 그해 마지막날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반발이 존재했지만 정부는 원칙론으로 맞섰다. 이미 KC 인증이 의무화된 사안인 만큼 인증서를 보유하고 있으라는 요구가 무리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였다. 정부 관계자는 “KC인증이 없는 제품은 지금도 유통시키면 안 된다”며 “원칙적인 취지를 살려 법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준비 기간을 고려, 시행시기를 1년 늦춘 2017년 1월28일로 했다.

전기안전법, 논란 커진 이유는?
전기안전법의 도입 취지 자체를 문제삼기는 어렵다. 불량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막고 인터넷 쇼핑몰이 부적합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게 법의 취지다.

논란이 된 부분은 생활용품이다. 의류 등 섬유제품까지 KC인증을 받아야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서다. 이 때문에 영세업체들을 중심으로 생활용품에 전기용품과 같은 안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특히 KC 인증을 받으려면 건당 20만∼30만원이 드는 데다가 자체 역량이 안되는 소규모 업체는 대행기관을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공산품인 가전제품에는 KC인증을 강제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미 KC인증이 없는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천·수만벌을 한번에 찍어내는 대형 의류브랜드업체에도 역시 문제가 없다. 생산량이 많은데다 자체적으로 KC인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의류·잡화 관련 영세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품종을 소량으로 만들어 파는 상황에서 종류별로 KC를 강제하는 전기안전법의 시행은 사업주 부담, 제품 가격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영세 디자이너들이나 이른바 동대문시장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터넷쇼핑몰 시장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예를 들어 각각 다른 원료가 들어간 색상의 특정 의류를 병행 수입하는 경우, 현행 전기안전법에 따르면 색깔마다 따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수입 점포, 원단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이 수십개 품목을 인증 받으려면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내야 한다는 얘기다.

인증부담에 영세 사업자 울상
이에 상인들은 전기안전법에 맞춰 인증비용을 지출하다보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그렇다고 인증을 안 받았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만 500만원이다.

동대문 의류상가 상인 A씨는 “의류업종 특성 상 3~4일안에는 제품을 내놔야 하는데 인증 받는데 짧게는 4~5일, 길게는 10일이 소요되면 제대로 영업이 가능하겠냐”며 “기본 인증비용에 부자재, 코팅 등이 더해지면 추가 인증을 받아야 하는 만큼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일반 의류보다 인증 비용 부담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원가가 올라가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판매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같은 제품을 더 비싼 값에 구매해야 하는 소비자들도 손해”라고 덧붙였다.

병행수입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전기안전법은 생활용품 공급자적합성이 확인된 증명서류를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하고 있다. 수입업자들은 계약을 하면서 이 서류를 받아서 보유만 하면 된다. 하지만 병행수입업자들은 이 서류를 확보할 수 없다. 몇개 되지 않는 수입물량을 위해 인증을 따로 받아야 하는데 역시 비용이 부담이다.

쇼핑몰 업체 대표 B씨는 “영세 온라인 쇼핑몰의 가장 큰 장점은 싼 가격인데 이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의 이 같은 결정으로 KC인증에 큰 타격을 받지 않는 대형업체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공병주 병행수입협회장은 “병행수입품은 제조사의 독과점 유통 및 고가의 가격 정책 구조상 다량 수입이 매우 어렵고 제조사가 아니라 해당 제품의 대리점 등을 통해 소량만 수입이 가능한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병행수입협회는 우리와 유사하게 국가 주도하에 제품 인증, 표준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기용품 안전법을 토대로 JIS라는 표준 기술규정을 만들어 여기에 부합하는 전자제품의 인증에 국가인증 PSE 마크를 부여하고 있을 뿐 가죽제품, 의류와 같은 생활 용품에 강제 인증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전기안전법 시행을 앞두고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조항에 대해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정부 “인증서 보관·게시 1년 유예”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전기안전법을 계획대로 시행하되 제조자가 안전성을 확인한 증빙서류를 보관토록 한 규정은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할 것”이라며 “유예기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업계와 협의해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소비자가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안전 정보를 쉽게 확인하기 위해 신설된 ‘인터넷 판매사업자의 제품 안전인증 정보 게시 의무’도 생활용품에 한해 내년 1월1일부터 적용키로 했다.
안전성을 확인한 수입 생활용품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을 경우 구매대행업체가 KC인증 없이 판매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법이 바뀌지 않는한 1년 뒤에도 뾰족한 해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병행수입업자, 해외구매대행업자 등 일부 소규모 수입유통업자들은 “전기안전법이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이달 중으로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해당 업계 관계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안영신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장은 “법무법인과 수차례 논의 끝에 헌법소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커뮤니티 회원 등을 상대로 현재 헌법소원 청구인을 모집하고 있고, 이르면 이달 안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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