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12일 오후 6시경 A씨는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소속회사 B사장의 집을 방문했다. 그날 저녁 메뉴는 한여름 더위를 이기기 위한 ‘삼계탕’.
B사장은 삼계탕을 독특하게도 ‘전기압력밥솥’에 넣고 조리했다. 요리가 완성되자 A는 요리를 전기압력밥솥에서 그릇으로 덜어내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뚜껑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A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밥솥이 내부 압력에 의해 폭발했다. 펄펄 끊는 국물이 A와 B를 덮쳤고 밥솥용기는 튕겨 날아가 출입문을 부셔버렸다.
사고의 원인은 삼계탕의 기름이 증발, 압력밥솥의 안전밸브를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제조업체인 전기압력밥솥회사 ‘C’는 이 사고로 피해자인 A와 B에게 2천만원을 보상해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압력밥솥에 밥이 아닌 삼계탕을 끊이는’ 비상식적 행동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C사가 PL보험에 가입돼 있어 보험사가 이 금액을 대신 지급해줬다는 것.
이처럼 지난해 7월 제조물책임(PL)법이 전격 시행된 이후 PL 관련 사고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현재까지 접수한 ‘PL관련 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2∼2003년 2년간 총 421건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9∼2001년 3년동안 254건의 PL관련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166% 늘어난 것이다.
업종별로는 가전제품(38%), 음식료품(9.7%), 스포츠용품(9.4%) 등의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사고유형별로는 PL법에서 명기하고 있는 결함들중 ▶표시상 결함 ▶설계상 결함 ▶제조상 결함 순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중소기업들의 미흡한 PL 대응이다.
PL법이 시행된지 벌써 1년반이 다돼 가지만 중소기업들은 PL전담부서 설치, 전문인력 배치 등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은 물론, PL보험가입과 같은 소극적 조치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소제조업체들의 PL보험가입률은 5.6% 정도. 전체 PL보험가입대상인 32만9천685개 중소제조업체들중 겨우 1만8천여곳만이 가입하고 있을 따름이다.
더욱이 최근 PL사고중에는 보상금액이 억단위 이상인 대형사고들도 다수 발생하고 있어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생존까지 위협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협중앙회 이종목 PL사업팀장은 “중소기업들이 PL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자사제품이 PL사고와 무관하다는 생각과 사고금액이 크지 않아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PL사고의 발생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PL보험은 이에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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