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포커스] 벼랑끝에 선 日 도시바

요즘 일본의 간판기업인 ‘도시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도시바는 일본에서 장수기업이자,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번창시킨 주역으로 인식되는 아주 지명도 높은 기업이다.

지난 1875년에 설립해서 무려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구한 업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 세계에 큰 실망을 안겨주는 사건이 있었다. 2015년에는 대규모 분식회계로 일본 사회와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고, 최근에는 미국 원전사업의 부실경영으로 최대 수익 분야인 반도체 사업을 내다 팔게 생겼다.

도시바는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고래’로 통할 만큼 그 영향력이 대단한 곳이다. 그런데, 이렇듯 악재와 악재로 인해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게 된다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형도에 일대 커다란 변화가 올것으로 보인다. 도시바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도체 시장이 요동칠 것
도시바의 양대 사업 축은 반도체와 원전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양대축이 한꺼번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서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을 팔아서 그룹의 건전성을 지키려고 하고, 미국 원전사업에 대해서는 파산 절차에 들어갈 조짐이다.

원전사업은 차후에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부문을 내년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할 계획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시바의 반도체가 넘어간다면, 누가 삼킬지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인수가격만 무려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시장은 추정하고 있는데, 이를 소화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말 그대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대어인 도시바를 인수한다면, 반도체 사업의 핵심분야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2위 업체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함께 메모리반도체에 양대산맥이라고 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의 저장장치로 쓰이는데, 기기의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특성 때문에 요즘 낸드플래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매물로 도시바 반도체가 나오면, 한국-미국-중국의 기업들이 인수 경쟁에 참여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인다. 여기서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35.4%로 부동의 1위. 도시바 19.6%,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15.4%,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11.9%, 한국의 SK하이닉스가 10.1%로 시장을 나누고 있다. 점유율 구성만 봐도 3위 이하 업체들이 2위 도시바를 인수하면 단숨에 1위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할 수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SK하이닉스와 미국의 웨스터디지털 등이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곳만 뛰어들지는 않을 것인데, 미국의 애플과 대만 훙하이그룹, TSMC 등도 도시바에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SK하이닉스는 D램 전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이기 때문에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군침이 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밖에 웨스턴디지털은 이미 도시바와 친밀도가 높아서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공동으로 운영 중에 있다. 또한 훙하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으로 폭스콘 그룹으로, 아이폰 위탁 제조기업으로 유명한데, 지난해 일본의 샤프를 인수한 이후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확장의 깊은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결국 2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누가 부담 없이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리겠다고 하면, 애플이 단연 유리하다.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하는 낸드플래시를 도시바와 SK하이닉스에서 전량 보급받고 있는데, 지금 애플의 현금 보유량이 세간에 알려진 바로 182조원이나 돼서 충분히 도시바를 삼킬 체력이 된다는 것이다.

분식회계·원전사업 실패
2015년 7월은 도시바의 분식회계 전말이 세상에 알려진 때였다. 무려 약 1조6000억원의 이익을 부풀려 회계장부를 분식하다가 사장이 공식사과와 함께 사임하게 됐다. 그러나 2017년 2월 도시바는 다시 한번 공식 사과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미국 원자력 발전소 사업이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제대로 2016년 결산 공표에 반영하지 않아 이번엔 도시바 회장이 사임하기에 이른다.

도시바가 반도체와 원전사업을 양대축으로 삼은 시기는 1990년대부터다. 이때 도시바는 PC사업을 확장했고,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원전 사업에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 도시바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도시바는 1985년에 세계 최초로 개인용 노트북을 내놓았으며, 1987년에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했다. 또한 2010년에 3D 영상을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LCD TV를 처음 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도시바는 지난해 의료기기, 백색가전 사업 등의 일부를 매각하기도 하고, 내실 경영과 구조조정 등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이자 일본 대표 기업인 도시바가 분식회계의 늪에 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도시바에도 다른 기업처럼 분식회계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가동 중이었다. 도시바 이사회에서는 변호사,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가 있었으며 도시바의 회계상 문제를 밝히는 작업을 벌여왔다. 이들이 밝힌 바로는 경영진이 조직적으로 분식회계에 가담해서 1조6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수년간 덮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원인은 경영진의 실적 압박으로 추정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시바는 대규모 영업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경영진들은 무리하게 영업이익으로 빠른 시일내에 바꾸라고 아래로 지시를 했다. 도시바에 유명한 조직문화 중 하나는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이다. 경영진의 지시를 반대하는 순간, 회사를 나올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무리한 경영 지시에 반대하지 않았다. 또한 도시바는 반도체와 원전 사업을 기둥으로 파벌 싸움이 오래 지속됐다. 서로 자신의 사업이 잘 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분식회계라는 그림자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011년 3월 이후 일본 원전
독자들도 기억하겠지만, 지난 2011년 3월11일은 일본 역사에  있어 비극적인 날이었다. 바로 규모 9.0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멈춰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반핵 운동이 강렬하다고 하는데, 바로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더욱 강경해 졌다. 원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사업을 한창 벌이는 도시바에겐 참으로 곤란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세계원전 시장이 일본 대지진 이후 위축되기에 이른다. 미국, 프랑스 등이 신규 원전 건립에 주춤하면서 도시바는 수익 내기가 여간 만만치 않게 된 것이다.

도시바는 미국에서 자회사로 웨스팅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 마저도 미국 내에서 여러 송사에 시달리며 제대로 사업을 개진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회사인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손실까지 떠 안는 구조라서, 도시바로서는 이래저래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제 도시바에게는 하나의 길밖에 없어 보인다. 원전사업의 축소와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원전과 반도체를 잃은 도시바가 딛고 일어설 또 다른 주력사업에 대한 대안이 아직 뚜렷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140년의 도시바가 다음 1년을 어떻게 생존해 나갈지 참으로 우려 섞인 관망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도시바는 현재 최대 위기이지만, 다른 경쟁기업들에게는 최대 기회가 찾아 왔다고 말 할 수 있겠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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