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챔프 스토리] 크루셜텍

수출 시장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만나 작게는 기업을, 크게는 국가의 이름을 걸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격전의 장이다. <중소기업뉴스>는 ‘코트라 월드챔프 사업’을 통해 격전에 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히든챔피언의 사례를 연재한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안건준 연구원은 광통신 분야의 핵심 멤버였다. 삼성에서 세계 최초라 불릴 만한 굵직굵직한 연구에 참여했던 그는 기술력만 있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1997년 삼성을 나온 그는 광통신 케이블 연결 모듈의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4년 만에 당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일본 제품보다 성능은 우수하면서 가격은 500분의 1에 불과한 광통신 모듈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 1위 모바일 지문 인식 모듈 업체 크루셜텍은 2001년 이렇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에 마침 IT 호황까지 이어져 크루셜텍은 창업 8개월만에 1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창업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IT 버블 붕괴라는 복병을 만난 것.

안건준 대표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광통신을 버리고 새로 찾은 무기는 모바일이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을 때지만, 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휴대폰이 컴퓨터 기능을 대체할 미래가 올 것이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컴퓨터 마우스와 같은 역할을 할 부품이 필요한데, 휴대폰이라는 작은 화면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작은 버튼 위에 손가락 끝을 놓고 움직이면 빛이 움직임을 인식해 마우스처럼 휴대전화 화면의 커서를 움직여주는 OTP(Optical TrackPad)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력만 있다면 해외가 더 쉽다”
일반적으로 내수 시장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다음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수순을 밟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건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창업 초기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크루셜텍은 창업 초기 국내 대기업에 휴대전화 카메라용 플래시 모듈을 납품하면서 연간 5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대기업의 휴대전화 판매 일정이 6개월 연기되면서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안 대표는 대기업에 종속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외국으로 눈을 놀렸다.

외국 기업들은 기술만 좋으면 다른 것은 따지지 않고 인정해줬다. 어차피 크루셜텍이 갖고 있는 기술은 세계 최초, 세계 최고였다. 그런데 굳이 좁은 시장에서 경쟁할 이유가 없었다.

안건준 대표에겐 시쳇말로 해외가 더 쉬웠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나갔고, 현재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90%를 넘는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시장, 한국 시장이 따로 없습니다. 시장은 세계 시장 하나뿐입니다. 중소·중견 기업들이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국내 대기업을 뚫는 것보다 해외 기업을 뚫는 게 훨씬 쉽습니다.”

3년 연속 적자 속 연구개발에 투자
삼성, 소니, 모토롤라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그의 OTP에 열광했다. 그리고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폰’으로도 유명한 캐나다 림(RIM) 사의 블랙베리 폰에 OTP를 독점 공급하며 세계시장 석권했다. 당시 크루셜텍의 OTP 세계시장 점유율은 무려 80%에 이르렀다.

하지만 크루셜텍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화면 터치 방식의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이 대세가 되면서 블랙베리의 인기가 급속히 추락했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블랙베리 폰의 매출이 떨어지면서 크루셜텍도 함께 휘청거렸다. 2012년부터 3년간 적자를 냈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회사의 문을 닫느냐 마느냐의 기로.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 대표는 회사 보유 자금 1000억원을 모두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이때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BTP(Biometric TrackPad) 개발이었다. BTP란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초소형 지문 인식 모듈, 즉 스마트폰의 지문 인식 장치를 말한다. BTP는 스마트폰 잠금 및 해제, 본인 인증, 결제 등을 할 수 있어 보안이 중요한 핀테크 시대를 맞아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연구, 개발을 놓지 않았던 크루셜텍은 삼성전자와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용 지문 인식 장치 기술을 상용화하며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회사로 우뚝 섰다. 현재 크루셜텍의 지문 인식 모듈이 들어가는 스마트폰은 화웨이, 샤오미, 구글(넥서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15개 업체의 60여개에 이른다. “애플 빼고 다!”라는 안건준 대표의 자부심은 이런 근거에서 비롯된다.

설립 16년이 지났지만 안건준 대표의 벤처 마인드는 여전히 철두철미하다. 덩치가 커지면서 중견기업으로 분류될 뿐 도전정신은 회사를 창업할 때 그대로라고 늘 강조한다. 크루셜텍의 전체 직원 중 연구·개발 인력이 70%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은 안건준 대표의 마인드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크루셜텍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은 1200여개에 이르고, 이 가운데 지문 인식 관련 특허만 400여건이 넘는다.

“시장에 없는 무엇인가 계속 만들 것”
안건준 대표는 또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는 사명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 없는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크루셜텍이 하는 일이다. 크루셜텍의 제품을 어느 기업에서 쓰면 그 업계 최초가 된다. 지금까지 OPT, BTP가 그랬고, 앞으로도 이러한 행보는 계속 목격될 것이라고 안 대표는 자신한다.

“저는 비밀번호와 열쇠가 사라진 세상을 꿈꿉니다. 차문을 잡으면 순식간에 지문이 인식돼 문이 열리고 시동까지 걸리죠. 집 앞에 서면 카메라가 내 얼굴과 홍채를 인식해 자동으로 문을 열어줍니다. 크루셜텍의 기술로 주변 사물이 나를 알아보는 세상이 옵니다. 지문 인식 기술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